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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14. 2024

500만 원 날렸네.

행복한 갱년기 6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알 수 없는 곳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네, 안녕하세요? 토스 보험진단팀입니다. 먼저 보험진단 서비스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며칠 전에 토스에서 선물이 왔다며 호들갑스럽게 복주머니가 팡하고 뜨더니 500원을 준다는 광고에 호기심에 클릭한 게 나의 보험 진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광고전화라 끈을까 하다가 보험 진단이나 받아보고 싶어서 통화를 계속하기로 했다. 


"고객님, 현재 보험 2개 유지하고 계시는 걸로 나오는데 맞나요?"


무슨 소리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2개 이상일 텐데...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현대해상 거랑 아이 거 ING일 거예요."

"아 맞습니다. 그 외에 직장인 단체보험이 있으시네요."

"네. 그 외에 암보험도 있을 텐데요?"

"계약자명과 수혜자가 일치하지 않아 조회가 어렵습니다."


뭔 말이지? 내가 서류 사인하고 가입했으니 내가 계약자 아닌가?


"계약자가 전데요? 돈도 제가 내는데 무슨 말씀이죠?"

"계약자분이 김 00으로 전산에 떠서요. 아마 보험설계사 분 성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이미 난 그 암보험에서 보험료도 탔는데 더 파봤자 뭐 하나 싶어 넘어가기로 한다. 


"네. 알겠어요. 혹시 저한테 현재 부족한 보험이 있을까요?"

"고객님 암보험이 부족해요."

"저 암 지금 치료 중인걸요? 그래도 보험 또 들어줘요?"

"아..... 고객님 그럼 언제 발병하셨고? 무슨 암이에요?"

"글쎄요. 발병한 지는 10년 넘었고 그사이 재발해서 현재까지 치료 중이에요."

"아.... 고객님 힘드셨겠어요. 그럼 전이는 아니시죠?"

"아뇨. 전이돼서 재발되었죠. 4기예요."


목소리 톤이 상담사 특유의 '솔'음의 톤에서 갑자기 차분한 '낮은도'까지 내려오며 힘들었겠다며 예상가능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 대하는듯한 태도와 암 4기가 놀랍다는 듯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싫었다. 미안하지만 원하는 정보를 디렉트로 물었다. 


"제가 암 발병 중이라 더 이상 암보험은 불가할 거 같은데 다른 보험을 뭘 보충하면 좋을까요?"

"고객님 위나 장에 용종이 발생할 경우 시술 시 보험료가 지급되는 보험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미 암발병을 했기 때문에 보험 통과가 쉽지 않을 거 같아서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데 맞나요?"

"사실 그렇습니다."


끙... 뭐지... 시간낭비군.


"심혈관이나 뇌졸중 같은 질병을 보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다면요. 분석해 보시고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고객님 추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무슨 보험을 들겠냐. 보험회사가 바보도 아니고 돈 들어갈 일이 수두룩 한 나를 서류통과하기 쉽지 않겠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보험가입에 거절당하는 것은 예상했지만 기분이 별로다. 직원의 잘못은 아니지만 내 앞에서 뚝딱거리며 '그럼 심한 거 아니냐? 괜찮으시냐?'라고 묻는 말에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싫었다. 괜히 500원 벌려고 기분 500만 원어치 날린 것 같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나의 상황을 알게 되는 사람들은 적지 않게 당황하고 측은하게 바라본다. 그러며 뚝딱거리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매우 그 상황이 싫어서 병을 숨겼었다. 

그런데 내가 병에 걸린 게 죄지은 것도 아니고 관계를 지속할 때 매번 둘러대기도 싫어서 계속 봐야 하는 지인들에게는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변에 이야기하다 보니 병이 별거 아닌 것 같고 숨기고 있을 때보다 훨씬 일반인스러운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병원밖에서 평범하게 일상을 살며 그들과 섞여 지내면 내가 일반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암 걸린 게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살면서 누구나에게 닥칠 수 있는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근데 왜 하필 나냐고. 


그래서 잘 지내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이런 불쌍한 취급을 받으면 내가 불쌍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속상하다. 


아마 

사실

괜찮지 않나 보다. 


다음 주에 또 CT일정이 예약되어 있다. 꾸역꾸역 잘 살다가 주기적으로 검사일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예민해진다. 내 마음속의 깊은 곳에 사는 불안이 슬며시 머리를 들며 휘젓기 시작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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