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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11. 2024

일본에서 건너온 족발맛

볼빨간 삿춘기 

"후야 오늘도 수학 나머지공부 같은데 남으면 안 돼. 주말 동안 영어숙제 안 해서 오늘 달려야 하는 거 알지?"

"네."

엄마가 공식적으로 나머지 공부 빼주니 너야 너무 좋지. 

"엄마 나 오늘 저녁 족발 먹을래."

"왜? 백종원 족발 보고 그래?"

"응 ㅋㅋ"


단순한 놈. 주말에 티브이에서 백종원이 올림픽선수촌에 가서 우리 선수들 힘내라고 특식으로 족발을 만들어준 걸 보고 군침이 돌았단다. 이유야 뭔들 그래그래 내 새끼 먹자 먹어. 

카레라이스를 하려다가 족발을 시키니 나도 편하고 너도 좋고. 


어디가 맛있나? 지역카페를 검색해 보니 왕창족발이 갑이란다. 세상해 내가 좋아하는 부추전까지 반찬으로 나오니 내 시선에 뙇 꽂혔다. 그래 너로 결정했어!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서 쿠팡이츠에 주문했다. 문의란에 부추전 꼭 달라고 정성껏 글을 남기고 기다리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뜬금없이 뜨는 국제전화. 


"오빠? 지금 회사 아냐? 왜?"

"너 쿠팡이츠로 족발 시켰어?"

"ㅋㅋㅋ 어 어떻게 알았어? 일본까지 냄새나?"

"까불지 말고 문의란에 부추전 달라고 했어?"

아니 이 인간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해킹했나 싶게 의아하네.  

"응 근데 그게 뭐 국제전화까지 왜 해~~"

"ㅋㅋㅋ 족발집에서 나한테 전화 왔어. 부추전은 중짜 사이즈부터 서비스 나간다고 너 소짜시켰다며."

"푸하하하 내가 미쵸. 그걸 일본까지 전화해? 아 웃기다. "

"어 암튼 잘 먹어. 


시무룩. 부추전 먹고 싶은데 족발이랑 막국수만 왔다. 왕창족발이라며 왕창 주지 엉엉.

그래 맛이나 보자. 막국수 한 젓가락 하는 순간 부추전은 일본에 비행기 타고 보냈나 싶게 생각에서 사라졌다. 너무 맛있네 야미야미. 

냉장고에 가서 요즘 구하기 힘든 생레몬하이볼을 꺼내 얼음 곁들여 맛나게 먹는데 홍홍홍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마나 웬일이니..... 먹다 보니 둘이 소짜가 적다. 이런!!! 아까 일본으로 비행기 타고 갔던 부추전이 다시 머릿속에 찾아왔다. 

그냥 중짜 시킬걸 부추전까지 그럼 완벽 그 잡채인데. 

난 참. 먹으면서도 다음에 어떻게 시킬지를 구상하는 찐 식신이구나. 


한상 늘어지게 먹고 애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또다시 겜 속으로 접속 아니 접신했다. 그 순간 족발행복모드에서 나는 또다시 전투모드 불이 들어왔다. 


"누가 컴퓨터 켜래. 평일에 게임하면 숙제 못하지. 얼른꺼."

뒤도 안 돌아보고 자기 5분만 하면 된단다.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네. 내가 병맛이니. 그 말을 믿게. 

하이볼기운에 전투모드가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 금방 끈다는 약속을 받고 뒷정리하고 나도 핸드폰으로 장기한판 두며 저분 공부모드로 돌리려고 째려봤다. 

"시간 다 되써 이제 꺼."

"아 절대 안 돼 지금 안 돼 지금 각성해야 돼. 나 지금 슬럿 돌렸어. 아아아아아앆 레어템 와와와!!"

하나도 안 기뻐. 너만 기뻐 얘야. 공감 1도 안 되는 환호성을 듣고 있으니 하이볼의 취기가 비행기 타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술 다 깨고 다시 전투모드 풀가동.


"동영상 촬영해서 아빠한테 보내도 되지?"

"아 왜? 나 다했다니까 나 못 믿어? 1분만 기다려주세요. 네?"

띵~ 동영상 촬영소리가 나자 바로 끄고 씩씩 대기 시작한다. 

자기를 못 믿냐며 아빠한테 영상 보냈냐며 눈물을 그렁거린다. 

그래 이거지!!! 

숙제 그냥 시작하면 서운하지. 희열까지 느껴진다. 이쯤 되면 나도 대결구도를 즐기는 것 같다. 돌았네. 


잠시 후...

숙제하다 갑자기 나와서 

"엄마. 아까 내가 너무 한 것 같아요. 미안해요." 머쓱해하며 말을 건넨다. 

이건 뭐지? 족발 잘못 먹었니 얘야?

"오오~~ 후야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엄마 너무 감동이다. 생각해 보니 억지 부린 거 인정한 거야?"

"응"

오구오구 내 새끼 머리통에 뽀뽀해 주고 엉덩이 툭툭 쳐주고 이제 남은 시간 열공하면 오늘 퍼펙트야 아가야. 


분명 아이랑 둘이 족발로 저녁 먹었는데 남편이랑 셋이 먹은 것 같네.   


남편아 남편이 열심히 외국에서 돈 벌어서 덕분에 우리 가족 맛있게 족발 먹었어. 고마워.라고 말하고 싶지만 낯간지러워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며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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