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개최하는 AI 박람회 참관기
내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시작하는 AI박람회를 다녀오기 위해서 출장길에 올랐다. 회사가 직접 참가하는 게 아니라 AI, Metaverse 등 관련 기술과 비즈니스가 주변국 일본에서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시장을 알아보기 위해서 혼자 가게 되었다. 미리 참가회사들의 기술과 서비스들을 보고 스터디를 하였고 미리 요청한 현지 회사들과 미팅도 하면 어느 정도의 시장 흐름을 알 수 있이리라.
과거 일본 출장을 혼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영어의 문제보다는 친절하게 다가왔다가 일본어를 잘 못한다고 하면 뒷걸음치는 일본 사람들로 곤욕을 치렀던 경험이 있다.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얘기를 하다가 일본어를 못하면 급하게 피해버리는. 그런 경험. 이번 출장에서는 음성 인식 및 통역을 할 수 있는 Chat GPT를 활용할 생각이다. 충분히 확인했고, 학습을 했기 때문에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될 거다. AI 시대가 아닌가!
내가 해외 출장을 결정하면 가장 두렵고 망설이게 하는 녀석이 비.행.기 다. 세상에는 비행기 타는 걸 좋아하는 사람(놀랍도록 신기하지만 너무 부럽다고 할까.)과 극도로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불행히도 후자에 속한다. 비행기는 나의 마음과 무의식 속에 있는 모든 공포를 끌어올리는 몇 안 되는 유일한 공포툴이다.
사업을 위해서 해외를 자주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나는 언제나 참고 견디고 용기를 내서 비행기를 탄다.(스타트업은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가야 한다. 비즈니스의 기회가 보이면 불나방처럼 불구덩이로 돌진하는 것도 아마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 이런 극도의 비행 공포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코노미를 언제나 고집했다. 비싸기도 하지만 단지 이동수단으로 여기는 고작 비행기에 그것도 공포의 추억을 갖게 될 게 뻔한데 비싼 돈을 주고 비즈니스석을 타고 싶지 않은 고집 때문이다. 아직 나에게는 도착하면 날아가버리는 휘발성이 강한 돈쓰임이라고 할까..
출발 며칠 전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간혹 CEO에게는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무기력감이 오기도 한다. 오래가면 슬럼프, 심해지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여 대표에게 무기력감은 무서운 신호다) 급하게 B777-300(338석)을 찾고 비즈니스석으로 예약을 다시 하게 되었다. 비행기 기종을 확인하고 예약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으리라. 나는 비행기표 예약 때 항공기를 꼼꼼히 본다. 거의 모든 항공기의 기종과 좌석수 등을 알고 있다. (나만의 선호 기종이 있을 정도다) 나로서는 두려움을 줄이기 위한 중요한 행위지만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민망한 부분이긴 하다. 아이러니하게 몸 상태가 좋지 않게 되어 출장길 처음으로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게 되었다. 몸이 아파야 돈을 쓰는... 참 어리석을 행동 아닌가. "많거나 적거나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재산이 가장 많아. 쓸모없는 거야. 돈은 쓰면서 살아야 해."라는 얘기를 최근에 들었는데, 아파서야 비즈니스석을 타니 뭐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공항에 도착해서야 좌석의 변동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타는 비행기는 일등석이 따로 없는 걸로 아는데(항공사의 비행기 기종에 관심을 가지면 이런 쓸데없는 것들도 알게 된다.) 항공사 직원의 "아침에 기분 좋은 일이 생겼네요"라는 얘기를 듣고도 별생각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무덤덤하게 얘기했다. 내 몸과 마음의 피곤이 빨리 출국심사를 마치고 쉬라고, 잠도 못 자고 새벽부터 왔으니 빨리 좀 쉬자고. 얘기하고 있었다. 새벽 비행기와 밤비행기 모두 정말 싫지만 작은 대표들은 주로 새벽 비행기나 밤비행기를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도착하는 곳에서 일을 더 하기 위함이니 참 짠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체크인할 때 항공사 직원이 한 얘기가 이해가 갔다. 내 좌석이 한 줄 앞으로 가게 된 것이다. 무려 338명이 타는 비행기의 가장 첫 줄. 그것도 출입구 옆에 앉게 되었다. (대한항공의 비즈니스는 프레스티지석인데, 여기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스위트, 슬리퍼, 플러스, 프레스티지. 스위트가 가장 괜찮고 슬리퍼도 괜찮은데, 슬리퍼인 경우 같은 비즈니스석이라도 첫 줄과 나머지줄의 차이가 있다. ) 한 줄에 7개의 좌석이 있는 곳에서 6개의 좌석이 있는 좀 더 넓은 곳으로 바뀐 것이다. 이게 기분 좋아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첫 줄에 앉게 되니 생각하지 못했던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줄에 앉아 있는 나를 제외한 다섯 명의 사람들이다.
평일 이 시간에 도쿄까지 짧은 거리를 비즈니스를 타고 가는 이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일까? 하는 허접한 생각이 갑자기 들자 잠깐잠깐씩 관찰하게 되었다. 내 옆좌석 A 씨는 30대 후반의 후드티에 운동복 하의 그리고 크록스를 신고 있는 있는 건장한 남성이다. 좌측 두 자리에는 서로 모르는 40대의 정장을 말끔히 입은 여성. 그 옆자리에는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성이다. A 씨를 건너 좀 멀리 있는 우측 두 자리는 20대 후반의 젊은 커플이다. 이 커플은 입장할 때 관찰할 필요가 없음을 바로 알았다. 커플이 모두 명품인걸 보면 원래 돈이 많은 금수저일 가능성이 높다. 이 젊은 커플은 그냥 돈이 많은 커플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관심사가 아니다.
대략 비행 두 시간 동안 한 명은 책을 보고, 두 명은 PPT로 작업을 하고 있다.
먼저 50대 후반의 남성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벤 호로위츠 [하드씽]을 읽고 있었다. 하드씽. 좋은 책이다.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니, 아래에서 리뷰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어떤 결정을 하고 그 선택을 뒤돌아 보고 있으리라. 아니면 책을 읽으면 그냥 마음이 놓이는 분일 수도 있다.
두 번째 40대 후반의 여성은 자료를 만들고 있다. 이룩하고 얼마 후부터 계속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잘 갖춰진 옷이(겉옷은 보관해 주지만) 구겨지지 않게 꼿꼿이 앉아서 일을 하는 게 꽤 인상적이었다. 그 맘을 알 수 있다. 해외에서 발표를 할 때 항상 옷이 걱정이었다. 공항에 도착하고 이동해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비행기 안에서 늘 신경이 쓰이는 게 옷과 머리 구겨짐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꼿꼿하게 앉아서 가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30대 후반의 남성도 작업을 하고 있었다. 40대 후반의 여성과는 결이 조금 다르게 자다가 일어나 작업하고 또 자고 일어나 작업하고를 두 시간 동안 반복하고 있었다. 다 만들고 철저하게 준비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시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고도 다시 컴퓨터를 켜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나리타공항에서는 착륙해서도 활주로에서 꽤 긴 여행을 해야 함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남성은 개의치 않으리라. 작업을 계속할 수 있으니.
세 명의 공통점은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텔식 세프가 만들어서 내놓은 식사를! 어쩌면 이들은 정말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만 열심히 사는 게 아니다. 나는 출장 가는 비행기 이코노미석에서 언제나 문서를 만들고, 책을 읽고 발표 준비를 했다. 그게 미국,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건 어디든 비행시간이 길든 짧든, 컨디션이 좋거나 나쁘거나 나는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도 일을 하고 책을 읽고 또 하고 읽었다. 그 시간 뒤에 있을 미팅이나 행사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연습을 통해서 가장 가치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본능처럼 하는 행동이었다. 나같이 비행기 안에서 바쁘게 보내는 사람을 잘 볼 수 없었다. 이렇게 궁상떨고 있는 내가 안쓰럽게도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내가 좀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오늘 나는 나와 비슷한 여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행사가 열리는 됴쿄인근 치바는 날씨도 서울보다 덥고 쾌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