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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30. 2020

나쁜 며느리 되기 4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용기

 


내가 안 갔던 지난 명절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는 딸아이 말에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나의 자리가 딱 그만큼이었던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나 때문에 가족들의 명절이 망쳐지지

않은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 같은 감정이 뒤섞여 나를 착잡하게 만들었었다.




남편과 나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면서 서로 그 문제로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명절과 대소사가 돌아오게 될 것이기에

이 매듭을 풀지 아니면 자를지를 결정하고 싶었다.


남편에게 조용히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우린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점점 치사한 사람이 되는 거 같아.. 앞으로 몇십 년을 이렇게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힘들게 살고 싶지 않아."

 

남편은 나의 말에 시선은 돌리지 않은 채  듣고만 있었다.


"당신은 결혼한 이유가 뭐야? 그냥"  


"뭐긴  뭐야? 가정 잘 꾸리고 애 낳고 잘 먹고 잘살려고 한 거지. 뭐 그러는 너는?"


"나? 난 엄마 아빠처럼 이혼으로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어. 있다 해도 별로 좋지 않고..

또 울 할머니는 평생을 고생하시고 걱정만 하고 사셨어. 그래서 난 결혼 안 하고 할머니랑 살고 싶었어.  

내가 결혼생활을 잘 해낼 자신도 없었고..

그러다 결혼을 결심한 건 당신이  울타리가 되어주고 아무도 상처 주지 않게 지켜주겠다는 말에 용기가 났어.

이 사람하고는 잘 살 수 있을 것 같겠다 그랬어.."


남편은 고개 숙인 채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알아. 네가 잘했지. 우리 집에도 잘한 거.."


"잘해드리면 나도 딸 비슷한 며느리 될 줄 알았고 당신도 내 든든한 내편이 될 거라 생각했어.

근데 둘 다 안되더라. 예쁨 받으려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꼬리 흔들며 뛰어다니는 강아지가 된 기분이야."


"그건 네가 오해한 거야.. 우리 집에서도 며느리 잘 얻었다고 사람들이 그런다고 자랑하시는 거 알잖아?"


" 그래 그런 말로도 몇 년을 이렇게 버텼어. 내가 참으면 좋아지겠지 하고 몇 년은 버티고..

그런 식으로 18년을 버틴 거야. 리고 가장 큰 이유는 내 부모님처럼 이혼해서 아이들에게 상처주기 싫었어.

내 아이들은 엄마가 늘 있는 그런 집에 살게 하고 싶었어. 그래서 내가 더 잘하자. 좀 더 참자 그랬는데..

 이젠 못하겠어. 내가 고장이 났어."


이렇게 말하고 나니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올라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눈물을 닦고 다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 쌓이고 쌓여 자꾸 미워하고 섭섭하게 되는 거 같아. 의무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해야 하고  권리는 없고  

말조차도 못 하는 상황이 내게는 상처고... 그게 우리 애들한테는 부모의 이혼만큼 스트레스가 될 거야.

행복하려고 결혼한 건데 점점 불행해지고 있어 내가..

내게 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해석하고 비참해하고.. 이렇게 늙으면 두고두고 당신을 미워하게 될 거야

더 미워지기 전에 그만하고 싶어"


남편은 화가 나는 건지 아니면 당황해서 인지 호흡이 거칠어졌다.

씩씩거리며 아무 말이 없었다.

몇 분 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의 원망이나 시댁에서의 서운함은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얘기를 한다고 해서 다시 달라지는 건 없을 테고 서로에게 상처만 낼뿐 나 역시 후련해질 것 같지도 않았다.

남편에게 나는 더 이상 시댁일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아니할 수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상담을 받고 있고 우울감이 심해 약 처방을 받은 것을 알고는

놀란 표정으로 몇 번을 진짜인지 물었다.



나는 우리 가족 안에서의 아내와 엄마로서의 의무만을 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고

남편에게도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했다.


어느 쪽의 결론을 내든 나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며 사는 건 내가 너무 힘들어서이다.

미워하고 원망하데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차라리 미움받는 쪽을 택하는 편이 덜 힘들 것 같다.





그보다  그동안 인색했던 나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너무도 하찮아 남들은 웃을지도 모르지만 결혼 후 혼자만의 시간이 없었다.

막상 혼자의 시간을 갖게 되니 너무 어색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십수 년 만에 광화문에 나가 큰 서점에서 책도 사고 한참을 서서 책을 읽었다.

인사동 거리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걸어보았다.

   커피숍 한쪽 귀퉁이에서 책을 읽고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며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해치지 않고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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