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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18. 2024

살아 돌아온 하마육수캔

볼빨간 삿춘기 

이 놈에 집은 매일 청소해도 또 바닥이 이렇게 시커멓고 먼지가 많고 자기 방정리는 자기가 해야지 아직도 엄마가 해주냐며 잔소리하며 청소를 시작한다. 늘 그렇듯 후군은 우이독경처럼 내 말은 가볍게 토스하며



"아 맞다. 엄마 내 하마육수 어딨어? 설마 버린 건 아니지?"

"하마육수깡통 만든 거? 소중한 거였어? 그럴 줄 알고 잘 뒀지."



  이 자식 아직 안 까먹고 있었다. 다년간의 노하우로 아이가 직접 만든 작품들은 재활용쓰레기에 넣거나 바로 버리면 발각되므로 집행유예 작업을 거쳐야 한다. 아파트 1층에 위치한 종이 재활용쓰레기장에 자기 작품이 왜 여기 있냐며 엄마가 버렸냐며 씩씩대며 여러 번 주워온 후에 만든 장치이다. 하마육수는 집행유예에서 주인의 부르심으로 다시 살아난 케이스에 해당된다.

  

  해리포터 작가 J.K. 롤링의 신작 '크리스마스피그'를 보면 잃어버린 장난감들이 가고 싶은 꿈의 도시는 주인이 '간절히 찾는 물건 도시'이다. 주인이 완벽히 그 물건을 기억 속에서 잊으면 장난감들은 '슬퍼하는 이 없는 황야'도시로 떨어진다. 후군의 하마육수캔은 자체 시행된 우리 집 '집'행 유예에서 살아나 '간절히 찾는 물건 도시'로 승인되었다. 내가 먼저 소설 쓸 걸. 난 상상 속 도시가 아니라 진짜 도시가 냉장고 윗 칸에 있는데.

  

  인생은 타이밍이라 생각하며 냉장고장 위칸에 보이지 않는 곳에 예쁜 쓰레기들을 모아둔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일반쓰레기봉투에 밀봉해서 재빨리 처리해야 한다. 죄다 모아두면 좋겠지만 이렇게 버리지 않으면 후군이 만들기 좋아하고 그리고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서 집안이 온통 쓰레기 천국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집행유예에서 다시 살아난 하마육수캔과 절친과 함께 만든 활과 창을 들고 있는 전사님은 아직도 집에 있다.

  


왜 하마를 사골 육수캔으로 제품화했는지는 나도 모름 아무도 모름.


앙리 마티스가 살아 돌아와서 친구 하자고 할 만큼 간결한 작품성을 갖춘 '활과 창'은 꽤 사랑받았지만 결국 예쓰(예쁜 쓰레기)



밥 하랴 공부시키랴 청소하랴 게다가 장난감 집행유예 승인하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하루다.

아이 눈치 보며 하마 육수 무슨 맛이야? 이거 건강에 좋아? 상상력 총동원해서 장단 맞춰 주고 네가 아끼는 것 같아 안 버렸다며 어필한다. 애비는 돈만 벌어와서 좋겠다고 속으로 푸념하며 또 버릴 것 있는지 사냥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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