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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사공사칠 Oct 07. 2023

쉼표는 공기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교묘한 콜라보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 중 하나는 쉼표다. 쉼표를 무시하면 표현의 맛이 덜하나 그 존재 이유를 느끼는 학생은 드물다. 아이들이 숨을 참고 와다다다 건반을 두들길 때 나는 쉼표를 공기에 비유하곤 한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어디에나 있다.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 쉼표는 악보의 공기다. 쉼표를 지키지 않으면 노래가 죽는다... 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명을 들은 7살 하윤이는 음표로 인해 부산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쉼표의 울림을 맛보기 시작한다. 정확한 쉼표의 표현으로 인해 음표들도 제자리를 찾는다.


중국의 고대 철학자 노자가 악기를 연주했다면 그는 분명 쉼표의 맛을 제대로 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세상을 ‘유무상생’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함께 사는 개념이다. 경복궁의 처마에 운치가 서린 이유는 그것을 떠받치는 드높은 하늘 때문이다. 처마 끝의 조각들이 파란 하늘 위 구름을 응시하는 장면은 한 편의 그림이 되어 살아난다. 절대 둘 중 하나만 있다고 만들어지는 작품이 아니다.


처마와 하늘의 콜라보


있음과 없음이 함께 만나 화합을 이루는 세상을 꿈꾸던 그의 주장은 불교의 ‘공’과 유사하다. ‘비어 있다’는 뜻을 지닌 ‘공’의 참 뜻을 알기 위해선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기 이전 인도로 가야 한다. ‘공’의 기원인 산스크리트어 ‘sunya’는 부풀어 오른 모양으로 속이 비어있음을 나타내는 단어다. 그 속엔 무엇이든 채워지는 동시에 비워진다. 있음과 없음이 실타래처럼 연결된 개념이다. 이토록 오묘한 개념은 당나라로 넘어와 그 의미를 담을 말그릇을 찾지 못한다. 이에 현장 법사는 ’비어 있다‘는 글자를 사용해 그나마 원래 뜻에 가까운 해석을 시도했다.


음악이 처음 발견된 시점부터 오늘날까지 몇몇 뮤지션들은 음표와 쉼표의 화합을 이루기 위해 애썼다. 그중 내 마음에 깊숙이 들어온 분은 얼마 전 작고하신 Ryuichi Sakamoto다. 그의 대표작 <async>​는 암 투병 중 죽음이란 주제에 깊이 몰입한 결과물이다. 앨범의 처음부터 끝을 경청하다 보면 소리와 소리가 아닌 것이 교묘히 섞이다가 어느덧 무엇이 소리고 무엇이 비-소리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음악에서 소리와 비-소리를 구분하는 작업은 의미가 없다. 둘은 서로에게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 서로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마치 삶과 죽음의 관계를 떠올리는 둘의 묘한 섞임은 사카모토의 작고 이후에도 삶의 ‘공’적인 성질을 드러내는 교과서다.


흑백은 음표와 쉼표의 관계에 대한 그의 탐험을 상징하는 색이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조심스럽게 건반을 하나 눌러본다. 그 뒤로 길게 이어지는 쉼표의 연주를 듣는다. 해머가 현을 때린 후 옅게 퍼지는 잔상에 마음이 울컥한다. 침묵은 갈수록 짙어져 음표가 머문 자리를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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