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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09. 2024

내일이면 남편이 떠난다

행복한 갱년기 2

귀한 손님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집을 방문한 지 석 달째. 

회사에서 유부남이라는 것을 인지는 하고 있을까? 

남편 회사 오너는 미혼이다. 몸과 마음을 바쳐 회사에 이바지하는 워커홀릭정신을 가슴의 훈장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신년회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작년에 몇 명이 이혼을 했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말했다고 한다.  

배려가 부족한 회사의 요구로 장기출장이 길어지며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엄마인 나의 몫이다.



본디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내 몫먼저 생각하는 나는 지금 상황이 버겁다. 

남편과 나의 짐을 나누고 싶은데 혼자 독박으로 짊어지니 지친다. 

놀러 나간 것도 아니고 출장을 간 분께 타박도 못하고 애는 애대로 엄마에게 요구하고 중간에서 마라맛 육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럴 거면 아얘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던지 손님처럼 집에 들락날락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난주 남편이 귀국했을 때 함께 찾아온 감기는 아마 온몸이 힘들었다고 남편한테 보내는 신호인 듯하다. 왜냐하면 남편 출국시기에 맞춰 신기하게 감기기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바뀔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푸념하고 있을 거냐?  

적당한 포기는 현명한 것이다. 

내 살길을 찾아서 앞으로 3주간 남편 없는 주말 동안 뭘 하고 지낼지 벌써 검색하고 있다. 

일단 아들이 고양이와 실컷 놀고 싶다고 하니 고양이카페에 가기로 했다. 

시간이 허락하면 만화카페에서 배 깔고 누워 라면을 먹으며 실컷 만화를 보는 것도 괜찮겠다.

우연히 블로그를 보다 보니 수원의 화성행궁을 하러 가서 맛있는 육회비빔밥을 먹고 오는 코스도 좋아 보인다. 더군다나 야간행궁이 시작되어 더위를 피해 밤시간까지 가능하니 더할 나위 없다.

남편이 집에 있으면 주말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허전하지 않은데 아빠가 없으면 아이와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나 스스로 느끼는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똑 부러지게 살고 싶은데 평생을 살아도 잘 안된다. 

길 찾다 조금만 헷갈리면 물어보고 뭐 하다 안되면 도와달라고 하고 잘 잃어버리고 긴장 잘하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손 많이 가는 인간이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 혼자 뭘 해볼 의지가 애초에 별로 없는 것 같다. 해외에 나가도 짧은 영어로 현지인들에게 모르면 무조건 물어본다. 직접 목적지까지 데려다준 사람도 있고 한국 배우 욘사마 광팬인 일본인과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인도기차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알아서 내려야 하는데 나 같은 외국인은 참 어려운 미션이다. 현지인에게 내가 내리는 역이 맞냐고 질문했다가 혹여나 내가 못 내릴까 봐 그분이 끝까지 챙겨주셔서 겨우 내렸던 기억도 난다. 하와이쇼핑몰에서는 나한테 어떤 가방이 어울리는지 세 자매가 골라주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손 많이 가는 한국인을 친절하게 대해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들 성격 누굴 탓하냐. 의지박약에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사는 어미 탓이지. 


기승전... 그러니까 출장 그만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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