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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28. 2024

육아 등골 브레이커 3종세트 드림렌즈+성장주사+교정

다 키로 간다는 새빨간 거짓말

후군 뭘 먹이길래 이렇게 귀티가 나?

  코로나 전의 너는 정말 뽀샤시 예뻤다. 젖살이라고 부를 정도의 통통함이 있었고 얼굴이 희고 뽀얘서 뭘 입어도 잘 어울렸다. 옥스퍼드 느낌의 유치원 재킷을 입고 놀이터에서 놀면 동네 엄마들이 아들래미가 귀티가 난다면서 듣기 좋은 칭찬을 했었다. 좋은 거 먹이는 거 뭐냐고 빨리 말하라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때에도 잘 먹었지만 키로 쭉쭉 늘어나 살찔 틈이 없었다. 그런데 왜? 뭐 때문에? 코로나는 살찌는 바이러스인가? 여전히 먹는 량은 많은데 그것들을 소화시키고 열량을 쌓아두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하는데 전 세계를 강타한 죽을지도 모르는 바이러스에 벌벌 떨며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귀요미가 토실이가 되었고 토실이는 투실이 가 되었고 투실이는 퉁퉁이 뚱이까지 진화했다. 이처럼 우리 집 뚱이의 역사는 코로나 전후로 나뉜다.



괜찮다. 어린애들 통통해야 키 큰다. 다 키로 간다.

  왓? 대체 언제요? 계속 옆으로 퍼진단 말이에요. 눈물이 앞을 가린다. 더디게 큰다. 지독하게 안 큰다. 주변에 같은 키였던 친구들이 머리 하나씩은 더 커지며 차이가 눈에 보이니까 걱정이 스믈 밀려온다. 성장주사라도 맞혀야 하나? 알아보니 성장주사는 몸무게 대비 주사용량이 정해지기에 뚱이들은 금액이 한 사람 월급만큼 나올 수도 있단다. 이미 영끌 대출 풀가동인 우리 집은 불가능하다. 미안하지만 네가 살을 빼야 하는 수밖에 없다.


  요즘 육아 등꼴브레이커 3종세트는 성장주사 + 드림렌즈 + 치아교정이다. 공부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신경 쓸게 끝이 없다. 대체 부모의 책임의 한계가 있기는 한 걸까?


  등꼴 브레이커 첫번째 치아교정이다. 다행히 후군은 치아가 가지런해 교정이 필요하지 않다. 최근 받은 구강검진에서 영구치에 충치는 없지만 청결에 힘써야 한다며 의사 선생님이 아이 입안 진료 보시다가 한심한 엄마 보듯 나를 쳐다봤다. 인간이 이가 얼마나 더러우면 의사 선생님이 놀라서 진료 보다가 누가 엄마길래 애가 이런 지 살피려고 쳐다보게 하냐고요. 충치 없잖아요. 선생님. 넘어가자 넘어가. 이럴 땐 딴 데 보며 바쁜 척하기를 하며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다음은 드림렌즈. 한쪽에 50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드림렌즈를 끼고 자면 다음날 낮에 시력이 유지돼서 안경을 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성인이 돼서 처음 꼈던 하드렌즈의 고통으로 시력교정술을 선택했던 나인데 아이에게 하드렌즈를 강요할 수 없었다. 드림렌즈의 효과를 보려면 충분한 수면시간 확보가 우선이기에 자신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야행성 동물처럼 진짜 더럽게 안 자려고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자서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할 자신이 없다. 그리하여 애초에 드림렌즈는 해 줄 생각도 없었다. 초2부터 안경을 썼던 나보다는 낫지만 아이도 초4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성장기라서 시력이 훅훅 떨어져 이마저도 6개월에 한 번은 안경을 바꿔주고 있다. 안경점에서 시력 감퇴에 도움이 되는 안경알이 있다며 20분간 나를 설득한 적이 있다. '그런 안경알 있으면 노벨상 받겠어요.' 라고 생각하며 언제 설명 끝나나 속으로 되네였던 기억이 난다. 돈이 없으니까 선택적으로 알보다는 테에 주력했다. "공 맞아도 안 아픈 안경테로 해주세요." 농구를 얼굴로 하는지 안경이 휘고 코받침이 콧구멍까지 내려가 있기를 여러 번. 그냥 플렉서블 한 안경테로 조금 비싸게 맞춰줬더니 농구 실력이 는 것인지 안경테가 충격을 흡수했는지 모르겠으나 얼굴은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3종 세트 중에 남은 건 단 하나 성장주사이다. 일단 주사제의 가격은 입이 떡 벌어지는 고가에 냉장보관은 필수이며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배에 자가로 주사를 놔야 한다. 아이가 평균 이하로 작은 것도 아니고 성장주사 맞힐 돈도 없어서 못 본 눈을 하며 가까운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어보며 뼈나이 정도만 확인하며 체크하고 있었다. 문제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신체변화가 급격히 찾아오니 걱정되기 시작했다. 돈 없다고 결정적인 시기를 놓쳐서 아이가 영원히 땅꼬마로 살면 어쩌지? 왜 여자애도 아닌데 젖몽우리가 나오는 거야? 브라를 사줘야 하나? 고환이 커진 거 같은데;;; 신체변화는 제법 진행되는데 같이 온다는 급성장기가 오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제일 평이 좋은 의사 선생님께 초진 예약을 하고 진료를 봤다.


"아이고. 고도비만이라 당뇨가 걱정되네요. 혹시 아버지도 비만이신가요?"

애비는 비만인데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얘처럼 뚱뚱하지는 않은데 그냥 보통 같은데...

"보통체격에 가까워요."

"당뇨 가족력은 있나요?"

"네, 양가 할아버지 모두 당뇨인이 시고 아빠도 당뇨 전단계예요."

"이대로 살 안 빼고 크면 15세에 심각한 당뇨까지 갈 수 있어요. 아이 겨드랑이 색깔 변한 거 보이시죠? 지금 연한데 이 부분이 까매지면 당뇨증상으로 봅니다. 피검사하고 영양교육까지 필요합니다."

아이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래 내가 바란게 이거야 충격요법!

"15세에 당뇨 오면 어떻게 돼요?"라고 아이가 질문한다.

"매번 주사 맞고 당조절 해야겠지."라고 내가 말하자 나를 힐끔 보더니 의사 선생님이 눈으로 레이저를 쏘신다.

"당뇨로 입원 치료하며 합병증이 올 수 도 있어요. 먹는 것 조절하고 운동하고 노력해야 해요."


  입원치료라니 입원이라니... 그냥 아이 겁주려고 한 말일 수도 있는데 입원이라는 워딩이 나에게 세게 와닿았다. 내 머릿속엔 15세에 미래의 병원 침대가 그려지고 아이가 거기에 누워있고 나한테 물달라고 하고... 눈앞이 하얘졌다. 정신 나가서 할 말을 잃은 나의 모습을 보더니 아이가 걱정되는지 자기 위안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나 많이 먹어서 살찐거지 움직이는 것 좋아하니까 괜찮아. 간식 안 먹을게. 아니다. 애들이랑 일주일에 한 번은 사 먹어야 재밌으니까 줄일게."

그 와중에 분식점 편의점 나들이 계획을 세우시는 당신은 진정한 뚱이 입니다. 진짜 충격받기도 했지만 좀 더 연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나라 잃은 백성처럼 힘없는 음성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아... 그래... 근데... 네가 15세에 당뇨병 걸려서 학교도 못 가고... 평생... 그렇게 살 생각하면 너무 걱정돼."

"엄마, 걱정마 조절하면 괜찮겠지."

"으... 응... 그래. 조절이 쉽니... 아... 어쩌냐. 학교도 못 가고... 매일 병원치료 흑... 아이고"

"아. 엄마 차라리 화를 내. 걱정하는 게 더 싫어."

사실은 네가 제일 걱정되겠지. 일단 충격 요법은 통한 것 같다. 이제 식탁에 풀만 있네. 건강한 음식 극혐이네. 음식에 맛이 무맛이네 이런 타박들 좀 그만해라 인간아.


  차를 돌려 한 참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뭔가 허전하다. 원래의 계획은 병원 나오는 길에 백나예 김밥집에서 김밥 사오려는 계획이었는데 먹고싶은 의욕이 싹 다 사라져서 그냥 집에 왔다. 김밥을 안사서 그런가? 피검사 예약 전부 잡았는데... 허전한데... 아차!


"어머 내 정신  좀 봐. 병원비 안냈다."

"엄마, 진짜야? 아 어떻게 우리 도둑이야?"

"엄마가 너 당뇨 걱정하다 정신이 어떻게 되었나봐. 아이고야 이런일 처음이네."

이미 일방통행 도로에 들어서서 차를 돌리기 힘든 상황이라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엄마 빨리 돈내러 가야지. 뭐 이래."

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거든. 좀 닥칠래? 속으로 생각하고

"전화해서 계좌이체로 쏜다고 해야겠다."


  역시 난 베리 클레버하다. 위기에서 바로 해결책을 생각해 내는 내가 정말 대견해. 엄마의 속마음을 알턱이 없는 아이는 계속 돈 안내고 온게 찝찝하다며 투덜댄다. 그동안 육아 등꼴 브레이커 3종세트를 애써 외면했건만 결국 우리집도 피해갈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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