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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3. 2020

나쁜 며느리 되기 5

나도 엄마가 필요해!


 나는 엄마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할머니가  채워주셨으니 결핍을 생각해본 적 없던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되어서도 친정엄마부재가 불편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살던 시절도 생각 안 나던 엄마가 나이 오십을 넘어  삶을 헤집어 놓았던 일들이  지나가고 폐허가  마음으로 주저앉고 싶은 순간....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엄마가 있었음 했다.

엄마는 상징적인 의미일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계시다면 생각이 안 났을 것이다


문득문득 할머니가 보고 싶다. 이기적 이게도 힘들고 지칠 때 더욱  할머니가 보고 싶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그립고 그립다.  


돌아가시기 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고 치매로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셨다.

여동생과 하루씩 번갈아가며  들러 돌봐드렸는데 가죽만 남은 할머니 손은

언제나 따뜻하다고 느꼈다.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 나 너무 힘들어..." 하면

할머닌 내 이야기를 알아들으시는지 내손을 꼭 쥐고는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셨다.


할머니는 내 엄마이자 친정이고 나의 정신적 지주였다.

난 이기적 이게도 할머니가 의식 없이 누워만 계서도 살아만 계시기 바랬었다.




할머니에게 나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고분고분하지 않아 새엄마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새엄마가 내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는 가시를 품고 내 영혼 곳곳을 찔렀다.

(한편으론 이제 와서 새엄마를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자기가 낳은 자식도 아니니 이쁘지도 않았을 것이고 모든 게 서툴러 그랬을 거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 방빗자루를 거꾸로 쥐고는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잔소리를 했는데 한 번은 내가 대들었다가

아버지한테 그 얘기가 들어가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내게 잘못했다는 항복을 받아내고서야 아버지는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 새엄마는 먹지도 못하는 소고기를 사다 멍에 붙여주었는데 사춘기였던  

나는 그 상황이 역겨웠다.


할머니 그런 내가 혹시나 더 눈밖에 날까 노심초사하셨다.

나는 할머니 때문에 참았고 가여운 할머니 때문에 참지 않고 대항하기도 했다.




오십이 넘어도  나는 아직 어른이 안되었다.

내 삶이 나이를 따라 흘러가면 나도 거저 어른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저 내 근육의 소실을 채 촉하고 피부 곳곳에 세월의 흔적을 문신처럼 새길뿐

나를 어른으로 온전히 만들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옹졸하고 치사하며 속물이다.


누군가에게 차이고 상처 받을 때마다 내가 찾아가 넋두리할 수 있는 할머니가 내게 없다는 게 슬프다.

여자에겐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멈출 수 없는 30대와 40대를 보내고 보니 시간이 지난 자리에 새겨진 잔주름과

추레한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다.

내 살점과 같았던  아이들이 사춘기를 통과하며 엄마인 나에게도 생채기를 낸다.


 아이들의 투정과 짜증을 받아내다 문득 아이들이 부러워

"넌 좋겠다. 엄마가 있어서.."

라고 말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엄마에게 짜증 낸다고 다 받아주는 착한 엄마도 아니다.

어떨 땐 내가 생각해도 못돼 먹은 엄마이다

모진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 주고 돌아서선 후회하고 다시 반복하고..


다만 내 어릴 적 소원했던 집에 오면 엄마가 있는 집.. 내게 했던 그 약속은 지켰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며느리도 처음이고 아내도 처음이라 모든 게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남들은 쉬운데 내게만 어려운 걸까 싶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쉽고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두려운 게 많아지는 것 같다.





여동생 가족이 거의 매주 우리 집을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도 힘들 때라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어느 때부턴가 여동생도

친청엄마가 필요했던 거 같다.

그래서 내가 동생들의 친정이 돼주기로 했다.

동생을 위해 밑반찬도 해주고 시댁 간다는 날엔 가끔 음식도 해서 보내준다.

집에 오면 먹고 싶다는 음식을 해서 같이 먹으며 수다도 떨고 남편이랑 투닥거린 것을 내게 일러바치기도 한다.

 그런 동생을 보며 한편으로 뿌듯하기도 하고 대리만족 같은 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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