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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호수 Apr 16. 2024

현장직 vs 사무직

드라마 [미생]에서 

한석율은 누구보다도 현장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인턴사원이다.  

그러던 그가 막상 사무직으로 나와 일해보니 

현장과 소통이 힘들고 의견대립이 심하여 갈등을 빚는다. 

이 상황에서 항상 단골로 나오는 소리가 

"사무직은 펜대만 굴릴 줄 알지. 현장을 몰라"라는 말이다. 

사무직과 같은 지원부서는 나름의 상황을 설명하고 현장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이미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서로를 적대시하고 소통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런 갈등은 비단 드라마 [미생]속의 회사 '원 인터내셔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교도관도 현장직과 사무직의 갈등이 있다. 

갈등의 골이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현장직 교도관은 말 그대로 필드에서 뛰는 보안과 소속 교도관이다. 

필드에서 뛴다는 말은 수용자를 직접적으로 대면하며 일한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교도관은 수용자를 대면하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치 일선 공무원의 가장 큰 부담이 악성민원인인 것과 같이 

교도관에게 수용자는 어떻게 보면 악성민원인 그 자체인 것이다. 

수용자들은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르기 때문에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교도관은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일이 없더라도 수용자와 함께 있는 일은 매우 높은 경계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잠깐 주의를 게을리하여 사고가 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현장근무자가 뒤집어써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동을 담당하는 교도관은 수십 명의 수용자들을 파악하고 그들의 출원사항을 처리해야 한다. 

매일 출근하면 민원이 수십 개 쌓여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중에서 처리하기 힘든 민원 한 두 개만 나와도 골치가 매우 아프다. 

처리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사항이라고 거절이라도 하면 '왜 안되느냐' '되게 해 달라' 등등 진상을 부리는 수용자들이 많기 때문에 말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이러다 욕을 들어먹는 경우는 다반사고, 심한 경우는 근무자가 폭행당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처럼 현장직 교도관은 수용자들과 직접 대면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반면 사무직 교도관은 수용자를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교도소나 구치소 내의 운영과 행정을 원활하게 하는 지원부서의 성격이 강하다. 

수용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이 쉽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회복귀과, 분류심사과, 수용기록과, 복지과, 총무과 등 하는 일의 범위도 매우 넓고, 업무량도 결코 만만치 않다. 사무직 교도관들 또한 맡은 책임이 명확하기 때문에 혹여라도 감사가 나와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부담 속에서 일한다. 또한 상급기관에서 공문이 내려올 때마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다. 수용자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업무도 아니기 때문에 현장직 교도관에 비해서 월급도 적다는 고충도 있다.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사무직 교도관이 6시 정시퇴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장직과 사무직 모두 나름의 고충이 있고

무엇이 더 큰 고충이라고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현장직의 옷이 더 잘 맞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무직 교도관이 체질에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갈등은 서로의 고충을 무시하는데서 시작된다. 

나 또한 현장직 교도관이기 때문에 

주변의 현장직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훨씬 많은데 

이들 중에서는 사무직 교도관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 

"애초에 사무직 뽑을 때 다 인맥으로 뽑는 거 아니야?" 

"어차피 다 사무직은 그들만의 리그야. 지들끼리 돌고 도는 거지."

"도둑놈들(수용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보기 싫어서 사무직 간 거 아니야! 비겁하긴."

"사동키 한번 안 잡아본 사람들을 교도관이라고 할 수 있나"

"얍삽하게 현장 한번 안 오고 매번 사무직만 돌고 말이야"

"현장을 모르니 저런 현실과 동떨어진 공문만 내려보내지"

대충 이와 같은 이유들이다. 

이 이유들 중에서 물론 과장된 부분들도 있지만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이유들도 있는 것 같다. 


반면 사무직들도 억울한 부분들이 많다. 

"사무직 인기가 떨어진 지가 언젠데... 직원을 뽑으려고 해도 적은 월급, 많은 업무량으로 지원하는 사람도 없어서 억지로 했던 사람이 또 하는 구조다" 

"월급도 적게 받고, 일도 힘들게 하는데 근무평정 잘 받아 승진이라도 빨리하고, 성과급이라도 높게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수용자 대면하지 않는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현장 직원들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상급기관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등등의 이유들이다. 


근데 말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어차피 현장직이든 사무직이든 똑같은 교도관 아닌가?

현장직만 교도관이고 사무직은 교도관이 아닌 건 아니지 않은가?

지금 당장 하는 일에 따라서 현장직, 사무직으로 나뉠 순 있어도

어차피 나중 되면 사무직 교도관이 현장직 교도관이 되고

현장직 교도관이 사무직 교도관이 된다. 돌고 도는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현장직과 사무직 간의 대립구도를 만들어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수용자들 상대하기도 벅찬데 

교도관들끼리의 갈등까지 더해진다면 더더욱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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