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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27. 2020

나쁜 며느리 되기 7

원하지 않은 친절은 사양하고 싶다ㅜ(feat 김장)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처음 하는 농사라 너무나 서툴고 아무것도 몰랐다.

옆의 다른 밭에는 실한 농작물이 자라는데

우리 밭은 뭔가 엉성하게 출발했다.

그렇지만 자연의 위대함인지 봄부터 여름까지 남들에 비해선 수확이 작고 품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쌈채소.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를 열심히 기르고 수확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퇴근 후 밭에 들러 수확하고 물 주고 주말엔 남편을 데리고 밭에 가서 수확을 했었다.

비가 엄청 오고 태풍이 지나면서

여름농사는 게임오버가 되었고

 9월엔 동생네랑 같이 김장용 무.

 알타리랑 갓. 쪽파를 심었다.

올해는 우리 가족 김장을 스스로 해볼 작정이었다.

모종도 심고 씨도 뿌렸다. 과연 씨가 발아를

 할지 걱정이었는데..

아기 손톱만 한 잎이 나더니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커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면 쑥쑥 자라나니 너무 행복했다.

농사를 짓는 농부 맘이 이럴까 하고 흐뭇해졌다.


배추는 절임배추를 살 예정이라 김장 날짜를 고심하며 남편과 김장을 언제 할지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남편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남편이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장을 하신다고 내려오라는 얘기였다.


남편은  

"네.. 얼마나 하시려고요? 조금만 하세요.

그날은 제가 근무인데.. 월차는 힘들고 시간 조정해볼게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남편은 나에게 

" 이번 주 김장한다고 김치통 가지고 내려오라고.."

했다.

난  남편에게 '우리 김장은 우리가 하겠다고 왜 얘기를 못하는 거냐' 고 묻고 싶었지만

속마음을 누르고

 " 그럼 우리 김장하려던 건 어떻게 해? 밭에 기른 거는?" 물었다.

남편은 

" 그냥 우리도 김장하고 인천 김장도하고 해야지"

하길래  나는

" 무슨 김장을 두 번이나 해.. 넣어둘 때도 없는데..

그냥 어머님 하신다니 우린 하지 말자"

라고 말했지만 왠지 김 빠지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시댁에서 김장을 하든 말든 나는 내려가지 않을 테니 상관은 없지만 결혼 2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김장까지 내가 맘대로 못한다는 생각에

다시 울컥해졌다.

매년 김장 양도 어마어마했지만 열에 대여섯 번은 김장김치가 무르고 망하게 되어

아까운 김치를 처치 곤란해하셨다.

다음 해 김장 때까지 남고 남은  김치는 나눠주고

 버리고를 반복했다.


나는 그렇게 버려지는 김치가 너무 아까워 가지고 와서 이리저리 국. 찌게. 전등으로 소비를 했었다.

그런데 어느 김장 때인가 물러진 묵은지를 꺼내시면서 내가 묵은지를 좋아하니 가져가라 하시며

너네는 김치 엄청 먹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당신네는 묵은 김치를 싫어하고

새로 담근 김치만 좋아한다고..

물론 내가 묵은지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물러서 못 먹게 된 김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버려지는 양념이며 들인 공이 아까우니 어떻게든 먹으려 가져갔던 건데 그 말씀이 어이가 없었다.

나는 식구들이 요즘은 김치를 많이 안 먹으니

안 가져가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럼 다 버려야겠다 하셨다.  

나에게 버리시려다 실패하 신건 가 싶어 씁쓸했다.


 시누이네도 신김치는 싫다며 김장하고 1통만 가져가서 김장 때면 엄청난 양의 김치를 시댁 대형

김치냉장고에 가득 채우고

단독주택인 마당에 항아리 두 개도 채우고

 우리가 몇 통 가지고 와도 남아

동네 친구분께도 나눠주셨다.


어머니는 늘 밭에서 배추를 사 직접 절이셨고

나는 전날 내려가  속재료인 무와 갓을 씻고

 준비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어머니께 힘드시니 절인 배추로 하자고

말씀드려도 본인이 하시는 것을

고집하셨다.

힘들게 하시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고생한 만큼  잘 절여지지도 않았다.

준비도 힘들었지만 몇 시간을 앉아 끝도 없는

배추 속을 기계처럼  넣고 나면 허리가 으스러질 것 같았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양푼들과 김장 절였던

수많은 바구니. 비닐. 고무장갑 등을  

마당에서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런 일들은 당연히 며느리인 내 몫이었다.

추운 날 온몸에 물이 튀고 입고 간 작업복은

 김치 국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보다 나를 짜증나겠했던 건 그 많은 김치를 고생 고생해서 만들어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고

이일을 매년 하는데 아무도 적극적으로 말리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버리거나 말거나 어머니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사시라는 건지... 그게 효도라고 믿는 것 같았다.


어머니께 다들 김치도 많이 안 먹고 익은 것들은

 별로 안 좋아하니 김장을 조금만 하시던지

이제 힘들게 김장 마시고 각자들

알아서 해 먹든 사 먹든 하라 하라 말씀드려도

내  이야기는 허공에서 거품처럼 사라지는지

반응이 없으셨다.


 

이제는 우리도 김치를 거의 가져다 먹지 않으니 그 많은 김치들이 어디로 갈지 궁금하다.

 



남편은 시댁일에는 열 일하며 적극적이다.

 이를 테면 우리 가족 일로 일찍 퇴근할 수 없는지

물어보면 단칼로 거절한다.

그런 일로 반차나 월차 쓰면서 회사일에 지장 줄 수 없다고 하면서 시댁 식사 약속이나 행사를 위해서

 당연하게 시간 조절을 한다.

어쩔 땐 내가 너무 질하게 서운해하나 하다가도

 그럴 때마다 심기가 불편하다.


어쨌든 내가 하려 했던 김장은 포기했다.

김장문 제로 남편과 다투고 싶지 않았다.


주말농장 밭에  가서 갓이랑 쪽파 등을 수확해왔다.

남편이 가져가 사용하기 좋게

다듬고 씻어 준비를 했다.

남편에게 봉투(돈)와 밭에서 수확해온

갓과 쪽파를 챙겨주었다.

내가 할 수 있고 해 줄 수는 최선이다.

 


나와 시댁 간에는 아직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나는 변했고 어머니는 여전히 변하지 않으신다.

그 외 가족들은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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