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올 겨울 눈이 참 많이 왔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눈이 펑펑 내린 날.
그런데 눈이 와도 너무 자주 와서 눈을 과소평가해버린 것이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눈이 오고 길이 어는 날씨에 높은 굽의 부츠를 신고 나온 것일까
아이의 머리통을 부여잡고, 그녀의 몸을 지팡이 삼아 오분에 한 발자국을 겨우 떼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두둥
계단이 등장했다.
그것도 좁고 가파르고 미끄러운 계단.
해가 들지 않아 표면이 꽁꽁 얼어버린 계단.
날 삼켜버릴 계단..
여기서 삐끗해서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상상이
너무나 그럴싸해서 소름이 돋았다.
우진아..
내 말 잘 들어.
중요한 얘기야.
엄마가 여기서 넘어지면
망하는 거야.
넘어지면..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존재가 아닐 것이야.
그러니까
혹시 내가 여기서 넘어져서 굴러 떨어지면
엄마를 그냥 여기 두고 가.
애써 구하려고 하지 마. 불가능해.
가서 부디
잘 살아..
전쟁통에 부상을 입고,
'나는 이제 짐이 될 뿐이야.. 날 두고 가' 라며
자신을 구하려는 동료를 밀어내는 군인의 심정이 이러할까. (응. 아니야 )
아이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말을 하고,
나를 두고 먼저 가라고 보내주고..
계단 난간을 잡고 바들바들 떨면서 한 칸씩 내려갔다.
내가 여기서 넘어지면 쿨하게 날 두고 가도 돼..
두어 칸마다 한 번씩 아이에게 다시 또 당부하고 당부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
엄마 없어도..
씩씩하게..
어어... 어? 그런데 어느새 무사히 계단을 다 내려왔다. 그래서 나는 나의 당부가 무색하게 삶의 의지와 욕심을 움켜쥐며 짱짱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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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런 희생(?)을 자주 택하는 편은 아니다.
나는 자주 계산적으로 이기를 택한다. 우리를 위기의 순간에서 구하기 위해서.
그날도 눈이 많이 왔고, 길도 마찬가지로 미끄러웠다.
아이는 미끄럽다며 자꾸만 내 손과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자기 무게를 실어서 당기는 바람에 내 몸이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었다.
어어어.. 나한테 네 무게를 싣지 마.
그러다가 내가 넘어져..
우진아.. 잘 들어..
여기서 네가 넘어져서 다치면 엄마가 너를 업고 병원에라도 갈 수 있지만
내가 여기서 넘어져서 다치면
우리 둘 다 망하는 거야..
여기 인적도 드물고, 구급차를 불러도 이미 늦을 거야.. 그러니까 날 붙잡지 마..
내가 널 붙잡아야 해..
그래야 우리 둘 다 살 수 있어
내 무게를 아이에게 싣고 아이를 앞세워서 걷는다.
나의 빠른 계산과 기지로 우리는 무사히 그 위기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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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이륙 전에 승무원이 보여주는 안전 데모 중-사고가 나면, 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모들은 먼저 자신의 안전부터 확보한 다음에 아이를 챙기라는 대목에서 늘 감동한다. 얼핏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이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잘 계산된 방침이기 때문이다.
잘 계산된 이기는 이처럼 다른 사람을 살린다.
요즘 자동차 뒤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같은 스티커 대신에 사고가 나면, 아이를 먼저 구해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아이의 혈액형이 쓰여있는 스티커를 자주 볼 수 있다. 그걸 볼 때마다 생각한다.
안돼.. 내가 살아야지 아이도 살지.
내가 죽고 아이만 살면, 아이 혼자 어떻게 살아.
나는 '사고가 나면 우리 모두 구해주세요'라고 써써 붙여야지. 생각한다.
아니면, '아이는 내가 구할 테니 나를 먼저 구해주세요'라고 쓸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되다 보면
나의 엄마로서의 자질에 대해 살짝... 회의가 들지만,
그것도 잠시- 내 아이를 가장 사랑해주고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은 나니까,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내가 무조건 잘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 건강, 내 생존, 내 행복 욕심내서 챙겨야지. 그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니까.라는 결론으로
자기 회의로 빠져들어가는 스스로를 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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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는 서로의 발을 마주한 채로 소파에 누워
아이는 왼쪽에서 나는 오른쪽에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아이의 발이 너무 차가운 것이다.
아니 내 딸..
발이 왜 이리 차?
몰라.. 추워서 그런 거 같아. 나 추워 엄마.
어구.그랬쪄요..
엄마가 따뜻하게 해 줄게..
나는 내가 신고 있던 양말을 발에 반쯤 걸치고
거기에 아이 발도 함께 넣었다.
어때? 따뜻하지?
아니 엄마.. 불편해.. 그냥 엄마 양말을 벗어서
날 신겨줘
싫어.. 엄마도 추워
그러면 내 방에 가서 양말 좀 가져다줘
싫어.. 엄마도 귀찮아..
한양 말 두발의 상황은 그렇게
누가 이기나 보자-의 대치상황으로 급변했다.
한 시간을 저렇게 있었으니, 둘 다 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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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희생적이고 상당히 이기적인 엄마라서 아이는 싫을 때도 있을 것이다. 엄마라는 사람이 자기도 춥다고 양말 한 짝을 온전히 내어주질 않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거 하나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내가 괴롭지 않을 정도만 희생을 하므로, 언젠가 네가 그 희생에 보답하지 않는다고 실망할 일도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널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데!! 같은 대사는 하게 될 리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먼 훗날 정신이 좀 어떻게 되서 혹시라도 저런 말을 하게 된다면 너는 이렇게 대답해주면 된다.
엄마가 날 어떻게 키우긴 적당히 키웠지!! 그리고 엄마가 날 위해 포기한 거.. 하나도 없는데?!
앙칼지게 나를 째려보며 저렇게 대답해주면 엄마는 진심으로 뿌듯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