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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18. 2024

떡 사세요. 토끼떡 최고예요.

행복한 갱년기 9

"으... 음... 아.... 저 아직 마취 안되었어요. 내시경 하시면 안돼요." 웅얼웅얼

"환자분 다 끝났습니다. 일어나세요."


아차. 마우스피스 끼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말을 하지? 내시경 이미 끝났구나. 매번 수면마취에 취해서 내시경이 끝날 때쯤 헛소리하며 깨곤 한다. 그럴 때면 헛소리 했던 게 창피해서 한동안 그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취 안되었다고 헛소리하며 깨서 민망함과 함께 진료실에서 결과를 듣는다. 중증 환자들은 본원에서 하셔야지 동네 병원으로 왜 보냈냐고 중얼거리시길래 의료파업 때문에 본원에서 안돼서 파트너스 병원으로 협진 요청한 거라고 친절히 알려드렸다. 제가 더 불편하다고요~ 선생님.


"환자분 내시경 할 때 구역질이 심해서 사진 촬영이 힘들었어요. 혹시 최근에 술 드셨나요?"


빠른 속도로 내가 최근에 언제 마셨지? 아... 왕창족발 먹으며 딱 한잔 아니 딱 한 캔 했구나. 말하면 혼날 텐데.. 일주일 전이니까 최근은 아니야. 최근은 2~3일이지. 그렇지. 시치미 때자.


"아뇨. 술 안 마셨어요."

"이상하네 보통 내시경할 때 이 정도로 구역질하는 건 최근 술마신경우 그렇거든요."

아니라니까 대충 넘어가지 추궁하시네.

"제가 비위가 약해요. 너무너무 고생하셨어요. 데헷" 귀여운척했으니 그냥 넘어가자 넘어가.

"다행히 위벽이랑 위 안쪽은 깨끗하네요."

"고생하셨어요. 선생님. 위 바깥도 깨끗할 거예요."

라고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휴.... 병원, 경찰서, 운전면허 시험장, 출국할 때 여권심사 할 때면 괜히 죄지은 것도 없이 긴장 탄다.





  수면마취 후에 약간은 헤롱대는 정신을 맑게 하고 싶다. 전부 다 핑계고 그냥 아이스라테가 너무 마시고 싶다. 아이스라테와 뭐가 어울릴까? 샌드위치. 샌드위치와 라테로 브런치를 하기로 하고 동네 빵집에 갔다.

가는 길에 동네 유명한 떡집에서 아들 간식으로 보기에도 예쁜 토끼 꿀떡과 흑임자 인절미를 사서 빵집으로 향한다. 떡&빵이라... 탄수화물 파티를 열어보자!!!  


고심해서 샌드위치를 고르고 종이백에 넣어주시려는데 떡집 봉투에 같이 담겠다고 그냥 넣으려 했다.

떡 위에 샌드위치를 턱 하고 올리니 밑에 떡이 눌릴 거 같아서 위아래 위치를 바꾸며 떡을 내놨더니 종업원이 무슨 떡이 이렇게 예쁘냐고 탄식한다.


"어머 모르세요? 선비떡방 요 근처에 있는데 여기 유명해요. 떡 좋아하시면 바로 앞에 여의나루 떡방도 맛나는데 선비떡방이 한수 위죠. 호호 "

나 왜 이러지? 미쳤나. TMI TMI TMI 그만하자 하고 돌아서려는데 종업원이 고맙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그래서 이 떡이 얼마냐고 묻는다.  

"두 개에 7500이에요."

"제가 이 동네에 안 살아서 몰랐어요. 퇴근하며 떡 사가야겠네요. 호호"

와.... 나 떡 팔았네.

수면마취 기운에 떡까지 사고팔고 뭔 정신인지 집에 왔다.



혼밥이지만 혼밥이 아닌 듯 커넥트 지성님과 함께 브런치를 하니 몽롱했던 정신이 다시 제자리로 오고 있다.

반 정도 우걱우걱 샌드위치 먹고 있는데 동네 친구가 밥 먹자고 나오란다. 이미 배가 빵빵한데. 너무 아쉽다고 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지금 이데로 나간다면 또 떡을 팔지도 모른다.‘ 제정신으로 사람 만나야 한다. 지금도 마취기운 남은 것처럼 주절주절... 하지만 살짝 정신줄 놓고 사는 것도 나쁘진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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