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대도 없이

옥토끼 연대기

by Rudolf

1926년에 발행된 한국 최초의 동요집에 들어 있는 동요. 6/8박자, E♭ 내림 마장조, 16마디의 노래. 그렇다. 바로 ‘쪽배.’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이 곡이 처음 나왔던 1925년의 원본 가사는 다음과 같다.

푸른하날 은하수 하얀쪽배엔

계수나무 한나무 토기한마리

돗대도 아니달고 삿대도업시

가기도 잘도간다 서쪽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내선 어대로가나

멀니서 반짝반짝 빗최이는건

샛별 등대란다 길을 차젓다



추석날 쟁반처럼 둥그런 달에서는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이 정말 보인다. 나도 봤고, 그대도 봤고, 우리들 모두가 보았다. 그런데 위의 동요에 들어 있는 달은 ‘쪽배’다. 제목도 ‘쪽배’고. 그렇다면 초승달 아니면 그믐달이겠지. 게다가 흔히 오른쪽이 불룩 튀어나온 달로 그린다. 그렇다면 초승달이 정말 맞는 거다.

하지만 보통 계수나무와 달이 보일 정도면 아무래도 보름달이어야 한다. 그래도 뭐 노래 가사가 그러니까 그렇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어떻든 그 달이 보름달이든 초승달이든 그 속에는 옥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다. 그렇지만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다(고 한다). 아마 ‘노’도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밤하늘에서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그리고 다른 선원들은 없는 것 같다. 토끼 혼자서 밤새도록 열심히 절구를 찧고 있으니까.

아 참, 여기에서 등장하는 삿대는 무엇일까? 여러 자료를 살펴보고 나서 통합해 보니 나룻배가 부두를 떠날 때 배를 쑤욱 밀어내는 긴 막대라고 한다.

경상남도 진주와 창원 사이에 있는 함안군의 생태공원에 가면 처녀 뱃사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뱃사공은 삿대와 노를 능숙하게 다뤄서 사람들을 강 이쪽저쪽으로 실어날랐던 모양이다. 억센 남정네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처녀의 몸으로 해냈으니 노래로도 나올 법하다.

그래도 어떻든 처녀 뱃사공에겐 삿대가 있었다. 삿대는 (앞에서도 간단하게 설명했듯이) 배를 물가에서 떼거나 물가에 댈 때, 또는 물이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갈 때 밀어대거나 하는 긴 막대다. 보통 굵기는 5cm 정도여서 손아귀에 딱 잡힐 만큼은 되고, 기럭지는 처녀 뱃사공이 배 위에 서서 아래로 툭 늘어뜨릴 경우 강바닥에 닿는 정도란다. 그러니까 전체 길이는 대략 2~5미터.



옥토끼의 정체


우리의 선조들은 달 속의 그림자들을 보고 토끼를 떠올렸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두꺼비나 당나귀, 유럽에서는 여인의 얼굴을 연상했으며, 앙골라나 페루에서는 두꺼비,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만병통치 명약이 열리는 나무와 나무꾼을 떠올렸다고 한다. 또한 절구가 등장할 경우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계수나무 아래에서 절구를 찧는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계수나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그리고 북미 지역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나 아즈텍 신화에서도 달에는 분명히 토끼가 살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면 아직까지는 달 토끼 생존설이 좀 우세한 듯하다.

그리고 옥토끼의 경우 아마도 흰털 토끼를 말하는 것 같은데, 흔히 생각하는 붉은 눈의 흰털 토끼는 선천성 색소결핍증인 알비노에 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남들의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생존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럴 염려는 없는 듯하다. 토끼는 앞니가 발달된 설치류인데다 굴을 파거나 나무를 갉아대는 데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덕에 달에까지 이주해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한편 회색 털을 가지고 있는 개체는 재토끼라고 부른다.)

그리고 옥은 녹색이 많은데, 왜 달에 사는 토끼를 옥토끼라고 불렀을까? 옥은 보통 약간 무른 연옥(軟玉)과 아주 단단한 경옥(硬玉)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우리가 많이 쓰는 경옥은 다시 녹색인 비취(翡翠)와 흰색인 백옥(白玉)으로 나뉘는데, 옥토끼의 옥은 바로 경옥 중에서도 백옥을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연옥이 대부분 유백색이기에 이 옥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어서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삿대와 삿대질


아 참, 삿대라는 말이 나온 김에 ‘삿대질’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아니, 뭐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삿대처럼 손가락을 길게 내뻗어 사람을 가리키는 동작을 말하는 것이니까. 게다가 이는 별로 좋은 표현도 아니다. 쉽게 말하면 ‘손가락질’을 한다는 뜻이다. 물론 손가락질에는 다른 사람들을 흉본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삿대질은 대놓고 앞에 있는 사람에게 손가락을 내밀고 험한 행동을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한편 삿대에 대해 한자를 찾아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划(화)] 삿대, 쪽배, 배를 젓다. 이에 더해 선을 긋는다는 劃(획)의 약자로도 사용되는 모양이다.

[找(조)] (물 등을) 채우다. 그런데 한자 자전을 찾아보니 여기에는 ‘쪽배, 배를 젓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삿대질하다’는 뜻도 있다고 하는데, 한자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혹 이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실 분이 있으면 고맙겠다.



옥토캣의 비밀


자, 그럼 이제 좀 빗나간(?) 이야기도 하나 해야겠다. 혹 옥토끼의 사촌 옥토캣(octocat)을 아시는지? 사실 옥토캣은 깃허브(GitHub)의 공식 마스코트라고 한다. 이 깃허브는 일종의 웹서비스인데, 그 마스코트인 옥토캣은 토끼가 아니라 고양이이다. 귀는 둘, 다리는 넷. 꼬리 하나. 그런데 왜 ‘옥트(oct)’를 썼을까? ‘옥트(oct)’라면 당연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덟 개가 되어야 하는데. 게다가 이 고양이는 문어 다리 넷을 가지고 있다. 아마 꼬리도 고양이 꼬리가 아니라 문어 다리 같다. 어떻든 토끼가 아니라 문어 다리를 가진 고양이라니! (하긴 따지고 보면 여덟 개가 맞기는 하다. 다리 넷, 꼬리 하나, 귀 둘, 코 하나, 이러면 여덟이 되지 않을까. 수염 넷은 빼고.) 그런데 옥토끼의 사촌이라면 당연히 토끼일 텐데 갑자기 고양이가 왜 나오느냐고.

좀 골치 아픈 이야기를 했기에 (위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기분전환을 할 겸 짧은 동화를 하나 소개하련다. 지금 막 만든 동화.



다리가 여덟 개 달린 토끼


한때 누구나 아는 유명한 동화작가였던 엘리스 래빗은 매일 밤 꿈속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이번에는 아주아주 이상한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토끼들만 사는 나라.

그곳 ‘이상한 나라’에서 엘리스는 다리가 여덟 개인 토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스는 무릎을 살짝 굽혀 토끼에게 인사를 한 뒤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토끼님. 여기가 어디인가요?”

“여기는 옥토끼의 땅입니다. 제 이름은 ‘옥토(octo)끼’이고요. 다리가 여덟 개라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옥토끼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옥’이 성이고 ‘토끼’가 이름인가요, 아니면 ‘옥토’가 성이고 ‘끼’가 이름인가요? 아니면 영어가 들어간 것을 보니 성이 ‘끼’고 이름이 ‘옥토’일지도 모르겠군요?”

“어머나,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그냥 옥토끼라고만 불러주세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까지 다리가 여덟 개인 토끼는 오늘 처음 봤어요!” 하고 엘리스가 말했습니다.

“그럼 다른 토끼는 다리가 몇 개인가요?” 옥토끼가 물었습니다.

“당연히 다리가 네 개죠.” 엘리스가 대답했습니다.

“네 개밖에 안 되나요? 그 토끼들은 이상하네요. 모두 병이 걸렸나 봐요?” 옥토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녜요. 토끼는 원래 다리가 넷이에요.”

“어머나! 그렇지 않아요. 자, 내 다리를 잘 봐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모두 여덟 개잖아요.”

엘리스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나라’의 여왕이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둘은 얼른 여왕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토끼의 다리가 몇 개인지 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여왕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잠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원래는 여덟 개인데, 저 ‘이상한 나라’의 인간들 세상에서는 토끼의 다리가 네 개밖에 안 된대요. 다리 숫자가 모자라니까 지능도 모자랄 거예요.”

“그럼 인간들은 다리가 둘인데……?”

“인간들은 지능이 더 모자라겠지요.”

다리가 여덟 개인 토끼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엘리스는 고민에 빠진 채 혼자 남아서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만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끝]


[참고 1] 깃허브(GitHub)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소스 코드 관리서비스라고 하는데, 사실 지독한 컴맹인 나로서는 이해 불가.

[참고 2] 어딘가에 가면 옥토캣(octocat) 스티커를 파는 모양인데, 나는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오.

[참고 3] ‘쪽배’ 원본 가사는 ‘나무위키’ 사이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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