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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Aug 06. 2024

전쟁

4.

그날은 내게 조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늘 칠판 가득 빽빽한 판서 후, 자기의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그가, 수업 종이 울렸는데 판서도 하지 않고, 교탁에 서서 빙그레 웃으며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웃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던 거 같다. 정확히 웃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 톤에, 잿빛에 가깝다고 생각되던 그의 두 뺨이 조금 발그레 상기되었다는 느낌이 있었다.

“반장 나와봐”

반장이 앞으로 나가자 그는 자신의 품에서 아주 귀한 보물을 꺼내듯 봉투에 쌓인 무언가를 반장 손에 건네주었다.

“아직 보지 말고 일단 니 자리에 가있어” 반장은 그 보물을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너거 전쟁이 뭔지 아나?”

“서로 총 들고 싸우는 거요.” 반에서 제일 똑똑한 혜정이가 대답했다.

“와 총 들고 싸우겠노?”

“총이 칼보다 쎄니까요” 정민이가 대답하자 아이들이 와하하 웃었다. 그와 함께 하는 수업시간에 웃음소리가 들린 건 처음이었다.


웃음이 퍼지자 아이들의 표정은 밝아졌고, 그도 그날은 기분이 좋았는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전쟁은 사람 죽일라고 하는기라. 안 죽이면 내가 죽으니까. 총은 칼보다 더 많이 죽일 수 있고, 칼로 찌르면 한 번에 한 명삐 못 죽이는데, 총으로 드르륵 갈기면 한 번에 여러 명 죽일 수 있거든. 칼로 찔러 사람 죽일라카면 얼마나 힘든 줄 아나? 또 이 빨갱이 새끼들은 더 독해가 쉽게 죽지도 않아. 칼로 한 번 쓱 찌르면 죽을 거 같지만, 사람 목숨이 얼매나 찔기다고... 더군다나 빨갱이 새끼들은... 몇 번을 찔러야 되는지 모른데이. 때리고 찌르고 해도 빨리 안 죽어. 빨갱이들은 다 똑같다. 북한 빨갱이나 베트콩이나. 새끼들이 진짜 독해. 쌤이 옛날에 그런 독한 새끼들 많이 죽이봐서 아는데, 어린새끼들이고 늙은 새끼들이고 빨갱이들은 다 개새끼들이거든. 너거한테도 빨갱이가 얼마나 나쁜 새끼들인지, 어릴 때부터 대가리에 팍팍 넣어놔야 된단 말이야. 빨갱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쌤이 보이줄끼니까 잘 봐라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카이. 반장 아까 쌤이 준거 1분단부터 쭉 돌리 봐”


그 보물은 사진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보다는 젊은 청년의 모습.

군복을 입고 있는 그의 청년 시절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청년은 해맑게 웃으며 목이 잘린 사람 머리를 들고 있기도 했고, 총을 들고 사람을 겨누기도 했으며, 시체로 보이는 사람 무더기를 밟고 올라 해맑게 웃고 있기도 했다.

와하하 웃음이 나던 교실은 침묵에 휩싸였고, 사진을 차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고,  으...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 새끼들이 왜 제대로 사진을 못 쳐다보는 거야! 너네 가족 중에 빨갱이 있지! 똑바로 봐! 그런 건 자랑스럽게 봐야 되는 거야. 내가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이 새끼들아! 하하하. 빨갱이들은 다 그렇게 죽는거야. 너거들도 내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면 그렇게 죽을 수도 있다 알았나!” 

아이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진이 너무 무서웠고, 그가 하는 말과, 그의 목소리가 너무 무서웠다.

“이것들 봐라. 쌤이 좋게 말하니까 또 대답 안 하지. 알았나 몰랐나!”

“아...알았습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목소리를 쥐어 짜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사진 다 돌리보고, 공책에다 감상문을 적는다 알겠나?”

“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왕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밀림의 왕 사자처럼 여유롭게 기지개를 편 후, 다리를 꼬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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