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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12. 2024

혹시 당근?

행복한 갱년기 4

언제 들어도 맑고 경쾌한 그 소리


당근����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야심한 시각에 별안간 당근 채팅알람이 울렸다. 

무려 4개월 만에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목감기 걸렸을 때 효과 좋다고 해서 1+1으로 샀건만 입맛 예민한 후님이 퇴짜를 놔서 결국 사용하지 못한 플러스 원 새것을 처분해야 했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당근당근!


'혹시 2천 원만 빼주실 수 있나요? 만원에 될까요?'

'네. 가능합니다.'

4개월간 안 팔렸는데 이 정도 에누리야 가능하지요. 콧노래 불러가며 약속을 잡는다. 

'비대면 문고리 거래 괜찮으시죠?'

당연히 괜찮겠지 하는 의례성 질문이었다. 예상을 깨는 답변.

'혹시 지하철역으로 나와주실 수 있나요?'



그때부터 짧은 시간 시작된 내적갈등.


아... 대면 거래 하자고? 민망한데. 얼굴 보고 판다고? 게다가 집에서 나가야 하잖아. 싫다 싫어. 

만원 벌자고 나가야 돼 말아야 돼. 4개월 만에 팔린 건데 만원이 어디야. 그래 운동하는 겸 나가자. 



짧은 고민을 끝내고 아침 10시에 지하철역 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한다. 1초 단위로 기억이 오락가락하니 핸드폰 알람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12시에 마사지 예약이 있어서 평소 같으면 집에서 집안일하며 쉬고 있을 터인데 고생 사서 한다면서 중얼거리며 거리에 나오니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9시 40분. 

쨍한 한나절이 오기 전. 

밤사이 차갑게 식었던 기운이 아직 거리에 감돌고 있었다. 

오래된 나무그늘 밑을 지날 때는 청춘드라마까지 떠올랐다. 나오길 잘했군. 

내 몸무게보다 체감상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약속장소에서 쿨거래를 마치고 그냥 집으로 오려고 했다. 


진짜로.


그런데 새로 개업한 닭강정과 김밥을 함께 파는 김밥집이 1.5배 크게 눈에 들어왔다. 

'배고프네... 개업했으니 팔아줘야지.'라고 나 스스로 지역경제 살리는 좋은 사람이라고 합리화하며 키오스크로 주문을 한다. 


정확히 당근으로 번 돈 만원. 


가치로운데 썼다. 집에 있으면 쓰지도 않은 쓰레기였을텐데 김밥과 닭강정까지 콤보세트로 나에게 포만감을 줬다. 게다가 운동은 덤.

조화인가? 싶게 자태가 완벽에 가까운 우아한 난을 구경하며 김밥 콤보를 만원 주고 픽업해 왔다. 

역시 돈 쓸 때가 제일 재밌다.


이제 한 달 전에 예약한 스포츠 마사지를 받으러 가야 한다. 오른쪽 어깨가 고장 나서 오십견처럼 아프다. 갱년기와 함께 시작된 통증이 나를 괴롭힌다. 병원 가기 전에 운동도 해보고 마사지도 해보며 고쳐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찌나 내가 아픈 곳을 정확히 아시는지 아프면서도 시원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마사지사 분의 터치가 부드럽고 따뜻해서 엄마라고 부를뻔했다. 사람이 나이 들면 스킨십이 필수구나 싶다. 우리 남편 우리 아들 더 많이 안아줘야지. 


정오시간이라 날이 덥고 햇빛이 강해 아이스커피가 몹시 당긴다. 그러다 눈에 띄는 무인커피집에 들어갔다. 


아... 키오스크 적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무인 커피집은 그보다 몇 단계 더 고난도이다. 

분명 한국말로 쓰여있는데 기계 앞에서 고장이 나버린다. 나 대학원도 나온 여자인데 왜 이럴까? 

초집중하며 메뉴를 고르고 결재하기 버튼을 밑에서 찾다가 이윽고 화면하단에서 찾았다. 휴..

와.... 얼음만 나와. 왜 이래? 하는 순간 옆기계로 나보고 옮기랜다. 

옮기다가 뜨거운 커피 손에 닿으면 어쩌지? 이러며 사람이 타주는 커피집 가야겠다고 투덜거리며 재빨리 옆기계에 아이스컵을 넣고 손을 뺐다. 



오오오!!! 커피 나온다. 마무리로 컵홀더와 커피뚜껑 장착하니 뭔가 해낸 기분. 

아 또 기분 째진다. 역시 대학원 나오길 잘했어. 난 이런 신식기계도 잘 적응하잖아?라고 절대 겉으로 말 안 하고 속으로 말하며 무인커피집에서 잠시의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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