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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국'의 인천공항에서

인트로

by 알바트로스


인천공항은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좀비 떼의 습격을 받아 폐허가 된 마을처럼 황량한 모습이었다. 뉴욕, 파리, 로마, 뉴델리...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행선지와 비행기 편명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공항 전광판은 어색할 정도로 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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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체크인과 출국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로 향하는 길은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떠들썩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공항 특유의 기분 좋은 분주함은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새하얀 방호복을 입은 우주인을 닮은 공항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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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더믹으로 여행자들의 시계가 멈추어 버린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 시계는 힘겹게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하고 있었다. 코로나 팬더믹도 역마살은 당해낼 수 없나 보다. 올해 들어 텅 비어있는 인천공항을 찾은 것이 벌써 두 번째니까. 발리에서 반년 살기를 끝내고 돌아온 지 세 달 만에 우리는 결국 또다시 북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로 세 달 살기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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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에스토니아로 이끈 것은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동경 그리고 북유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었다. 인생의 한 번쯤은 그곳에서 오로라와 백야현상 그리고 눈 내린 겨울왕국 와 여유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가 품고 있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미지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뒤에 내적 세계는 확장되며 자아는 한층 더 성장한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대상을 직접 마주하고 경험하고 난 뒤에야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들. 설렘과 경외심 그리고 실망감이라는 다채로운 감정들 너머에는 희열과 내적 성장이 있다. 그래서 여행은 인생 그 자체와 많이 닮아있다. 이처럼 나에게 인생과 여행은 일단 부딪혀 보며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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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인구당 스타트업 수가 세 번째로 많다는 에스토니아. 블록체인과 디지털 혁신이라는 최근 핫한 수식어를 몽땅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나라. 그러나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이 나라를 천천히 알아갈 생각에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끼며 경유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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