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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17. 2024

계절마다 찾아오는 제철 남자

행복한 갱년기 8

  운동한 지 세 달째에 접어들자 선생님께서 욕심을 부리시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강도를 더더더 세게 업그레이드해서 급기야 오늘은 폼롤러 위에서 균형 잡아가며 스프링 저항까지 걸어서 팔다리 강화 운동을 했다.

민망할 정도로 땀이 후드득 기구에 떨어지고 런지자세로 한 발로 균형 잡을 때 허벅지 근육이 불타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더 버티면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회원님 오늘 운동 제대로 되셨어요. 성취감 있으시죠?"

"네, 다리 감각이 안 느껴질 정도로 성취감 있어요."



언제나 다정한 담당 필라 선생님은 내가 못할지라도 항상 화내지 않고 용기를 주신다. 어린 선생님의 티칭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다. 하기 싫은 운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

아들의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드는 방법을 잠시 떠올려보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신의 영역이므로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공복으로 운동을 와서 운동 후에는 허기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너무 힘들었는지 식욕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난 준비성이 철저한 식신이므로 근처 반찬가게에 가서 세일품목을 살펴보기로 한다.

운이 좋게 오늘은 세일을 10% 더 해주는 날이라 평소 좋아하는 단호박샐러드와 얼마 전 비빔밥에 넣고 맛있게 먹었던 여름 한정메뉴 노각무침을 찾았다.


"노각무침이 안 보이는데 혹시 메뉴에서 빠졌나요?"

"노각무침 여름 한정메뉴에서 인기가 좋아 정식메뉴되었어요. 세일품목에서는 빠졌고요."


아뿔싸 세일품목만 뒤적이니 안보였구먼. 처음에 세일가로 샀던 기억이 나므로 정가로 사기에는 선뜻 내키지 않는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혜택도 주지 않으므로 적극적으로 살기로 선택한다.


"노각무침 세일은 이제 안 하는 건가요?"

"네, 이제 정식 메뉴 되었어요."

안 살 것 같은 표정과 엊그제 맛있게 먹었었는데 세일 안 하니 아쉽다고 중얼거리니 잠시만 있어보란다.


'이거 봐, 왜 진상 스멜을 부려야 해 주는 거야. 내가 환불원정대도 아니고 그냥 처음부터 말해주지.' 다정하게만 살고 싶은데 가끔씩 여러 캐릭터를 소화해야 해서 피곤하다. 세상은 쎈캐에게 더 친절할 때가 많은 게 사실이다.

환불원정대 이효리, 엄정화, 화사, 제시. 사진=MBC


분명 없다던 세일 노각 무침이 몇 마디 불평에 새로 생기는 기적을 체험하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집에 오자마자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니 누가 밥을 차려주면 너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 엄마는 나이므로 나 자신을 스스로 대접할 수 밖에 없지.


오늘의 메뉴는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 평소 같으면 계란 반숙까지 올려서 제대로 먹었겠지만 지금은 팔다리 몸통 힘이 없어서 아보카도 겨우겨우 손질해서 비빔밥을 해 먹었다. 역시 음식은 정성이 반이라고 대충 해서 대충 허기만 때우니 맛이 반감된다. 아니면 격한 운동으로 입맛이 안 돌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맛없을 수 없는 조합이 덜 맛있게 느껴져 시무룩하다. 운동의 좋은 효과 인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바야흐로 여름이 다가왔음을 초당옥수수가 반갑게 알려준다. 아삭아삭한 식감에 한입 베어 물면 과일처럼 입안에 기분 좋은 달콤함이 한가득 퍼져서 매해 초당을 기다린다. 더군다나 이 녀석은 조리법이라고도 할 것도 없이 생식해도 되고 전자레인지에 살짝 30초만 윙~ 돌려도 금세 먹을 수 있어서 더 좋다.


건강한 간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과자보다 훨씬 나을 듯싶어 오이스틱과 당근스틱을 손질해서 통에 소분해 놓고 배고플 때마다 꺼내먹는다. 초당의 계절에는 거기에 초당까지 함께 간식으로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게 하나도 없어진다.

내가 연신 맛있다 맛있다 하며 먹으니 아이가 와서 한 입만 달라고 한다. '바로 이거지. 넘어왔군.' 속으로 올레! 를 외치며 줬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엄마 너무 맛있다!"

"그렇지? 지금만 반짝 먹을 수 있는 거야." 기회 놓치지 말라는 말이다. 처음에 맛있다며 옥수수 한 개를 쥐고 먹더니 더 이상 안 먹는단다. 오예~! 다 내 거.  


계절의 변화에 따라 4계절 제철음식이 매번 달라지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서 참 좋다.

1년 내내 같은 계절만 있다면 제철 음식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서 사라졌을 테지. 사계절이 모두 있어 옷정리는 귀찮지만 음식은 다양해서 호기심 많은 나는 제철 음식이 뭔지 항상 염두에 두고 맛보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변화를 사랑하는 내가 한 사람이랑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남편이 그걸 알아야 할 텐데. 어쨌든 계절마다 남편을 갈아치울 수 없으니 이 남자가 철마다 오시는 새로운 남자다 생각하며 우리집 제철 남자라고 생각하며 데리고 살아야겠다. 제철음식이 몸에 좋듯이 우리집 제철남자도 내 몸에 좋을꺼라고 체면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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