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은 나의 책임
어릴적부터, 우리 아빠는 늘 뭔가를 하느라 바쁘시다- 고 생각했습니다. 일 때문에 바쁜것과는 달랐어요. 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화분을 돌보느라 바쁘셨고, 함께 쇼핑을 가거나 산책을 나가도 보고 싶으신게 많아서 바쁘셨어요. 함께 여행을 가도 부지런히 구경을 하시느라 바쁘셨고 은퇴를 하신 지금도 새벽부터 책을 읽으시고,작은 밭에서 이런저런 농작물을 키우느라 바쁘십니다.
어릴때는 왜 아빠의 중심은 내가 아니지? 왜 아빠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내가 아니지? 서운해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아빠가 저를 예뻐하지 않으셨던 것은 아니예요.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저에게 애정을 쏟으셨어요. 그럼에도 아빠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거예요. 아빠에게는 아빠만의 세계가 있었던 거예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아빠만의 세계. '아빠'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계. 늘 아빠의 중심이 나였으면, 아빠는 그저 아빠이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바랬던적도 있었던것 같아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내 안에도 그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결혼전에도, 아이를 낳기 전에도 알고는 있었어요. 나는 자아가 단단하고 크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다정하고 희생적인 '엄마가 될 거라고 믿었어요. 나의 뾰족함, 거대한 자아, 혼자만의 세계 같은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증거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결국엔 자유와 고독을 추구하는 자아, 희생적이지 못한 고집같은- 내가 미성숙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 일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무엇보다 '나다운 엄마'를 찾아가게 해주었어요. 희생적이고 다정적인, 아이가 삶의 중심인 엄마- 가 되어야만 좋은 엄마라는 환상과 틀에서 벗어나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이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당히 이기적이지만, 필요할땐 희생하고 인내할 줄도 알아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맞춰주는 것은 못해도 같이 즐길것을 찾는 것에는 열정적입니다. 자기 연민이나 죄책감은 단칼에 사절하는 씩씩하고 강한 엄마이기도 합니다.무엇보다 나의 행복은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엄마예요. 우리 아빠처럼요. 어릴때도 지금도 단 한번도 아빠의 행복은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빠가 나라는 존재와 무관하게 무엇인가에 몰두하시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의 세계에서는 아빠가 중심인거예요. 이제는 그 사실이 하나도 서운하지않아요. 오히려 그 사실이 이제는 내게 안도감과 자유를 줍니다.
나의 행복이나 꿈의 성취 같은 것은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아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큰 행복을 주는 것도 사실이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성숙을 경험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그건 어디까지나 '엄마로서의 나'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행복과 만족감, 꿈의 성취 는 오로지 나의 몫입니다. 나는 나에게 충실할 의무가 있어요. 그것이야 말로 나의 책임입니다.
그리하여, 엄마로서의 역할과 나라는 개인의 욕망, 아이가 중심인 순간과 내가 중심인 순간을 매일매일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조율을 통해 '나다운 엄마'를 찾아가고 있어요. 그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 보았어요. 지금은 아이가 서운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겠지만, 언젠가는 고마워하리라고 믿고 있어요. 내가 미래의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주기위해서 매일매일 치열하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를 고민합니다. 그 선물의 이름은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