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의맘#1 | 임신 8주 4일 | 산모 일기
3일 ‘토천하’를 겪고 괴로웠던 나는, 오늘은 부디 쓰라린 아픔을 겪게 하지 말아 달라며 출근길에 나선 터였다. 수시로 허기짐은 있었으나 먹고 나서의 후회가 두려워 내적 갈등을 하던 중 오늘은 갑자기 비빔냉면이 당겼다.
한동안 출산 선배들에게 급격한 내장(?)의 변화와 이로 인해 발산되는 감정의 요동에 대해 토로하니 저마다 입덧을 대처하는 ✅노하우를 알려줬다.
- 하루 세끼 때를 챙겨 먹으려 말고 수시로 조금씩 먹기
- 야식은 금물!❌ 늦게 먹을 시 반드시 소화 후 자기
- 아기 피부 형성 전 까지는 과자, 사탕, 과일 등 닿는 대로 집어먹기
- 당기는 음식이 생길 시 즉시 식욕을 채워주기
‘이것도 과정이야~’라는 엄마의 말은, 겪어낸 자로서만이 할 수 있는 초월의 위로였다. 그저 순탄히, ⏳짧게 지나가길 기원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오롯이 내가 견뎌내야 함을 빨리 받아들일수록 정신적 건강에 이롭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운 ‘융모’의 기능이 떠오르며
융모: 작은창자(소장)의 안쪽 벽에는 주름이 많이 있는 점막이 있고, 이 주름에는 무수히 많은 융털이 나 있다. 음식물과 닿는 면적을 넓게 해서 영양소를 빨리 흡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왜 창조주는 임신 증상으로서 융모의 기능을 더디게 하시며 별의별 호르몬을 활성화시키셨는지 주먹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아기를 가졌다는 축복에 대한 감사보다 내 몸뚱이를 지극히 사랑해 나보다 아기를 더 위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자식을 향한 마음은 그 세상 어느 마음보다 위대한가 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다고? 아니!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고생을 해서 낳았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야!’
종이 뒤집듯 하루에도 수십 번 뒤집히는 임신·아기에 대한 생각으로 업무 효율은 극도로 낮아졌다. 그래도 상사님은 힘들면 절대 망설이지 말고 말하라며, 도와줄 수 있는 게 정해진 노동법 내에서의 ‘적당한 휴식’ 임에 미안해하셨다. 지금은 이러한 크고 작은 배려 덕에 더디지만 일을 무사히 쳐내고 있는 중이다.
4시부터 발을 동동 구르며 네이버 지도에서 ‘냉면’을 검색했다. 9월 말까지 냉면을 하는 식당이 있을까 염려되는 마음에 몇 군데 전화를 해봤지만 배달이 안 된다거나, 픽업을 하기 에는 퇴근길 빽빽한 도로 위 운전은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퇴근 시각 5분 전, 연락이 불통인 한 식당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냅다 튀었다. 다행히 식당에는 불이 켜져 있었는데, 그 형광등은 세상의 그 어느 빛보다 찬란했다.
(뚜벅뚜벅) 엥?
- 하절기 종료로 냉면은 9월 30일 점심까지만 개시합니다. 곰탕으로 찾아올게요! □□ 드림 -
찾아온다는 말이 하나도 반갑지 않은 이 문구는... 현재 9월 30일 18시 20분. 식당 안을 다시 들여다보니 사람들은 김이 폴폴 나는 곰탕 뚝배기에 밥을 척 얹어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좌절을 안고 신랑한테 카톡으로 이 억울한 심정을 해결해달라는 듯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다 문득 밀면이 생각났다. 내가 원하는 냉면의 그 찰기 있는 면은 아니겠지만 양념은 비슷할 테니 ‘보완재’가 되지 않을까 싶어 마지막 주문을 19시 30분까지만 받는 그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따뜻한 육수 한 컵을 후루룩 마실 때쯤 새빨간 비빔밀면이 내 앞에 나타났다. 입에 침이 가득 고인 상태로 이리저리 비벼 한 젓가락 와앙
신랑: 천천히 먹어 / 나: (우우웅)
이렇게 입 안 가득 뭔가를 머물게 한 게 오랜만인지라 입놀림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 냉면 면보다는 두껍고 잔잔한 쑥향이 나는 면이 쫄깃하게 느껴졌다. 매콤, 새콤, 달콤한 양념과 아삭한 무절임. 비빔냉면과 한 글자 차이지만 200% 만족하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여기에 더해 고기 향을 싫어하지만 만두까지 시켜 비빔 양념에 묻혀 하나를 용기 있게 먹어봤다.
신랑: 맛있나 / 나: 아, 살 것 같아.
아가에게는 조금 맵지 않을까 걱정은 딱 1초 했다. 분명 아가도 맛있게 먹었으리라. (라고 단념해버린다)
오늘의 비밀 : 비. 밀.을 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