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10. 2024

그래 좀 일찍 할머니 되는 것도 좋아.

행복한 갱년기 3

마흔 중반들어서며 자식이 영유아기를 벗어나 몸이 조금 편해지니 부모님이 아프기 시작하고 배우자도 늙고 나도 늙고 다들 골골의 시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백세시대라는데 반백살 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암수술을 여러 번 받았고 기적처럼 연명하고 있다. 나의 경우는 일찍 아프기 시작했지만 주변 지인들의 나이가 들면서 그들도 아프기 시작하며 왠지 대화에서 내가 항상 선배님 같은 모양새이다. 모임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현재 앓고 있는 병과 주변인들의 아픈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생로병사가 와닿는 나이지. 얼마 전 읽었던 책인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에서 봤던 한 파트가 떠오른다. 

중년을 넘어서며 자기소개 시간에 빠질 수 없는 지병이야기. 공감돼서 웃음이 나온다.


가족과 비빔밥처럼 꼭 붙어서 삼시새끼를 고민하는 주말이 지나고 남편은 출장을 떠났고 아이는 등교했다.

한적한 월요일이 제일 좋다. 직장 다닐 땐 월요병에 시달렸는데 주부가 되니 월요일이 기다려지다니 인생의 바로 다음 스텝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한껏 여유를 즐기는 월요일 오전의 적막을 깨는 지인의 풀 죽은 전화 한 통. 


"나 자궁제거 해야 한데. 수술 처음이라 두렵고 무서워."


우리 나이에는 병원과 때려야 땔 수 없이 수시로 드나드는 나이가 되었는지 나에게 또 수술 상담이 들어왔다. 대학병원 가면 수술이나 항암 전에 수술 전 상담실이 있는데 이쯤 되면 그쪽 카운슬러 비슷한 느낌도 든다. 

난 이미 수술해서 자궁과 난소가 없으니 해줄 말이 너무 많지. 

이미 제 역할을 끝내고도 남은 자궁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지인에게 난소는 살려뒀으니 호르몬 문제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토닥여줬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자궁이 사라지고 나서 무거운 물건을 들기가 어려웠고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무기력했다. 심리적으로는 몸의 한가운데 있는 장기가 사라져서 공허하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허기로 느껴져 한동안 마구마구 식신원정대처럼 먹어댔다. 수술직후 여자로서 상실감도 찾아왔고 쓸모없어진 기분까지 들어서 우울했다. 실제 난소가 없으니 여성호르몬이 나오지 않아 함께 오는 갱년기 증상들로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자궁과 난소가 없는 삶은 온갖 증상들과 신체의 변화로 뒤범벅이다. 아무도 덥지 않은데 혼자 땀으로 샤워한 것처럼 두피로부터 땀이 흘러내려온다. 여름에는 정말 외출이 두려울 정도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관절이 아파서 더 정확히 뻑뻑해서 기름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등산 힘들게 하고 내려온 근육통처럼 몸 여기저기가 쑤셔왔다. 같은 량을 먹어도 살이 2배로 찌고 노력해도 빠지지 않는다. 친정엄마 뱃살이 나에게 찾아왔다. 이 모든 게 서서히 가 아니라 수술로 한꺼번에 찾아와서 그야말로 멘붕 제대로인 하루하루였다. 


하루아침에 찾아온 노인의 일상들이 놀라워 한동안 무기력했다. 갱년기에 좋다는 식이유황, 칼마디, 모닝글로리 등등 부작용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시간은 흐르고 내 몸도 적응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며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니 모든 게 나아졌다. 


그러며 들었던 생각


그래 좀 일찍 할머니 되는 것도 좋아. 


이런 생각을 하고 스스로 할머니처럼 대접하고 살고 있다. 

나의 30대는 이른 나이에 찾아온 암과 떠올리면 구역질이 나는 항암들로 가득 차있다.

죽음의 문턱을 수시로 드나드는 나에게 할머니가 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힘든 일 덜하고 몸 아끼고 운동 꾸준히 하며. 가끔 금붙이도 사고 드라마 싹 다 챙겨보며 천천히 살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우연히 동네 할머님들과 같이 탄 엘리베이터의 대화내용


"아휴 피곤해."

"왜 어제 못 잔겨?"

"어제 낮잠 자서 꼴딱 샜어."

"그럼 오늘 잘 자겠네. 낮잠 자면 안 돼. 나 커피도 끊었잖아."

"하루 못 자면 그다음 날 잘 자고 그랴."


왓! 나도 그러한 데. 하루 걸러 하루 잘 자고 낮잠 자면 잠 안 오고 오후에 마신 커피에 밤새 꼴딱 새고. 

하마터면 할머님들 대화에 낄뻔했네.  

밥솥에 전복죽을 하며 이 글을 쓰다 보니 취사가 완료되었다. 

이제 전복죽 먹으며 드라마 봐야지.


글을 쓰니까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은 것 같고 라이킷이 뜨면 마음 따뜻한 공감을 받은 느낌에 위로가 된다. 

이런 게 행복이지.

가슴속에 잔잔한 폭죽이 터진다. 보송보송한 강아지랑 함께 하는 느낌처럼 행복하다.  

이전 02화 내일이면 남편이 떠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