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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Oct 21. 2021

'코시국'의 인천공항에서

인트로


인천공항은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좀비 떼의 습격을 받아 폐허가 된 마을처럼 황량한 모습이었다. 뉴욕, 파리, 로마, 뉴델리...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행선지와 비행기 편명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공항 전광판은 어색할 정도로 휑했다.



항공사 체크인과 출국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로 향하는 길은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떠들썩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공항 특유의 기분 좋은 분주함은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새하얀 방호복을 입은 우주인을 닮은 공항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여행자들의 시계가 멈추어 버린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 시계는 힘겹게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하고 있었다. 코로나 팬더믹도 역마살은 당해낼 수 없나 보다. 올해 들어 텅 비어있는 인천공항을 찾은 것이 벌써 두 번째니까. 발리에서 반년 살기를 끝내고 돌아온 지 세 달 만에 우리는 결국 또다시 북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로 세 달 살기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나를 에스토니아로 이끈 것은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동경 그리고 북유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었다. 인생의 한 번쯤은 그곳에서 오로라와 백야현상 그리고 눈 내린 겨울왕국 와 여유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가 품고 있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미지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뒤에 내적 세계는 확장되며 자아는 한층 더 성장한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대상을 직접 마주하고 경험하고 난 뒤에야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들. 설렘과 경외심 그리고 실망감이라는 다채로운 감정들 너머에는 희열과 내적 성장이 있다. 그래서 여행은 인생 그 자체와 많이 닮아있다. 이처럼 나에게 인생과 여행은 일단 부딪혀 보며 배우는 것이다.



유럽에서 인구당 스타트업 수가 세 번째로 많다는 에스토니아. 블록체인과 디지털 혁신이라는 최근 핫한 수식어를 몽땅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나라. 그러나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이 나라를 천천히 알아갈 생각에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끼며 경유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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