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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14. 2020

나쁜 며느리 되기 8

잘하고 있다고.. 말해줘

시댁과 거리두기를 하고부터  시부모님의

 근황을 남편에게 묻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생각하며

내 주변 모두가 그저 안녕하길 바랬다.

시댁을 다녀온 남편의 표정이 어두운 날이면

애써 모른척했다.


어느 날인가 남편은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아... 그니까 엄마도 적당히 하세요.. 네.. 네.. 알았어요"

통화를 끝낸 남편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내게

" 내일 집에 갔다 올게"

나는 걱정된 마음으로

 "무슨 일 있으신 거야?

라고 물었다.

남편은 망설이다

 "싸우셨대.."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어떠한 말을 붙여도

남편의 기분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말없이 일어나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향했다.


시부모님들의 싸움은 이젠  일상처럼

 익숙하고 무뎌졌다.

결혼 50년이 넘었고  일흔 중반이 넘은 연세에도

두 분은 여전히  열정을 다해 싸우신다.


싸움이 촉발되는 시점의 이유는 그때그때마다 달랐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결혼생활 동안의 

희생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아버님께선 어머니한테

고생한다 고맙다 소리를 한 번을  안 하셨다고 한다.

이건 집안 내력인듯하다.. 남편도  감정표현이 인색하다.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낯간지럽다는 핑계로 말을 아낀다.

남편에게 주입식 교육을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쉽지는 않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값을 수도 있고

말 한마디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우리 모두는  망각하고 산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에는 무서워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늘 당신을 업신여기고 아버님 독단으로 살아온 것이 억울하고 분하다는  이야기였다.

 눈처럼 쌓이고 쌓인 감정의 분노가 아버님과의 사소한 말 끝에도

 지난 레퍼토리가 하나하나 나열되고 원망하며

이야기를 하시고 아버님은 입을 닫은 채 자리를 피하셨다.

 

문제는 당신 자식들 누구도 이제는 어머니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고  

아버님한테도 통하지 않았다.

엄마의 이야기가 한동안은 안쓰럽고 애처로웠겠지만

몇십 년이 반복되며 조금도 회복되지 않는 당신들 싸움에

늘 자식들을 참전시키는 일상이 자식들에게도

피로감으로 남게 되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안부전화를 드릴 때면 한 시간이 넘도록 하소연을 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풀리실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 밖엔 없었다.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의 상처를 공감하려 노력했다.

 아버님과 싸우시고는 우리 집에 오셔서

1~2주씩 계실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 집이 작아 손바닥만 해 답답하다

하시면서도 싸우시면 시누이 집은

 사위 보기 부끄럽다고 가지 않으셨다.


  내가 당신 아들에게 갖는 섭섭한 감정을 얘기하면

     남자들은 다 그러니 이해하고 품으라고 하시고는

당신 딸이 사위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면 절대 참지 말라고  

당신 딸이 너무 착해 당하고 살까 걱정이라고 하셨다.

당신도 며느리였고 내게 시집살이가 힘들었다 하셨지만

정작 시어머니는 이야기 들어주는 며느리보다 딸만 보이는듯했다.

어머니는 스스로 모순에 빠지신 거다.


  몇 년에 한 번씩은 모든 가족을 다 불러

 이혼을 하시겠다고 하셨다.

자식들도 몇십 년간 반복되는 상황에 지쳤는지

부모님들 각자 행복을 위해 원하시면

그리 하자고 했지만

  법원은 가지 않으셨다.


 

   두 분은 싸우시면서

살고 계신다.

 아마도 계속 그럴 것 같다.




  내가 나쁜 며느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들 중

하나가 어머니 때문이다.

암묵적인 강요든 아니든 그 세월을 희생하며 살아온 후

후회와 억울함으로 남은 인생을

  채워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 인생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걸

어머니도 아셨을까?

어머니는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하셨을까?

남편을 힐난하고 증오할 시간에

당신을 먼저 사랑하셨다면

좀 더 행복해지지않을셨을까?

행복은 남들이 보기에 (겉만) 그럴듯한 가족이라고

믿는 어머니에겐 이 말이 통할까?




나의 미래가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늦었지만 왔던 길로 돌아가 길을 찾는

나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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