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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Oct 18. 2021

와. 나 이런게 서운해 하네

아기와 거리두기

내가 멋있어, 현빈이 멋있어?


나 : 나 결혼하기 전에 아내가 현빈 멋있다고 하는데 현빈한테 질투나서 화냈잖아.
친구라는 놈 : 니가 왜?
나 : !?


아내랑 연애하던 시절 내가 샘이 너무 많아서 현빈이 멋있다고 하는 말에 질투가 나 화를 냈던 적이 있다.

아내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했던 순간이다.

사실 진짜 삐져서 화가 났을 정도이니, 아내를 너어어어무 사랑해서 그런 걸로 정리하면 좋겠다.


아내가 8월에 먼저 복직을 하고, 나는 9 중순에 복직을 했으니 대략 6 정도 선호랑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호는 엄마바라기이다.

엄마가 퇴근하면 눈을 못떼고, 엄마의 행동 하나하나에 꺄르르 웃는 선호를 보면,

나도 은근슬쩍 다가가서 아내랑 똑같이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냉철한 시선 뿐…

질투가 많은 아빠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선호야, 아빠는 그래도 선호를 너무너무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두 뺨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촉촉함은 숨길 수 없다.


(좌) 선호가 아빠를 볼 때 / (우) 선호가 엄마를 볼 때



와, 나 이런게 서운해하네


“남자에게는 없고 여자에게만 있는게 뭘까요?”
  “인내심,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받는 것, 가슴”

Netflix 영화 <아빠가 되는 중>에서


연애를 하면서 처음 마주했던 나의 찌질한 모습들 못지않게, 선호를 키우면서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구나!’하는 순간들을 조우하곤 한다.


아내랑 육퇴 후 조그만 소리로 넷플리스 영화 <아빠가 되는 중>을 보면서, 여자에게는 있지만 남자에게는 없는 3가지가 ‘인내심’,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받는 것’, ‘가슴’이라는 대사를 듣고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받는 것’을 제외하고) 정말 맞는 말이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받는 것’과 관련해서는 예외적인 사례를 서두에 밝혔으니, 나머지 두 사례를 소개해본다.


1. 여자에게는 있지만 남자에게는 없는 것 - ‘가슴’


선호가 모유를 먹던 때에, 아내는 두시간마다 일어나서 직수를 했다.

아내는 선호에게 좋은 모유를 주기 위해서 3개월 동안 단잠을 잔적이 없다.

그런 아내가 안쓰러워 가능하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도록 서툰 솜씨로 선호를 돌보던 밤이었다.

모유를 먹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호는 울기 시작했다.

안아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살랑살랑 흔들어 주기도 했지만 선호는 울음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짧은 생각엔 배가 고파서 그런 걸로 생각되었지만(하지만 직전 수유 시각을 고려하면 선호는 배가 고파서 운게 아닐 수 있다),

이제 막 눈을 붙이기 시작한 아내를 깨우기가 미안해 내가 해결해보려 애를 썼다.

새벽 시간이었고, 나도 잠이 부족했던 때라 정말 1시간을 넘게 악을 쓰며 큰소리로 우는 선호를 돌보는 것이 정말 고단했다.

보통 이럴 때, 초보 아빠 엄마들은 갓난 아기와 대화를 시도하며 달래보지만 이는 소리없는 아우성에 불과하고, 고막을 자극하는 울음소리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아기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나 역시 결국 참지 못하고 선호에게 짜증을 냈었다.

결국 선호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악을 쓰며 울다가 결국 울다 지쳐 잠이든 선호를 보며,

고작 1시간 가지고 선호에게 짜증을 낸 내 자신이 한심했고, 선호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밤이었다.



2. 여자에게는 있지만 남자에게는 없는 것 - ‘인내심’


선호는 수면 패턴이 53일 경부터 일정하게 잡혀서 저녁 9시 반쯤에 잠이 들어 새벽 5~6시 경에 깨다, 요즘엔 더 늦게까지도 잔다.

아침에 잘 자고 일어나서 울지도 않고 애착인형이랑 놀며 아빠, 엄마가 깨기를 기다리다, 늦잠 잔 아빠, 엄마를 마주하면 빵긋 웃는 선호를 보면,

정말이지 주중의 피곤함이 싹 날아가는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선호가 최근 3일 연속 밤 12시가 넘어 잠이 든 적이 있다.

육아가 고된 이유 중에 하나는 퇴근이 너무 늦기 때문인데, 3일연속 9시부터 12시까지 계속해서 칭얼대며 우는 선호를 달래는 것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됐다.

아내와 번갈아가며 선호를 돌보다 아내에게 먼저 자라고 하고 선호를 안은 채 거실을 서성이며 달래도 너무 졸립고 허리가 아파서 침대에 눕히려 하자 다시 선호가 울기 시작했고, 고단했던 아내도 잠을 뒤척이는 것 같아 다시 선호를 안고 거실로 나섰다.

선호는 아직 잠이 들때에는 쪽쪽이가 필요한데, 잠투정을 할 때에는 울음이 지속되다 보니 쪽쪽이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날도, 다시 선호를 안고 거실로 나왔는데 선호가 한번, 두번, 세번 쪽쪽이를 떨어뜨렸고,

나는 ‘아이 참!’이라며 짜증을 냈다.


과거 짜증냈던 날 이후로, 선호에게 짜증내지 않겠다던 다짐이 쉽사리 무너진 그 날,

나는 다시 내 자신이 한심했고, 선호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아빠가 되는 중


아무리 우는 아기 곁에서 버텨주고 싶다 해도 어떨 때는 아기를 혼자 두어야 할 경우도(안타깝지만) 있다. 요즘 육아 필수과정으로 여겨지는 수면교육을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기를 키우다 보면, 솟구치는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때가 있다.
“하루 종일 칭얼대는 아이 소리에, 얼마 전에는 너무 참기가 힘들어서 제가 아이를 어떻게 할까봐 울컥하는 마음에 자해하기도 했어요. 제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힘들 때가 있어요.”

부모 자신이 자해하고 싶은 충동이 들 만큼 힘들거나 아기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충동이 일어날 때는 아기를 혼자 울게 두고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감정이 끓어올라 결국 아기에게 소리를 지른다거나 때릴 때를 10의 감정이라 치고, 분노가 7~8에 이르렀을 때는 아기를 달래려 하지 말고 안전한 곳에 둔 뒤 잠시 아기에게서 떠나 있는 것이 좋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온다거나 친한 사람과 통화를 하거나 샤워를 해도 좋다. 아무튼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한다. 진정되지 않으면 아기에게 돌아가지 않는 게 낫다.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채 아기에게 돌아가면 갑자기 10이 될 수 있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 아기에게 돌아가도 늦지 않다.

- <느림보 수면교육> (이현주 지음) 중에서


선호를 키우며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네?’라고 느끼는 순간 뿐 아니라. ‘내가 고작 이 정도였네’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아기가 돌이 되기 전에는 주로 아기와 부모의 수면 문제가 그러한 순간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럴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비해 둔 육아서를 펼쳐보게 된다.

놀랍게도 초보 엄마, 아빠들은 상당히 높은 비율로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을 다룬 챕터들을 찾게 된다.


그럴 때는  ‘여기 해결책이 있네!’라고 외치기 보다는 말 못하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우선이다.

‘다들 나처럼 미숙한채로 아이를 만나 부모가 되어가고 있구나. 나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에 무책임한 위로를 받는다.


선호가 악을 쓰며 울었던 날, 선호가 12시가 될 때까지 칭얼대며 쪽쪽이를 수차례 떨어뜨렸던 날도 어쩌면 그 날의 울음은 ‘해결되지 않는 울음’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아이와의 거리두기’라는 육아서적의 조언이다.



때때로 거리두기


아직 말도 못하는 선호에게 짜증을 낸 날,

나는 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고, 내가 아빠 자격이 있는지 되물었다.

여전히 미숙한 부모가 점점 더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치부하기엔 무책임한 변명으로 생각된다.


그럴 때, 아기도 보호하고 나 스스로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잠깐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전적으로 양육자에게 의지하고 있는 아기는 그만큼 순간순가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


단순한 짜증을 폭력으로 치부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짜증과 폭력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아기와 양육자 사이의 간격도 필요한 법이다.

무엇이든 성장하기 위해서는 빈 공간이 필요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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