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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Jun 14. 2024

마술사와 오케스트라 (13)

제3장 | 겨울정원 (1)

제 3 장 

겨  울  정  원               

          

주원은 다음날 아침에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주원이 이층 방에 가서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은 돌돌 말아두었던 자신의 전신사진을 펴서 벽에 붙여놓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그 사진을 보고 제일 첫 느낌은 괜찮네 하는 것이었다.

    아니지. 이러면 안 돼.

    전의를 불태우기 위해 주원은 사진을 확 떼어서 힘을 주어 돌돌 말았다. 그러다가 아차 싶어서 살살.

그렇게 하고 나니까 더욱 부아가 났다. 

    뭐 하는 짓이야!

    괜히 자기 자신에게 화풀이하는 주원. 돌돌 만 사진을 들어 양손에 붙잡고 가운데를 콱 꺾었다.

    아니, 꺾으려 했지.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주원은 돌돌 만 사진을 방 저쪽 구석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침대로 가서 벌러덩 누웠다.

    분이 안 풀린다. 

    어떻게 요리할까……?

    일단은 불러내야지. 그런 다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뭐 좀 아이디어 없을까?

    주원은 슬그머니 자신의 손을 들어서 살폈다. 손바닥. 그러나 손바닥이 스르르 녹듯이 사라진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듯.

    손바닥?

    주원은 자신의 양손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

    한 손 한 손을 눈앞에 갖다대고 자세히 살폈다.

    향기 좋은 크림 냄새.

    자기가 보기에도 갸름하고 예쁜 손.

    그 밖의 것은 모르겠는데……. 



주원은 손을 뒤집어 보기도 하면서 요리조리 살폈다. 알 수 없다. 왜 하필 손?

    손금?

    뭐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요즘도 손금 보고 운명 정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손을 위로 들어올려서 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해보았다. 그 다음엔 자기 눈 쪽으로 돌렸다.

    다시 손을 내려서 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고, 다음으로는 위로 뒤집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손가락을 좌악 폈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손바닥이 간질간질해진다. 

    이러다가 손바닥에서 광선이나 바람 나오는 거 아냐? 

    간질간질.

    주원은 양손바닥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툭 거두어 버렸다. 

    그 순간, 아 구슬!

    주원은 구슬을 찾아서 왼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노려보았다.   

    커져라, 커져라…….

    여의주나 돼라…….

    한참 그러고 있으려니 힘이 들어서 손바닥을 조금 기울였더니 구슬이 떨어지려 한다. 주원은 구슬이 떨어지려 마려 하는 아슬아슬함을 잠시 즐기다가 그냥 툭 떨어뜨렸다. 

    올 굵은 카펫에 떨어진 구슬.

    아무것도 아니다. 

    쳇!

    주원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팔짱을 꼈다. 

    머리를 비우자.

    몸을 편하게.

    얼른 팔짱을 풀었다. 

    마음도 릴랙스.

    어떻게? 

    숨을 크게 들이쉬고. 심호흡. 천천히 내뱉는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갑자기 약이 올랐다.

    벌떡 일어났다. 성큼 발을 옮기는데, 아차!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구슬을 밟은 것이다.

    골고루 방해하네. 

    주원은 갖다버리려고 허리를 숙여서 구슬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미련이 좀 남아서 손바닥에 다시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살살 비벼보았다. 손바닥이 간질간질.

    소파에 앉았다. 계속 구슬을 돌렸다. 손가락이 아팠다. 손가락을 들고 살펴보았다. 손바닥도 보았다. 손바닥과 손가락의 피부가 조금 붉게 변했다.

    손, hand, 수(手)…….

    손가락, finger, dito, doigt, 지(指)…….

    지……, 지피지기 백전백승.

    맞았어! 

    마술. 마술에 대해서 알아야 돼. 그래야 그 인간을 요리할 수 있어. 그 잘난 구슬 마술로 사람을 홀렸겠다?

    주원은 인터넷으로 마술책을 찾아보았다. 

    여러 책이 있었다. 리뷰를 보았다. 하지만 어떤 책이 좋은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가자, 서점으로.

    아무래도 책이 제일 많은 광화문의 그 서점으로 가야겠지?     


     

주원은 택시를 타고 광화문 교보빌딩으로 달려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 핀란드 대사관에 갔을 때 서점에도 들렀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줄 어떻게 알았담.

    구시렁구시렁…….

    주원은 서점 점원에게 물어서 마술책 코너로 갔다. 

    어……?

    그 인간 맞지?

    주원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인간이 서가에서 책을 하나 막 꺼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뒤적거린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인간이 뒤돌아본다.

    화들짝.

    깜짝 놀라 인간이 얼른 책을 뒤로 감춘다.

    왜……?

    인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해한다.

    뭐야? 뭐가 잘못된 거야?

    하긴 많이 잘못됐다.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또 만난 것부터가 잘못이니까.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그런데 평소 그 인간답지 않게 저렇게 쩔쩔매는 것은 무슨 이유람?

    사실은 인간보다 주원이 더 당황해야 하는데. 이 무슨 악연인고 하고.

    주원은 갑자기 뒤로 감춘 책이 궁금해졌다. 

    마술책을 고르고 있었겠다? 자칭 마술사라며?

    회심의 미소. 

    “그 책 이리 내봐요!”

    인간이 주저주저한다. 

    저 인간은 여기에서 나를 만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할까, 불운으로 생각할까?

    “이리 줘보라니까.”



주원이 손을 내밀었다. 

    뭐 하다 들킨 초등학생처럼 인간이 쭈뼛거리며 책을 내민다. 영 내키지 않는 얼굴이다. 

    주원은 책을 홱 낚아챘다. 

    그리고 표지를 보았다.

    ……?

    책 제목 아래의 지은이. 

    편지수.

    이게 뭐래?

    이번에는 주원이 당황스러워졌다.

    “…… 이 책…… 그쪽이 쓴…… 거예요……?”

    기가 막혀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게…… 저…… 실은…….”

    “말을 똑바로 해요!”

    “내…… 내가 쓴 것은 맞는데…….”



떠듬떠듬 잇는 인간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인간이 마술책을 써서 출판사마다 찾아다니며 내달라고 했더니 가는 곳마다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없는 어떤 허름한 출판사에 가서 부탁했더니 자비출판을 하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인간은 한 달을 고민하다 어떻게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출판사에 갖다바치고 책을 만들었다. 그 책들을 대부분은 인간이 가져가서 태권도 도장 창고 저 깊은 구석에 처박아 두었고, 출판사에 부탁해서 책 일부를 수도권 지역 몇몇 서점에 풀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뒤에도 그 책이 단 한 권도 안 팔려 여러 서점에서 반품시키겠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출판사로.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그 책들 일부를 인간이 직접 사오기로 하고, 그 첫번째로 이 서점에 들러서 책을 꺼내는 순간…….

    그럼 그렇지. 그 꼴에.  

    책 표지부터가 너무 빈티 나잖아. 내용도 슬쩍 보니까 모두 흑백이더만. 요즘 컬러 시대 아냐?

    값은 또 왜 그렇게 비싸요? 싸게나 받으면 모를까 누가 이런 책을…….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저자 약력이다. 

    다른 책들을 몇몇 살펴봤더니 세계무대에서 상도 많이 타고 여기저기에서 초청도 받고 했더만. 외국인도 있고. 게다가 TV에도 많이 나갔고, 대규모 마술쇼도 여러 번 열고 그랬다. 대부분의 저자들이. 추천의 글도 빵빵하게 집어넣고.

    그런데 인간의 약력이라는 것이…….



독학. 이것을 강조했다. 자수성가가 뭐 감동적인 인간 스토리나 되는 줄 알았나? 그런데 그 뒤는 더 한심했다. 지리산에서 3년, 태백산에서 3년, 한라산에서 3년……. 그거 다 더하니까 저 인간 나이보다 많을 것 같았다. (무슨 도 닦은 거야?) 이렇게 주절이 주절이 늘어놓은 뒤에 또 엉뚱한 말. 마술의 글로벌화를 위해 자기 한 몸 바치겠단다. 하, 웃겨. 문장을 꼭 그렇게 쓴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뜻으로 늘어놓은 것이다. 

    주원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런 건 나한테 가져왔어야지, 진작에. 내가 연주회 브로셔마다 프로필 넣을 때 얼마나 멋지게 썼는 줄 알아, 인간아!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행동으로는 못 했지, 생각 같아서는 책으로 그냥 머리통을…….

    어휴, 속 터져.     

    주원은 인간을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커피숍으로 갔다. 어깨는 축 처진 채 죽상이 된 얼굴을 푹 숙이고 인간은 터덜터덜 따라왔다. 

    주원은 다리를 착 꼬고 앉아서 인간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어제 겪었던 일을 생각하니 불쌍한 느낌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지만 지금 그 일을 말할 계제는 아닌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노려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심했다. 그 속마음은 알 길이 없지만 어제만 해도 세상 다 자기 것인 양 떠벌이던 모습은 간데없고 소낙비 맞은 땡중처럼 거량 맞은 모습을 보니 주원의 마음이 답답했다.    

    “이것 봐요. 얼굴 좀 펴요. 죄 졌어요?”

    “여긴 왜 온 거예요?”

    “…….”

    주원은 갑자기 말이 막혔다. 마술책 사러 왔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냥 왔어요.”

    “책 살 거 있어요?” 

    “됐어요. 그건.”

    “아 참, 어제 라디오 얼핏 들었는데, 그거 그쪽 얘기 아니죠? 긴가민가 해서 문자하진 않았는데…….”

    FM 클래식을 다 듣고 다니셔?

    “신경 꺼요.”

    “그거 진짜예요?” 인간이 얼굴을 앞으로 내민다.

    주원은 몸을 뒤로 물리며 대답했다. “신경 끄시라니까.”

    “지금 좀 어때요? 이렇게 나와 다녀도 돼요? 어디가 아픈 거예요?”

    “그 얘긴 꺼내지 마요.”

    “아니, 그래도…….”

    “됐다니까!” 

    주원의 목소리가 날카롭자 인간이 움찔한다. 그리고는 쭈뼛거리며 주원의 눈을 피한다. 

    “거긴 어떻게 할 거예요? 책 빼란다면서요?”

    “…….”

    “어떻게 할 거냐니까?”

    “빼면 빼는 거지…….”

    “가요.” 주원이 일어섰다.

    “어디……?”

    “책 사야 되잖아요. 그냥 책 빼게 놔둘 거예요?”  


   

주원은 인간을 데리고 큰 서점 여기저기를 택시로 다니며 책을 사모았다. 무려 열두 권이나. 주원의 신용카드를 열심히 긁으며. 종로통에서 신촌으로, 영등포로, 반포로, 강남으로, 장안동 등등으로 찾아가서. 책봉투를 손에 주렁주렁 든 채. 그나마 그 책이 있는 서점도 많지 않았다. 벌써 뺀 모양이다. 

    한번은 책 들고 다니기 무거워서 택시에 슬며시 놓고 내리는데 기사 아저씨가 화급하게 불러세운다. 

    “손님, 손님! 책, 책 두고 가셨네요.”

    다정도 병이라니까. 아니, 친절도.

    주원은 씁쓰름한 입맛 다시며 무거운 책봉투를 받아서 몽땅 인간에게 내던졌다. 

    내 팔자야…….

    잠실을 끝으로 주원은 더 다닐 수가 없었다. 부아가 나서. 다리도 붓고.

    퉁퉁 분 것 같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커피숍에 들어갔다.

    한 손에 책봉투 여섯 개, 합해서 열두 봉투를 들고 어기적어기적 따라오는 인간.

    꼴좋다.

    주원은 의자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인간도 의자에 앉으며 책봉투를 탁자 아래에 내려놓는데 주원 쪽으로 쓰러진다. 

    주원이 발로 확 차듯이 밀어버렸다. 

    인간이 주원의 눈치를 보며 쓰러진 책봉투를 정리한다. 

    주원은 더욱 부아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봐요, 나 오늘 아침에 병원에서 나온 사람이란 말야!

    이렇게 속으로 소리 지르고 나니 부아가 아니라 울화통이 터져 올라왔다.

    후, 참자, 참아, 주원아. 참자…….

    내가 성인군녀다. 

    이렇게 주원은 스스로를 달랬다. 

    주원은 전화기를 꺼냈다. 말도 없이 바깥에 나갔다고 집에서 난리칠 것 같아 의도적으로 꺼놨던 것을 다시 켰다. 무려 20통 넘는 전화에 문자메시지 15개. 친척과 친구들이 걱정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 남궁 여사에게서 온 것이다. 아버지 정 회장에게서는 카톡이 딱 하나 왔다.

    ― 엄마 걱정하신다. 전화해 드리고 일찍 들어가거라.



주원은 한숨을 푹 쉬고 일어났다. 그리고 커피숍 구석으로 갔다. 그곳에서 남궁 여사에게 전화했다. 

    따따따따따……. (남궁 여사의 속사포 소리)

    알았어요……. 곧 들어갈게요……. 강남이에요……. 전화기 꺼놓은 거 몰랐어요……. 몸 괜찮아요…….

    다시 자리로 돌아온 주원은 인간을 다시 노려보았다. 

    “앞으로 혼자서 감당 못할 일은 아예 하지도 마시라구요. 알았어요?”

    인간은 주눅이 들었는지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어벙한 얼굴만 한다.

    “그리고 그 마술. 뭐 제대로 할 수나 있는 거예요? 내가 보기엔…….”

    인간이 말을 자르고 들어온다.

    “한번 와서 볼래요? 내 솜씨가 어떤지?”

    인간은 억울한 얼굴이다.

    “아, 됐고. 나 집에 가야 하니까, 이 책 잘 들고 가요. 잃어버리지 말고.”

    “이 책 몇 권 가져가시죠.”

    인간이 몸을 숙이며 봉투를 집어들려 한다.

    “그거 죄다 집에 가져가서 찢어버리세요. 그게 책이에요? 쓰레기지.”

    아차, 이건 좀 심했다. 

    인간이 고개를 쳐든다.

    아, 아, 미안, 미안. 

    꼴에…….

    미안한 마음에 주원은 봉투 하나를 집어들었다.

    “나중에 봐요.”

    주원은 뒤도 안 돌아보고 커피숍을 나섰다.


[다음 이야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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