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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May 30. 2024

오답귀신

볼빨간 삿춘기

"어머니 안녕하세요? 수학학원입니다.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통화가능합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어머니 오늘 남아서 재시험 보고 입체도형 통과 했고요, 내일은 심화 프린트 오답을 좀 고쳐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와..... 창피해. 나머지 공부 단골이다. 내일 하교 후에 바로 수학학원 오면 선생님 공강시간에 맞춰서 시간확보가 되어 나머지공부를 봐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수학학원비 36만 원. 화목 주 2회 3시간씩. 이건 뭐 매주 나머지 공부를 하고 오니 화요일 목요일은 거의 다섯 시간씩 학원에서 보낸다. 보통 다른 아이들은 나머지가 너무 싫어서 수업 후에 바로 연결해서 후다닥 하고 귀가한다. 반면 이분은 배가 고프면 공부가 안된다며 선생님께 부탁해서 집에 와서 저녁까지 드시고 영상 보며 조금 쉬었다가 양치하고 다시 재출근하신다. 느릿느릿


"나머지 학습 하는 것 싫지 않아? 애초에 오답을 줄여보면 좋겠어."

"싫은데. 난 괜찮은데 엄마랑 안 고칠 거야. 선생님이랑 고칠 거야."


와.... 나도 너 싫거든. 누군 좋아서 같이 하자는 줄 알아. 


"엄마, 나 영어 숙제 먼저할 거야. 영어하고 그다음에 수학 조금 하고 좀 쉴래." 

"그러셔."


"아, 하기 싫어. 내일 나 스케줄 없지? 영어 내일 할래. 수학해야 해?"

와.... 진짜 짜증 나. 강적새끼. 

"수학해야지. 뭐 하고 싶어? 파워, 개념, RPM 중에 골라와 봐."

"아무것도 하기 싫어. 아 하기 싫어. 오늘은 그만할래. 하기 싫어. 해리포터 읽다 자고 싶다. 엄마, 나 오늘은 진짜 그만하면 안 돼? 나 학원에서 재시험도 보고 와서 힘들다고."

야 누가 재시험까지 가래? 재시험 보고 온 걸 벼슬처럼 이야기하는 네가 참 이해 안 된다. 하지만 이건 마음의 소리고 마음을 추스르며 

"다른 애들 다 지금 숙제해. 전화해 봐. 못 믿겠으면."

"아 싫어 싫어 싫어." 대화단절 신호다. 거실로 튀어나가며 갑자기 무도인으로 변신해서 입으로 바람소리를 내며 소파의 곰돌이 인형을 가격하기 시작한다. 테스토스테론이 몸 안에서 넘쳐흐르는 증거다. 

아얘 돌았다. 본인이 그렇게 아끼던 꼬부기 인형을 야구공처럼 소파에 던지기 시작한다. 그러며 패대기치고 입으로는 연신 바람을 가르는 소리로 효과음 장착해서 상황극을 즐긴다. 

아.. 억지로 시키면 죽을 만큼 싫을 텐데. 지금 나만 한 시간 전부터 식탁에 앉아서 정답과 해설지 들고 기다리고 있다. 정작 저 새끼는 보이지 않는 적들과 입으로 효과음 넣어가며 즐기는데. 


그동안은 소리 지르고 맴매체 들고 빨리 오라고 다그쳤었는데 그러면 역효과가 나서 애랑 관계만 나빠지는 걸 느꼈다. 그냥 기다려보자. 저 새끼도 사람이면 오겠지. 

야구공처럼 꼬부기를 던지다가 자기 야구 잘한다고 또 좋아한다. 

완전 미친놈 같이 느껴진다. 언제까지 기다리나. 한참을 공격놀이하고 놀다가 지도 찔리는지 내쪽을 힐끔거리며 엄마 모 하냐고 묻는다. 왜 자기 안 부르는지 궁금하겠지. 종목을 바꿔서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자기 방에 있던 큰 곰인형을 들고 와서 엎어치기 메치기를 시전 한다. 와... 아랫집 할머니 주무실 텐데...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할 일을 나 몰라라 하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안 든다. 꼬부기와 곰인형을 완벽히 제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초싸이언 초초싸이언 초초초초초촟초 초등학생 초싸이언으로 빙의해서 거실을 경기장처럼 즐기기 시작했다. 

아 욕지거리가 나오는데 참느라 죽을 맛이다. 그렇게 모든 대전을 마치고 갑자기 식탁에 앉았다. 

미라클!!!

"나 그러면 숙제 식의 계산만 하고 그만할 거야."

양심이 작용했는지 지 스스로 앉았다. 다른 집들은 아주아주 당연한 일들을 우리 집에서는 기적으로 불린다. 

식의 계산 문제들을 빠른 속도로 스캔하니 쉽다. 지수법칙만 알면 후다닥 할 수 있으니 머리 쓴 거다. 안된다고 하면 또다시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움터로 갈 거 같아서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꾹 눌렀다. 

"일단 풀어봐."

"설마, 더 시키진 않을 거지?"

이분은 엄마의 말을 선택적으로 집중하고 기억해서 조심해야 한다. 사회성 스킬을 발휘해서 조곤조곤 타이른다.

"일단 해봐. 왜~~ 잘하면서."

아 더러워 진짜. 비위 맞추기. 

"아 몰라 안 할 거야." 

놀라운 집중력으로 문제를 풀어 제끼기 시작한다. 이럴 거면 후다닥 하고 놀지. 진짜 숙제 미루기 불치병에 걸린 게 확실하다.  

"다했다. 철수."

미친놈 철수가 친구이름이냐? 

"조금만 더하자. 너 지금 10 분했어."

"시간이 뭔 상관이야. 내가 하긴 한 거야. 끝이야. 내일 스포츠클럽데이니까 나 빨리 쉴 거야."

샤워하러 들어갔다. 

정말. 

내 인생의 오답 같은 놈.

사실 알고보면 이거 투루먼쇼아냐?만약 그렇다면, 감독님 저 엿먹일려고 아들 배역 기가맥히게 쓰셨네요.

 

언젠가 사람이 되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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