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그림책과 그림 에세이
나는 어릴 때 화가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림 그리는 소질이 있었고 책을 좋아했던 나는 멋진 화가나 작가를 보면서 동경의 마음을 품었었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도 어렵고 현실과 동떨어진 머나먼 꿈이자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는 나름 집안 형편을 생각하며 거창한 나의 꿈은 그저 꿈으로 접어 넣어 두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야지 생각했다. 꼭 내 이름으로 된 작품을 하나라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 한 작품만이라도 말이다.
그림 동아리 멤버 중 한 명이 정보를 알려줘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알게 되었다. 좋은 기회다 싶어 수업 신청을 했다. 내가 만드는 나만의 그림책이라니! 너무 멋진 일이었다.
나는 수업을 하면서 그림책의 소재와 주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잘 떠오르지 않았다.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책 내용을 발표하는 동안 나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거의 3주째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포기 직전까지 갔는데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라는 선생님의 격려에 내일 까지라는 데드라인을 정하고 그동안 그린 드로잉 북을 꺼냈다.
그림을 넘기면서 보다가 담쟁이 그림에서 갑자기 머리에 번뜩 영감이 떠올랐다.
정말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이 이랬을까? 갑자기 떠오른 이야기가 머릿속에 순식간에 몽땅 떠오르는 것이다. 마치 영상을 빨리 감기 한 것처럼.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게 바로 영감일까?
두 그림이 나의 첫 그림책의 주인공이다.
담쟁이와 덩굴이. 둘은 위로 올라가는 습성을 지닌 식물들이다. 그런데 올라가는 방식이 좀 달랐다.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하나는 스스로 벽을 타고 오르고 하나는 지지대를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었다. 이 다른 점이 이야기의 토대가 되어 스토리가 나왔고 스토리가 나오고 나니 그림은 술술 그려졌다.
그림책이 완성되고 소장용 책으로 만들어져 나온 날 우리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어설프지만 세상에 하나뿐이 나만의 작품인 것이다. 정식 출판을 하지 않아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어도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의 책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만들어진 책은 나의 아이들과 조카들에게 선물했다. 너무도 재밌게 읽어주니 기뻤다. 아마도 작가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 같다.
이제 어떻게 책을 만드는지 알게 되었고, 나도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이어 그림 에세이 수업에 참여했다. 에세이 영역은 구상이 쉬웠다. 엄마와 우리 자매들의 이야기라 술술 줄거리가 만들어졌고 그림도 금방 그려졌다.
앞서 만들었던 그림책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또 한 권의 소장용 책이 만들어졌다. 엄마께 선물로 드렸더니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가 좋아하시니 얼마나 뿌듯하던지. 내가 만든 책이 한 사람이라도 감동을 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림과 글이 함께 하는 그림책과 그림 에세이는 충분히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장르이기도 하다. 어렵겠지만 왠지 계속하고 싶어졌다.
두 권의 책을 만들어 보면서 가능성을 확인했고 더욱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정말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사실 내 아이들에게 나의 작품이라는 유산을 남겨주고 싶었는데 그건 이미 이루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어 그림과 글로 세상을 따뜻한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는 것에 도전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