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끝은 광장이라니까!

by Rudolf

머릿속이 갑자기 멍해지고 눈의 초점도 안 맞는다. 그래서 눈에 힘을 팍 주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무엇을? 그래, 바로 그것이 문제다. 무엇인가를 노려보긴 했는데 도무지 그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단 말이다. 하긴 뭐가 보여야 보기나 하지……. 여러분 같으면 보이겠는가? 바늘 끝 말이다. 금속바늘 끝을 쳐다보고 바라보고 노려봐도 그 끝은 보이지 않고 그 너머 허공만 멀거니 눈앞에 떠 있는 것이다.

하 참, 세상만사 제멋대로 돌아가는 이 엄중한 시기에 바늘 끝처럼 보나마나한 것을 꼭 노려봐야 하는 것일까? 그럼 뭐 다른 할 일이라도……. 없다. 숨 쉬고 멍 때리고 바늘 끝 노려보는 것 말고는 도무지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예를 들어 생산적인 것은 없느냐는 말도 나올 법하다. 사실 그건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내 역량 닿는 한에서는 방금 전 쬐끔 해놓고서 지금 넋 놓은 채 이렇게 멍 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 눈에 띄는 것. 바닥에 떨어진 바늘 하나. 무심코 집어들어 눈앞으로 들어올렸더니……, 아, 글쎄 갑자기 고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한동안 노려보자니 나중에는 가물가물해지고 결국 바늘도 없어지더니 그 주위 공간도 사라지며 스르르 바늘 끝만 남아서 이따만 하게 커지는 것이 아닌가!

네 이놈, 바늘! 네 정체를 밝혀라.

아차, 이건 아니고……, 고놈의 바늘 참 야무지게도 생겼다. 길쭉하고도 은색 빛을 내는 몸통 위로 삐쭉 솟아오른 꼬랑지 끄트머리에서 갑자기 허공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라? 사라졌어? 바늘이 없어졌다.

어쭈! 내 눈이 위쪽으로 쑤욱 올라가다가 어느 샌가 바늘이 사라지고 느닷없이 허공이 나타났단 말이렷다.

흠……. 좋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허공에서부터 시작하자. 자, 하늘 천……, 푸른 하늘……, 참 색도 곱다……, 하늘색 말이다. 짙지도 않고 엷지도 않은 그 색, 평소에는 그 색만 바라보면 한없는 상상이 펼쳐졌었는데, 이번에는 어딘지 괘씸한 느낌이 든다. 그래, 나는 지금 바늘하고 눈싸움하고 있는데, 어찌 네놈 하늘이 그것을 가로막고 허공만 펼쳐놓고 있느냐 말이다. 으음……, 에고, 관두자. 괜스레 하늘만 쳐다보다가 바늘 끝을 놓쳤구나.

그리하여 다시 눈길을 슬금슬금 아래로 내리니 아……, 바늘이 나타났다, 나타났어! 바늘 끝이…….

아니, 그런데 웬 바늘 끝이 이렇게 넓으냐? 이건 뭐 운동장이잖아!

하, 세상 사람들아, 한번 생각 좀 해보시라. 바늘 끝이 완전 둥그런 광장이 됐다면 이해하실 수 있겠소? 와……!

좋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바늘 끝 운동장에 올라가 한바탕 놀아나 보세! 얼쑤~!



바늘 끝의 세계


바늘 끝은 뾰족하다. 그러나 확대해 보면 그 끝에서 단면이 보인다. 탁 잘라진 평면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 넓이는 얼마나 될까? 궁금한 분과 그렇지 않은 분의 비율이 50.01 대 49.99라고 판단이 되어 다수결 원칙에 따라 바늘 끝의 세계를 만천하에 공개토록 하겠다.

과거에야 그렇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국제적 또는 국내적으로 표준화가 되어 바늘의 굵기에 따라 번호가 매겨져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Sharps’라는 번호로 굵기를 구분한다. 번호가 작을수록 바늘은 굵은데, 1~10 사이에서 숫자가 매겨져 있다.

우리나라는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국제표준화기구) 기준에 따라 바늘의 굵기를 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1호 바늘은 직경 0.25mm이며, 제일 굵은 9호 바늘은 0.70mm 가량 된다.

자, 그럼 가장 작은 1호 바늘 끝의 세계는 얼마나 넓을까(?)?

뭐 이렇게 말하면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1호 바늘 끝에 물 분자가 도대체 몇 개나 올라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다음과 같이.


직경 0.25mm의 넓이에 들어갈 수 있는 물 분자의 수는?

0.25mm 직경의 원 면적을 구하면 다음과 같다.


원의 면적 = π × (반지름)2제곱

= 3.14 × (반지름)2제곱 [반지름 = 0.125mm/2]

≈ 대략 0.049mm2제곱


이제 이 면적에 들어갈 수 있는 물 분자의 수를 구해 보겠다.

물 분자 크기는 0.3~0.4나노미터(nm). 따라서 1mm2제곱 안에 약 2,500,000,000개, 즉 25억 개의 물 분자가 들어갈 수 있다. 이에 따라 0.049mm2제곱, 즉 가느다란 바늘 끝에 들어갈 수 있는 물 분자의 수는 대략 다음과 같다.


0.049 × 2,500,000,000 = 122,500,000

즉 1억2천2백50만 개 정도.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론적인 값으로, 실제로는 공기나 다른 입자들이 끼어들 수 있어서 물 분자는 이보다 적어질 수 있다.

그야 어떻든, 이런 계산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에고, 나 지금 뭐한 거지……? ◎◎◎ (머릿속, 눈 속 모두 뱅글뱅글……)

(하던 일이나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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