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에게 귀여움을 줬어
* 공유(share)와 육아(parenting)의 합성어로,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
2016년, 오스트리아에서는 한 소녀가 본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동의 없이 수년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소했다는 뉴스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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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이 이야기는 와전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를 계기로 부모・자녀 사이에 ‘잊힐 권리’ 문제가 수면 아래서 끓어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Z세대 부모를 위한 SNS 심리학> (케이트 아이크혼 지음, 이종민 옮김) 중에서
선호가 태어나고 사진기를 손에 드는 날이 많아졌다.
아내와 선호와 함께 산후조리원에서 생활할 때에는 매일매일 선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선호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사진을 많이 찍다보니 내 핸드폰의 용량 중 사진과 동영상이 차지하는 양이 이미 100GB가 넘었다.
고용량의 사진과 동영상은 별도의 저장장치에 보관중이니 선호를 담은 사진과 동영상은 이미 500GB는 족히 넘을 듯 싶다.
가끔 선호에게 의사를 묻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호가 담긴 수천장의 사진 중에 선호의 명시적 동의를 구하고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이, 아기가 너무 예뻐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우리 아기 이쁘죠?’라고 대놓고 물어보기에는 쑥스럽기고, 가끔 팔불출 같기도 하고, 자랑은 역시 SNS이기도 해서,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정말 간절하다.
나와 아내도 SNS를 꽤 하는 편인데, 선호가 태어나기 전에 아이 사진을 SNS에 올리면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선호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하지 않나 생각도 들고, 선호는 ‘나의 것’이 아니니 내 맘대로 선호의 사진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선호가 명시적으로 동의하기 전까지는 선호의 사진을 SNS에 올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나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자는 언제나 나이기에, 결국엔 내 인스타는 선호 사진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2016년 10월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시에 사는 대런 랜달(당시 13세)은 부모가 자신을 당황스럽게 하는 유아 시절 사진을 약 10년 넘게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로 자신의 부모에게 합의금 35만 캐나다 달러(약 3억원)를 요구하는 소송을 낸 적이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사생활 보호법에 따라 자녀의 사진을 배포하거나 SNS에 올리면 상당한 액수의 벌금 또는 1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고, 베트남의 경우에는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 등 개인정보를 본인 허락 없이 SNS에 올릴 경우 부모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이상 경향신문 ‘SNS와 초상권 시리즈’ 연재 기사 참조,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902061026001).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행법상 당사자의 동의 없이 아기의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게재한 부모를 형벌로 다스릴 수는 없다.
초상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와 관련한 최근 대법원 판결을 고려하면, 아기가 부모를 상대로 자신을 식별할 수 있는 얼굴 등을 촬영하고 이를 인터넷에 게재한 행위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있겠으나, 아기의 생식기가 드러나는 사진이나 배변활동을 하고 있는 사진과 같이 아기가 수치심을 느낄만한 사진이 아닌, 아빠 엄마와 행복하게 놀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아기의 청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그 밖에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해 함부로 촬영되거나 그림으로 묘사되지 않고 공표되지 않으며 영리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이러한 초상권은 헌법 제 10조 제1문에 따라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다. 또한 헌법 제10조는 헌법 제17조와 함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데, 개인은 사생활이 침해되거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않을 소극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도 가진다. 그러므로 초 상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위 침해는 그것이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거나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유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0다227455 판결 참조
자... 그럼 아빠, 엄마들 맘 편하게 인스타 합시다!(?)
뜻하지 않게 세계 최초로 널리 확산된 인터넷 밈이 된 라자가 받은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하자마자 라자는 얼마 안 되는 친구들마저 잃었고, 학교에서 심하게 왕따를 당했다. 따돌림이 너무 심해서 라자는 학교를 중퇴하고 학년이 끝날 때까지 어린이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영상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라자에게는 팬도 생겼는데, 이들 중 일부는 감동을 받은 나머지 라자에게 아이팟과 아마존 상품권을 선물하려고 온라인 모금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선물들이 라자에게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 <Z세대 부모를 위한 SNS 심리학> (케이트 아이크혼 지음, 이종민 옮김) 중에서
사랑하는 아기의 사진을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공유하는 부모들은 훗날 아이가 성장하여 자신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형사고소를 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신의 셰어런팅으로 인해 아이가 혹여나 상처를 받고 피해를 받을까 염려할 뿐이다.
셰어런팅이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기억과 망각의 문제이다.
우리는 현재 아기는 물론 부모 스스로도 아기의 동의 없이 촬영되어 게재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온전히 통제하기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때에 병을 얻게 되는 것처럼,
잊혀지고 싶은 것이 잊혀지지 못할 때에도 병을 얻게 되거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앞서 인용한 대법원 판결에 적시되어 있듯, 개인은 사생활이 침해되거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않을 소극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도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아직 옹알이를 하는 중인 선호도 당연히 가지고 있는 권리이기에, 나와 아내는 SNS를 할 때 아래와 같이 나름의 규칙을 지키기로 했다. 훗날 선호가 자신의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1. 우리 가족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은 비공개 계정에 업로드하기
2. 비공개 계정은 실질적 친분이 있는 사람하고만 친구 맺기
3. 선호에게 수치심을 야기할만한 사진이나 영상은 올리지 않기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 사진과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는 ‘셰어런팅sharenting*’은 아빠보다는 엄마, 특히 갓 출산한 아기 엄마들에게 더 흔히 나타난다. 일부 연구자들은 보통 엄마가 집에 혼자 남아 어린 자녀를 보살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립감에서 벗어나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 <Z세대 부모를 위한 SNS 심리학> (케이트 아이크혼 지음, 이종민 옮김) 중에서
부모들이 아기 사진을 공유하는 이유는, 아마도 아기가 너무 예뻐서 느끼는 행복감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거나, 때때로 아직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기와 단둘이 하루종일 있을 때 느끼는 고립감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육아의 고단함을 위로 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아기의 인격은 온전히 아기의 것이고, 비록 부모가 양육을 한다고 하더라고 아기의 인격권을 침해할 권리를 부여받는 것은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셰어런팅을 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선호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선호야, 아빠 인스타 마렵지만, 차..참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