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곡
봄님이 오시는 소리,
소리,
소리. . .
봄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받고 얼른 마당으로 나갔다. 저 멀리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아리아리한 대기 사이로 머언 들판 너머 봄뫼 지나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황톳길. 그 사이사이로 실개천 흐르고, 또 그 너머 아련히 퍼져 있는 먼먼 추억들…….
발깨꿈하고서 눈썹 위에 손을 갖다대고 저 멀리멀리 어디께에 봄님이 오시는지 실눈 뜨고 살펴보려니 아 글쎄 봄님보다 봄소리 소리 소리가 먼저 훌쩍 다가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소리들이 서로 앞 다투어 오는 바람에 그만 멈칫하고서 줄을 세워 순서를 정해 주려 했다.
그랬더니 소리 소리들이 심술이 났는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몸들을 꼬고서 앵앵앵앵 울어댄다. 아이고, 고놈들 몸들이 한껏 달았구나. 그래, 그렇다면 모두모두 모여 소리소리 자랑 한번 펼쳐 보거라…….
개울물 소리 | 봄에는 산에서 얼음들이 녹아내린 개울물을 타고 봄물이 흘러흘러 시내로, 강으로, 호수로 내려간다. 그러다가 봄비라도 내릴라 치면 어느새 시냇물이 불어나 개울개울 정다운 소리를 내며 흐른다. 이러한 봄철의 개울물 소리는 긴긴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다.
벌레들 울음소리 | 봄에는 벌레들마다 다종다양한 울음소리를 내며 번식활동을 한다. 겨우내 잠자면서 만나지 못했던 동무들이랑 연인들이랑 한꺼번에 나와서 떠드는 하하호호 반가운 소리들. 풀밭에서는 지렁이 기침 소리에 귀가 쫑긋해지고, 푸석푸석한 흙 속에서는 오종종한 벌레들이 조곤조곤 떠들어대며,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판의 얕은 하늘에서는 아리아리 나비들이 살금살금 날갯짓을 하는 나폴나폴 소리가 밭이랑 사이로 퍼져간다. 개미나 거미, 나비, 파리들이 기고 날고 하면서 저들끼리 내는 천둥 같은 앵앵앵앵 소리, 소리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 봄이 되면 새들이 번식기를 맞아서 많은 울음소리를 내며 서로 경쟁한다. 가장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새들은 참새, 노랑머리새, 메뚜기새 등등등등. 이 밖에 벌새, 동백참새, 노랑머리솔새, 노을새 들도 어디선가 포르르 날아와 모여들어서 합창을 해댄다.
봄비 소리 | 봄비 오는 소리, 다정한 소리. 봄 먼지 가득한 하늘을 씻어내고 파릇파릇 상큼한 공기를 가져다주는 기분 좋은 소리. 사르락사르락 비단결 스치는 그 소리에 한마당 가득 봄이 몰려와 복작복작……. 그러다가 사르락 사르락 포롱포롱 떨어지는 봄비, 봄비, 봄비들…….
봄비 속의 향기 | 봄철에 조금조금 자주자주 내리는 얄미운 비. 그러나 그 비는 땅에 떨어지면서 하늘 소식을 온 세상에 가져다주는 고마운 비다. 봄비 맞은 땅마다 흙냄새 폴폴 피어오르고, 버석버석한 땅 속마다 촉촉이 적셔주면서 봄꽃이랑 나무들이랑 잎새들에게 봄소식을 전해준다. 그 덕분에 꽃이나 나무들의 향기가 온 동네로 퍼져나가 온갖 버나비 불러들여 잔치잔치 벌이게 되겠지.
풀잎들의 소리 | 파릇한 잎새들 사이사이마다 봄노래로 가득해진다. 특히 봄철 살랑바람 불 때는 들판마다 마을마다 솜 소식이 전해져 정순 어미, 꽃분 아씨, 길수 아재 모두모두 나와서 봄소식 나누느라 바빠진다. 그리고 나무들마다 겨우내 묵혀두었던 이야깃거리 꺼내어 서로서로 이야기하느라 봄바람 살랑 불어올라치면 나무들 잎새마다 풀들의 이파리마다 소란소란 시끄러워지겠지. 그러면 머지않아 벌건 황톳빛 대지들 위로 봄바람이 지나가면서 씨앗을 흩뿌려 곳곳마다 새싹들이 자라는 소리로 어수선해질 테고.
바람들 소리 | 봄에는 봄에는 바람이 제일 바쁜 왕자님. 이리 불었다가 저리 불었다가 요기조기 다니며 어여쁜 공주님 찾느라 정신없어진다. 그러나 그 바람을 타고 씨앗들이 이리저리 여행하면서 짝도 만나고 동무도 만나고 연인도 만나 연애질하느라 바빠지는 거다. 그러면 풀들이랑 잎새들이랑 남들이 연애하는 거 지켜보느라 밤새우고, 새벽녘 되어서는 안마당 구석구석으로 들어가 잠에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툇마루 아래에 누운 멍둥이 바둑이까지 늦잠을 자고 만다.
[봄의 과학] 봄에는 갑자기 대기의 온도가 올라가는 바람에 공기 중 높은 압력과 낮은 압력의 차이가 커져서 바람이 많이 불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기압경도력(氣壓傾度力)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공기 중 어느 두 지점 사이의 기압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바로 바람이라는 뜻이다. 식물들이 자라기 위해서는 그런 바람들이 꼭 필요하다. 게다가 봄에는 대기의 상층과 하층의 온도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공기가 급히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탓에 바람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런 현상을 ‘열대류(熱對流)’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열의 작용으로 인해 수직 방향으로 일어나는 공기의 흐름이다. 봄이 되면서 해가 길어지는 덕에 태양 에너지가 충만해져 땅과 대기를 가열시켜서 공기의 밀도와 압력이 낮아지고, 그로 인해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바람은 식물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봄바람은 소리도 많이 난다. 그래서 봄 언덕에 올라가면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위잉위잉 들려오는 것이겠지. (이러한 바람, 바람, 바람들이 새들의 깃털을 파고들며 흔들어 주면서 봄의 교향곡이 되어 퍼져나가는 것이다. 지지배배, 종달종달, 삐이익삐이익, 뽀르르뽀르르…….)
흙냄새 | 봄철에 땅이 녹으면서 흙 속의 미생물들이 활성화되어 토양 속에 존재하는 유기물들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생긴 화학물질이 흙냄새가 되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 우리들에게 생동감을 선물한다. 또한 따뜻한 날씨와 알맞은 습도 덕분에 많은 동물이 산란하거나 짝짓기 위해 이동하면서 발바닥이나 몸의 털에 많은 미생물을 묻혀 퍼뜨리게 된다.
바람과 봄 | 김소월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봄 |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들,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