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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사공사칠 Aug 25. 2023

다시 브런치를 쓴다

삭제될 뻔한 1년 간의 기록

다시 브런치를 쓰기로 한다. 약 마지막 글을 올린 지 1년 반 정도 지난 것 같다. 


초창기에 내가 브런치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한국의 젊은 뮤지션으로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늦은 시간까지 음악을 수련하며 젊음을 꿈과 맞바꾼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20대를 직업 작곡가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음악 행위로 돈을 벌어먹고사는 것,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자 24시간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한국 나이로 29살, 아홉수라는 단어에 걸맞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대학을 졸업한 해에 경증 우울증을 겪었으나 단시간 내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모양새가 달랐다. 소속해 있던 작곡팀에 큰 녹음 부스가 있었다. 그곳은 무소음의 공간이다. 어느 날 침묵의 공간에서 나는 이유 모를 압도감과 공포를 느꼈다. 나의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불안이 머릿속을 채우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부터 이틀 동안 잠이 쏟아졌고 무기력해진 나는 결국 팀에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두 달간의 기억은 내 몸 하나 누일 좁은 방 한편에서 시작해 그곳 창문에서 끝난다. 나는 방을 나올 수 없었다. 직업 작곡가로서 나의 역량은 0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누워 지낸 지 한 두 주 즈음 지났을까. 새 출발을 위해 구직 사이트를 들락날락 했다. 나는 음악 전공이 아니므로 일반적으로 내 친구들이 가는 회사들에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약효가 돌기 시작할 때 즈음 활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귀는 막을 수 없었다.


눈은 감을 수 있으나 귀는 막을 수 없다. 창 밖으로 들어오는 새소리, TV 드라마에 깔리는 배경 음악, 심지어 길거리 핸드폰 매장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까지도 내게 소리쳤다. 고장 난 뇌는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이제 다신, 음악을 마음 편히 들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소리들은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약 5만 원가량 되는 비싼 귀마개를 샀다. 귀가 열리면 토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를 막자 심장의 박동이 들려왔다. 마치 테크노 클럽 같았다. 귀를 자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신은 인간에게 청력을 줘서 내가 이 고생을 하는지 싶었다. 


___



좁은 방에서 나온 지 1년 즈음되어가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낀 당시의 나는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며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 어차피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어떠한 것도 할 수 있었다. 잔재주를 살려 7080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자 생활을 하고 공연 기획사의 알바로 내한 아티스트 통역을 했다. 밥배달과 택배 상하차를 하며 세상과 호흡했다. 글 한 편으로 정리하기엔 여정이 기나 차츰 브런치에 풀어나갈 예정이다. 꼭 풀고 싶은 이야기들은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은사인 배철현 교수의 the chora에서 고전과 경전을 공부

2) 혼네의 내한 공연을 의전, 그리고 엔터사 A&R을 도전

3) 실전태권도 기반으로 격투 선수 데뷔


이외에도 1년여간 크고 작은 공연과 가까운 이들의 앨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직업 작곡가라 생각지 않는다. 나의 하루 말미엔 카프카의 시간이 있다. 낮에는 노동 보험 공단에서 일하던 그는 밤에 딱 한두 시간 글을 썼다고 한다. 돈, 명예 등 속세가 잠든 그 시간에 그는 글쓰기에 몰입했다. 나 또한 그처럼 수련자의 길을 걷겠다 다짐해 모두가 잠든 밤 사활을 건 앨범을 만들고 있다. 이에 관한 이야기도 추후에 풀 예정이다. 



___


올해 어느 날, 서류에 합격한 엔터사의 면접을 하루 남기고 상념에 잠겼다. 그리고 깨달았다. 음악은, 그리고 소리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존재할 뿐 내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음악은 물과 같다. 들리는 소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물에 비친 자신의 잔상일 뿐이다. 빛과 바람, 물속의 물고기들이 상을 왜곡시킬 순 있으나 내 얼굴을 가릴 순 없다. 1년 전 비좁은 방에서 귀를 자르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절망을 딛고 일어나 물에 비친 낯선 이를 발견한다. 흔들리는 물결처럼 공기를 매질 삼아 흐르는 소리는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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