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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03. 2024

마라맛 육아

볼빨간 삿춘기

나도 가끔 기쁘고 뿌듯하고 사랑스러운 나날들의 에피소드를 쓰고 싶다.  선배엄마가 말하기를 지금은 시작도 안 한 거라고 사춘기 절정 오면 같은 공간에 있기도 싫다던데 우리 집 사춘기는 스타트부터 느낌이 너무 싸하다.  

저녁에 마라탕이 드시고 싶대서 맵기 조절 구간에서 앞에서 두 번째 맵기로 시켰건만 신라면 보다 더 매웠다. 

제일마라탕 정말 맛있는데 많이 매운 편인걸 간과했다. 먹다 보니 너무 매워 과거에 몇 단계로 시켰는지 검색하며 배달어플 내력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리뷰에 이미 써놨었다. 



"정말 맛있는데 다음에는 2단계로 먹어야 할까 봐요. 많이 맵네요." 




그래. 이걸 잠재의식에서 기억했던 거지 2단계로 시켰건만 너무 매워서 쿨피스에 우유에 거의 물로 배 채워버렸다. 맛있게 먹어야 기분 좋게 숙제하는데 배렸다. 끙.

마라탕 특유의 맛과 향을 내는 특제 소스는 전량 중국에서 만들어서 수입해온다고 한다.  마라탕 소스 만드는 과정을 카메라로 촬영해서 유튜브 숏츠로 누군가 올린 것을 봤던 기억이 났다. 각 과정마다 모두 수작업으로 장갑도 끼지 않고 모든 재료를 손에서 손으로 주물럭 대고 위생이라고는 찾기 힘든 환경에서 탄생하는 소스였다. 맵고 짜고 기름지고 이런 것들이 들어가면 몸에서 정화작용하려고 신장이 얼마나 힘들까? 내 장기까지 힘들게 하는 아들놈에 시키. 마라탕 다음엔 안 시킬 거야. 


실컷 먹고 친구랑 게임하다가 숙제한다고 어제와 같은 자세로 침대에 엎어져서 끼적거리는 것까지 보고 설거지 하러 나왔다. 


'이상해. 너무 조용해.'

방에 가보니 와.... 쿨쿨 처자고 계시네. 양심에 털 난 거지. 도무지 잘해줘도 소용이 없다. 좋은 권리들만 휘리릭 취하고 하기 싫은 책임들은 온갖 짜증으로 일관하며 꾸역꾸역 한다. 


"야 7번이랑 15번 안 풀었잖아."

"아 몰라, 안 해갈 거야."

아... 혈압 올라. 

"답안지 보며 엄마가 알려줄게. 풀어가."

"아 싫어. 나 그냥 틀릴 거야. 엄마랑 안 해."

이러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다른 집애들은 안 남으려고 기를 쓴다는데 저 인간은 학원에 왜 이리 남는 걸 좋아하냐. 자존심도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  한 20분 하더니 조금만 쉰단다. 아 정말 인간이 싫어진다. 

20분만 더 하고 쉬라니까 말도 안 듣고 침대에 누워 책 본다. 그러며 대뜸


"엄마 나 공부에 소질이 없나?"

"왜?"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어해서."

"공부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다 참고하는 거야."

"나 참는 게 어려워."

"다 어려운데 참고하는 거야. 이제 그만 쉬고 다시 해."

말 섞으면 무논리로 일관하며 공부 싫다고 안 하려고 해서 되도록 짧게 끈는 게 포인트.

정말 꾸역꾸역 천근만근 몸을 일으켜 책상에 다시 앉는다. 

이번에는 코가 막히는지 연신 코를 들이마셨다가 풀었다고 자기 무릎에 연필로 뭘 쓰기 시작한다. 

메멘토처럼 하루 지나면 모든 기억이 삭제되나? 그래서 몸에 새기나? 미쳐버리겠네.

그래서 매일매일 똑같이 혼나는 짓을 계속하는 걸까? 


마라탕 때문인지 애 때문인지 목이 매우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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