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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Aug 02. 2024

한여름에 밟는 눈

3.

스파이크를 신고 모래 운동장 위를 걸으면 눈 위를 사박사박 걷는 느낌이 났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에 온몸이 달아오는 것과 반대로, 다리만은 눈길을 걷는 듯, 사박거리는 느낌. 선생님은 늘 존경해야 한다고 듣고 배웠지만, 우리를 짐승 대하듯 하는 그 사람을 내가 존경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등, 사박거리는 소리에 맞춰 열한 살의 고민들이 머릿속에서 회전했다.


100M 출발선에서 일롱게이티드 자세로 몸을 웅크렸다가 육상부 코치의 호루라기에 맞춰 힘껏 발을 내딛는 순간, 허벅지 뒤에 통증이 느껴졌다. 

“빨리 안 뛰고 뭐하노!”

도착지점에서 내지르는 호통 소리에, 이를 악물고 뛰었다. 

“14초 73!!! 기어 다니나? 마! 내가 뒤로 뛰어도 이거보다는 빨리 뛰겠다. 니 운동하기 싫나? 하기 싫으면 하지마! 내 좋으라고 날도 더운데 이 땡볕에서 이 짓거리하는 줄 아나. 시합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새끼 정신 못 차리고... 마! 다시! 빨리 출발선으로 튀어가!”

한바탕 욕을 듣고 터덜터덜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간다. 

“마! 일로 와바!” 

코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자 코치가 내 몸을 자기 쪽으로 휙 돌렸다.

“마! 니 다리 누가 이래 만들었어!” 

“오늘 수업 시간에 맞았는데요.”

“와? 니 공부 안 하고 떠들었나?”

“아니요...”

“그람 와? 숙제 안 해갔나?”

“아니요... 부채질하다가......”

“뭐?”

“날이 더워서 책받침으로 부채질하다가......”

“뭐라꼬? 하.... 참 어이가 없네.. 니 4학년 몇반였노? 2반 맞나? 니 육상부라고 쌤한테 말씀 안 드맀나?”

“저번에 말씀드렸는데요...”

“뜀박질하는 아 다리를 빙신 만들어노면 우짜란 말이고 시합도 얼마 안 남았는데. 미치겠네 진짜.. 니 뛰지 말고 양호실에 가 있어래이 내 바로 가꾸마.” 근육 통증 스프레이를 허벅지에 뿌려주며 코치가 말했다. 맞은 부분이 불에 댄 듯 뜨거웠다가 스프레이 특유의 시원함이 다리로 퍼졌나갔다.


시원해진 다리로 사박사박 눈길 같은 모래 운동장 위를 지나 양호실을 향해 걸어갔다.

“뭐 때문에 왔노? 어디 다칬나?”

엄마처럼 포근한 인상의 양호선생님이 물었다.

“다친 건 아이고요... 코치님이 가 있으라 해서요.”

“아이고 파스냄새야. 창문 좀 열자.”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주어 긴장되어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

“어디 함 보자~~~ 이기 뭐고? 니 맞았나? 코치 쌤이 때린기가? 하이고야... 이래 쪼매난 아 때릴 데가 어딨다고 다리를 이래 만들어놨노. 여다가 파스는 왜 발랐노 따갑구로. 니 괜찮나? 안 따갑더나?”

소독약을 뿌린 거즈로 허벅지에 뿌린 파스를 닦아내며 양호선생님이 말했다.

“코치쌤이 때린 거는 아니고요...”

“니 몇 학년이고?”

“4학년요...”

“몇 반?”

“2반요...”

“아이고... 알았다. 일단 여 함 엎드려봐라.” 양호실에 있는 간이침대에 올라가 엎드렸다. 포근한 매트리스의 느낌에 이대로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호 선생님은 선명하게 줄이 생긴 허벅지에 연고를 발라줬다. 연고를 바르던 중, 코치 선생님이 양호실로 들어왔다.

“아이고 쌤요~ 고생 많십니데이~” 

“고생은예.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긴 한데. 뭔 아를 이래 때려놨는지 모르겠네예.”

“그라이요. 뜀박질 하는아 다리를 저래 만들어 놔뿌이.. 하.. 참 답답하네예. 그 영감탱이 말도 안 먹히고. 저거반 아가 육상분지 아닌지도 모르니까 환장하겠으예.”

“뭐 때메 때렸다 카는데요?”

“수업시간에 부채질한다고 그랬다 카데예.”

“부채질요? 그게 뭔 말입니꺼?”

“나도 모르겠심다. 뭐가 수업시간에 건방진 행동을 했니 어쨌니 카는데 말이 안 통해요.”

“하긴... 그 양반은 지 혼자 아직 저쭈~ 월남에 있다 아입니까~ 회식 자리에서도 맨날~ 빨갱이가 어쩌고 저쩌고, 월남이 어쩌고 저쩌고.”

“그라니까요. 하... 아는 좀 괜찮십니까?”

“뼈 뿌러진건 아이니까, 약은 발라놨어요.”

“고맙습니데이. 다리 저래가 뛰지도 못할끼고. 여서 좀 쉬다가 집에 가라고 좀 해주이소.”

“예 그랄게요.”

“수고하이소~!”

“쌤도요~!”

침대에 엎드린 채 코치 선생님과 양호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예전에 그가 사회시간에 우리에게 보여준 사진이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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