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18. 2024

자신에게 관세음보살미소를 짓는다.

볼빨간삿춘기 에필로그

"너는 대체 왜 항상 너 자신에게 그토록 관대해?

매일 학원 나머지공부에 재시험 떠도 되고 단어시험 fail 해도 다 괜찮아? 좀처럼 급한것도 없고 슬렁슬렁 학교 좀 늦게 가도 되고 전부다 왜이렇게 다 괜찮은데?"


"엄마, 그럼 나라도 나한테 관대해야지 누가 그렇게 해줘.

나라도 나한테 잘해줘야지.

세상이 다 나쁘게 말해도 나는 나를 잘했다해주는게 잘못이야?

아무도 나한테 친절하지 않은데 나라도 잘해줘야지."


아이의 말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다년간의 나와의 말싸움(?)으로 제법 세련되게 반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뒷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고 잠시 멍해졌다.

내가 이 작은 아이에게 무슨짓을 하고 있는거지?


생각해보면 올해초부터 본격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기에는 학습량이 넘처났고 아이는 버거워했다. 난 그걸 태도의 문제라고 닥달하면 할수록 아이와 멀어졌다.


말못할 고민이 있을때 제일 먼저 나에게 털어놓으며 엄마가 내 엄마라서 다행이라고 품에 파고들며 미소짓던 꼬맹이는 더이상 없다.


사춘기여서 그래. 사춘기땐 다그래.

친구 엄마들도 하나같이 모두 비슷한 고민으로 힘들어하지만 내 아이가 제일 말안듣고 못나보인다. 경쟁에서 도태될까봐 자존감 떨어질까봐 닥달하고 채근하며 오히려 내가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다.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장시키고 도와주는게 부모의 역할인데 옵션을 추가해 이왕이면 스스로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밀어부친게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가장 내가 화가나는 포인트를 생각해보자. 할 일 제끼고 먼저 놀고 게으르게 보이는 모습들을 참을수가 없다. 참을수 없는 이유는 뭘까? 처참한 학습결과 = 인생실패로 결론짓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서 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성공은 어떤 삶일까? 우리의 궁극의 목표는 행복하게 즐겁게 살기 위함이 아닐까? 알수없는 미래를 준비한답시고 현재의 행복을 보따리에 묶어 장롱 깊숙한 곳에 넣고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는 행동이 아이러니이다.


"숙제 언제 할꺼야? 두장 남았잖아. 이렇게 사는게 좋아?"

"엄마, 내숙제야. 내인생이고. 엄마 숙제 아니잖아. 왜이렇게 걱정해."


계속 내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고 나를 밀어낸다.  


악에바쳐서 아이가 반항하는 몇몇 날들이 지나면 아픈말들의 파편에 구멍난 마음을 메꾸고 싶어서 지인들과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내가 내 고등학교 친구들중에 제일 공부잘했거든. 그런데 지금 사는 모습보니 결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더라. 직업, 배우자 선택에서 나는 판단미스했어. 그래서 내 딸들에게는 지금 이순간 행복하게 살게 할 꺼야.

어차피 행복하려고 사는 인생이잖니. 자식도 내 인생도 뜻대로 안되더라. 그냥 아이 하고 싶은데로 키워. 너도 니인생 살고. 난 둘째 학원보내면 나한테 쓸돈 없어서 안된다. 내인생도 중요해."


실제로 학원 하나도 안보내고 아이 하고싶은데로 자유롭게 키우고 있는 친구이다. 고등학생 큰애에게 돈이 많이 들어가서 둘째는 어찌보면 반사이익을 누리는 중이라고 한다. 둘째가 자기집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며 계속 계속 나에게 외우라고 시킨 마법의 말 "응 그래, 니인생 니꺼."

독립적으로 니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니가 지는 거라고 각인시키며 키우는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머릿속으로는 수없이 되뇌이고 알고 있지만 실천이 안되는 걸 친구는 실천중이다.


니인생 니꺼.

 

계속계속 아이가 나에게 던진 메세지가 아닐까?


내인생 내꺼.


아이가 남들보다는 편안하게 더 높은 위치에서 잘 살길 바라는 욕심으로 아이가 병들지 않도록 해야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탓하며 아파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부던히 애쓰는 중이였구나. 스스로 관세음보살이 되어 다 괜찮으니 힘내라고 다독이며 크는 너를 그만 좀 하라며 비아냥 거린 나를 반성한다.  


이제 겨우 사춘기 초입에서 서로 기싸움 하느라 상처투성이 된 너와 나.


우리 잘해낼 수 있겠지?


아기때부터 부처님을 닮더니만 스스로에게 참 관대하다. 너!!


사춘기아들과 갱년기엄마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to be continued...

 







이전 16화 살아 돌아온 하마육수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