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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16. 2020

나쁜며느리되기 9

어리석음

결혼 후 몇 해 동안은 매년 시부모님들을 해외여행을 보내드렸다.

가까운 중국이나 동남아였지만 그동안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하신 보상을 해드리고 싶었다.

친정엔 못했다.

시댁 경조사에는 꼬박꼬박 봉투를 드리면서도 친정 경조사엔 그 금액보다는 적거나

꼭 해야 하는 거 아님 건너뛰기도 했다.



어머니는 늘 고마워하셨지만 한편으론 늘 다른 집 며느리 이야기를 하셨다.

그집 며느리는 이랬네 저랬네 말씀하셔서 늘 그 말씀을 해석하느라 진땀을 뺐었다.


이제 와서 보면 다 부질없는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그땐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시댁에서 도움을 받거나 장남이라고 무언가를 주신적도 받을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도 전에 절대 키워주지 않을 거라 하셨지만 나는 당연히 내손으로

키우겠다 다짐했었기에 그 말이 상처가 되지 않았다.



문제를 큰아이(딸)를 낳고서부터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볼 때마다 전화를 할 때마다 말씀하셨다.

시누이가 연년생으로 딸만 둘을 낳았는데.. 딸에게도 아들 있어야 한다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볼 때마다 말씀하셨다.

어느 날은 가족모임을 하는 자리에서

"남들 다 있는 아들 손주가 나만 없다. 아들 낳아야 한다. 아들이 있어야 돼"

같이 듣고 있는 시누이가

" 엄마~ 그게 맘대로 돼요?"

"왜 안돼! 남들 다 낳는 아들을 왜 못 낳아? 큰애야 얼른 아들 낳아라.. 너도 아들 하나 낳고"

하면서 시누이 쪽을 바라보셨다.

시누이는 그런 엄마가 부담스러웠는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언니.. 힘들겠어요.. 나도 이렇게 스트레슨데.."

라고 소곤거렸다.

사실 시누이도 아들 낳으려 몇번의 노력을 했다.(할말하않..)


딸을 낳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우선은 시도 때도 없이 아들 낳아야 한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너무 부담과 스트레스가 되었고

내가 육아로 운영하던 회사일에 멀어지면서 남편은 점점 한량처럼 사업을 등한시했고

매일 자정이 되어야 들어왔다.

나는 그때만 해도 내가 좀 더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가 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거지 같은 믿음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나의 잃어버린 10년을 웃프다며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모든 원인을 내 안에서만 찾았다.

남편은 집안일과 육아는커녕 매일 주변 친구. 동생들과 당구. 낚시 등 할 수 있는

모든 잡기를 연마하고 다녔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오면 늘 화난 표정이었다.


도저히 회사를 내버려 둘 수 없어 큰아이들 업고 회사를 나갔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가며 일과 육아를 했다.

내가 회사를 나가면 남편은 이때다 하면서 회사를 비웠다.

큰아이 낳고 2년 후 임신을 했지만 유산을 했다.

처음 유산을 했을 땐 내가 너무 무리했나 보다 했다.

딸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 수술을 하러 갔다.


그날 어머니는 전화를 하셔서 " 몸 관리 잘해라.. 잘 회복해서 아들 낳아야지"하셨다.

누워있지도 못하고 아이 밥도 챙겨야 했고 내손으로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회사에 집중할 수도 그렇다고 육아만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반복되었다.

내가 회사를 나가면 남편은 더 밖으로 돌고 내가 집에 있으면 회사는

개점 휴업 상태가 되니

큰아이를 업고 안고 어떻게든 회사를 나갔다.


다시  임신을 했었는데.. 또 유산을 했다.

큰아이 때부터 다니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 벌써 두 번째 유산이라 걱정된다 하셨다.

한 번만 더 유산되면 습관성 유산이 되어 임신이 힘들다 하셨다.

두 번째 유산 때도 나는 혼자 병원을 갔었고 똑같은 내용의 전화를 어머니에게 받았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아들 아니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걱정을 했었다.

아들이 아니면 실망하실 모습을 생각하면서 간절히 아들이길 바라기도 했었다.


큰아이가 2002년 월드컵 때 태어났고 그로부터 4년 2006년 월드컵 때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가 두 번째 유산 후 6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의사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유산방지 주사를 맞으러 오는 거 외엔

그냥 숨 쉬고 먹는 거 외에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안정기에 들 때까지 기도했다.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고 건강한 아이면 된다고...  




둘째를 낳으러 병원에 가는 날 새벽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건강하게 순산하라고 하시고는 남편을 바꾸라 하셨다.

남편에게 아들인지 딸인지 물으시고는 남편이 모른다 하자 아들 아니면 또 낳아야 하니

중절 수술은 하지 말라고 아들 꼭낳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고 했다.

우리는 둘째가 아들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성별을 따로 말씀드리진 않았었다.

어머니의 새벽 전화를 받고 아이들 낳으러 가면서도 굉장히 찝찝하고 불쾌했다.




그래 그렇게 원하고 원하시던 아들 손주를 낳고는 뭔가 달라졌을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늘 남과 비교하시고.. 도대체 주변에 그리 사람들이 많으신지 누구 손주는 뭘 배우더라 뭘 하더라

뭘 먹더라 끊임없이 남들이 뭘 하는지를 나에게 하나하나 전달하셨고 그리 따라하기를 바라셨다.

학원비를 주시거나 뭘 사주시면서 그러셨으면 그나마

덜 기분 나빴겠지만 그저 말만 나르기 바쁘셨다.

지금 시대에도 아들 아들 하시는 어른이 있다는게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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