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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사공사칠 Feb 11. 2022

미묘함에 대해

Daft Punk - Something About Us를 듣고

나는 너무 좋은 노래를 들으면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저 들을 때마다 어디론가 빠져드는 기분을 차분히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이 느낌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Something About Us>를 처음 들은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축구를 하다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었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었다. 타블로의 ‘꿈꾸라’에서였나. 창 밖의 빗소리 위로 이 곡의 베이스라인이 얹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미묘함이 필요할 땐 이 곡을 듣는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를 때, 그걸 어떻게든 말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살짝 삐져나온 감정이랄까?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닌 것이 그저 ‘something’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 있다. 설레고 신나고 좌절하는 온갖 감정 범벅이 썸씽의 정체인가.


이 곡이 그 무언가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 이유는 편곡 안에도 있다. 몇 안 되는 악기들은 몇 안 되는 음을 지닌 채 자리를 내주다 만나다를 반복한다. 한꺼번에 등장하는 법이 없다. 이 곡이 너무 좋아 악기별로 따라 칠 때마다 그들 간에 생긴 미묘한 공간에 놀란다. 모든 게 더하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빼며, 이를 통해 다른 이가 들어올 자리를 내주는 게 이 곡의 미학이다. 베이스는 기타 없이, 기타는 베이스 없이 살 수 없으므로. 서로 배려하며 차츰차츰 만나가는 게 ‘something’을 훼손하지 않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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