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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호수 Apr 20. 2024

정치인의 재래시장 어묵먹방

사기를 떨어뜨리는 순시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가는 필수코스가 있다. 바로 재래시장에 방문하는 것이다. 그들이 평소에도 재래시장에 자주 가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꼭 선거철이 되거나 민심의 판단을 받아야 할 때가 임박해 오면 갑자기 재래시장에 방문하여 어묵, 떡볶이를 먹거나 국밥을 먹는 사진을 찍어 가곤 한다. 방송이나 신문에 올리기 위한 홍보용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물가에 민감한 서민들을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평소에는 오지도 않던 사람이 몇 년에 한 번씩 와서는 인사치레만 하며 사진만 찍고 간다면 어느 누가 진심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이것은 누가 봐도 'show'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전에 군생활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내가 나온 부대는 사단직할대로서 각종 행사들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사단장님께서 많이 방문하곤 하셨다. 사단장님만 오시면 다행이지... 가끔은 사단장님께서 국회의원을 모시고 온다거나 국방부장관을 모시고 올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그 소식을 듣고 병사들은 만사를 제치고 그분들을 위해 모든 시설과 장비들을 먼지 하나 없게 쓸고 닦고 광내야 했다.


교도소에도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 교도소의 왕은 누구일까? 뭐니 뭐니 해도 소장이다. 소장이 수용동을 돌며 점검을 하는 것을 '순시'라고 하는데 소장이 순시 오는 날에는 근무자들 뿐 아니라 수용자들도 바짝 긴장한다. 뭐 하나 지적을 받을까 여기저기 청소를 하고 옛날 군시절처럼 모포에 각을 잡기도 하고 평소에 쓰지도 않던 근무모와 삼단봉과 수갑이 주렁주렁 달린 근무벨트도 착용하며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를 외친다. 물론 지금은 위와 같은 과도한 의전은 사라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소장님이 오신다고 하면 근무자, 수용자 할 것 없이 모두 긴장부터 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순시는 꼭 필요하다. 소 내 현황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순시를 통하여 어느 정도 업무의 긴장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런 순기능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떤 순시는 근무자의 사기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사실 순시를 왔을 때 소장이나 과장이 보고 듣는 것은 '절대' 평소의 모습이 아니다. 소장이나 과장 같은 상급자가 온다고 하면 근무자는 수용자를 강하게 쪼기 시작하고 수용자는 마지못해서 그때만이라도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평소 문제가 있는 수용자든 문제가 없는 수용자든 소장의 눈에는 모두 다 그저 평화로울 것이다. 한마디로 적어도 소장이 올 때만큼은 현실과 다른 보여주기식 show를 하고 있는 것이다.  


"뭐 불편한 거 없어요?"

순시를 도는 소장님은 수용자들에게 일일이 불편사항을 물어보셨다. 수용자의 고충사항을 그렇게 물어보시면서 근무자의 고충사항은 궁금하지 않으신 듯 말씀이 없으시다. 격려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아니, 그런 말 다 필요 없다. 그저 오셔서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사항으로 오히려 근무자의 사기를 떨어뜨리지나 않으셨음 하는 마음이다.


"소장님! 저 건의사항 있습니다."

불편사항이 없냐는 말에 갑자기 한 수용자가 소장님께 용기 있게 말을 꺼낸다.

"뭔데요?"

"저 외부진료 좀 보내주십시오"

소장은 갑자기 당황한다. 이건 시나리오에 없는 것이다. 소장인 나에게 이렇게 가감 없이 얘기한다고?

"그건 담당근무자한테 얘기해서 처리하세요."

"저 병원 나가게 해 주십시오!! 소장님!! 제발요!!!"

수용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소장한테까지 떼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장은 그 모습을 철저히 외면한 채 사동을 급히 빠져나간다. 뒤처리는 결국 사동담당근무자의 몫이다.


나는 담당근무자로서 소장님의 행동에 약간 실망했다. 사실 저 수용자는 계속 외부병원을 보내달라고 떼를 써서 근무자를 아주 피곤하게 하는 놈이다.

"외부진료 대기자가 많으니 순서를 기다리라"거나

"본인 병세의 경중에 따라서 외부진료 여부를 결정하니 기다려보세요"와 같은 원칙적인 답변도 아닌

"담당근무자에게 얘기하세요"

라는 말은 해결은커녕 어떻게 보면 담당근무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간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대답하실 거면 왜 수용자들에게 일일이 고충사항을 물어보셨는지...


물론 깨어있고 진정 근무자를 생각해 주시는 훌륭한 소장님, 과장님들도 많다. 하지만 아직도 구시대를 답습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비효율적 지시로 교도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자신의 자리보존과 승진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분들도 종종 계신 것 같다.


옆에는 무조건 "YES"를 외치는 호위무사들을 대동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듣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형식적인 순시는 순시를 위한 순시일 뿐이다. 이런 순시는 교도관의 사기를 팍팍 떨어뜨린다. 정치인들이 재래시장을 방문하여 사진만 찍고 가는 것처럼 누구도 그것에서 진심을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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