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저녁은 침대에서

by 정현정

이 글은 우리의 여행 마지막 날에 대한 글이자, 마지막 여행기이다.


여행의 마지막 밤은 시드니에서 맞이했다. 새벽에 B가 차를 달려 도착한 골드코스트 공항에서 우리는 시드니행 비행기를 탔다. B의 차는 골드코스트 공항에 머무는 주차비를 내지 않게 B의 친구가 픽업해줬다. 아침부터 시드니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에 짐을 놓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잔디밭에 앉고, 거리를 걸었다. 특별한 일 없이도 하루가 잘도 흘러갔다. 마지막 저녁은 뭐가 좋을까. 나는 잔디밭에서 구글맵을 열어 시드니의 식당들을 살폈다. 호텔에 잠시 들렀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호텔에 들어가, 널찍한 더블침대에 누웠다. 새벽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였던 하루의 피로가 몰려왔다.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마지막 저녁 식사인데...


© Photo by Gor Davtyan on Unsplash


B와 K는 내가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알아본 듯 그럼 우리끼리 나가서 먹고 오겠다고 했다. 아니, 아니 그럴 순 없지.... 아니 그럴까? 그럼 그럴래?... 난 점점 이불 밑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B와 K는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나는 반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이 호텔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방 마이크라도 가져온 걸까? 반주 소리도 선명했다. 이러다 멈추겠지... 멈추겠지... 일어나기 귀찮아서 참고 있는데 정말 노래가 끝나지 않았다. 더 이상은 못 참아! 프런트에 전화를 하려고 일어난 순간, 내 눈에 보이는 건 시드니 한복판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한 청년이었다. 너무 크게 들려서 옆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낡은 호텔 건물 바로 앞에서 하고 있는 버스킹이었다. 노래를 너무 못한다고 프런트에 신고를 할 순 없지... 웃음이 났다. 잠들지 않고, 그렇다고 깨어있지도 않은 상태로 침대에 잠겨 있었다. B와 K는 끝내 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임을 알았는지 저녁으로 뭘 사갈지 물었다. 아무거나... 조각 피자도 괜찮아. B와 K는 내가 좋아하는 팟타이를 포장해왔다. 시드니에서 제일 맛있는 태국 음식점에서.


친구들이 사 온 팟타이를 호텔방에서 먹고 있노라니, 행복했다. 별 말없이 날 침대에 두고 나갈 수 있는 편한 친구들과 이 곳에 있다는 게. 체력의 한계가 여행 스타일로 이어졌겠지만 나는 여행을 가서도 느긋하게 누워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걷고 탐험하는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다 고행으로 느껴진다. 어떤 여행자들은 종종 나에게 "그럴 거면 거기까지 뭐하러 갔냐"라고 묻지만... 글쎄, 서울에서 자는 낮잠과 시드니에서 자는 낮잠은 다르다고 대답할 수밖에. B와 K는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점과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점에서 매우 좋은 조합이었다. 다음 날, 시드니 공항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B는 호주까지 온 친구들은 우리가 처음이라며 호주에 또 오라고 했고, 나는 '글쎄... 또 오진 않을 것 같은데...'라고 말해버렸다. (도대체 친구를 어디까지 실망시킬 셈인가...) 그땐 긴 비행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또 오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녀와서 반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호주 바다의 파도와 햇살이 종종 생각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우울함을 박멸시키는 그 햇살과 파도를 바라보며 웃던 우리 셋이 가끔 그리워진다. 그런 햇살은 오직 호주에만 있고, 호주에 또 안 오겠다는 말을 해버리는 나를 꼭 안아주는 B도 호주에만 있다.




* 얼마 전에 조카를 보기 위해 한국에 들른 B와 B를 만나러 서울에 온 K가 우리 집에 묵었다. B는 우리 집 인테리어가 마음에 든다며, 집을 갖게 되면 나에게 인테리어를 맡기기로 했다. B가 골드코스트에 집을 갖게 되면 다시 우리 셋이서 호주를 여행하고 싶다.


** K가 쓰는 호주 여행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 다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내가 제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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