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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Aug 09. 2024

달리기 시합

5.

“석아 시합 우째됐노? 니 학교 안 나와가 윽수로 부럽드라. 나도 달리기 잘해가 니처럼 학교 빠자물수 있으면 좋겠데이.”

3일간의 육상대회를 마치고 학교에 오니 친구들이 내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키가 작아가 그런지 안되드라. 여서나 빨리 뛰지, 밖에 나가니까 쨉도 안되노.” 

“니 1등 못했나? 여기서는 맨날 1등만 하는데. 니보다 빠른 아들도 있드나?”

“예선 때는 잘 뜄는데, 올라가니까 힘도 빠지고 안되드라.”

“맞나. 그래도 나는 니가 윽시 부럽다. 학교만 안 올 수 있으면 뭐라도 하겠노”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반가워 떠들고 노는 사이 그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칠판 선반 위를 손가락 끝으로 살짝 닦고, 칠판지우개 두 개를 들어 탁탁 부딪쳤다. 지우개 사이에 하얀 분필 가루들이 공기 중으로 뽀얀 안개처럼 흩어졌다. 

“당번 나와”

그날의 당번이었던 두 친구가 자리에 일어나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섰다.

그는 들고 있던 분필 지우개로 두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세 차례씩 때리며 말했다.

“당번이 하는 일이 뭐꼬? 내가 수업 전에 지우개 깨끗하게 털라캤어! 안캤어! 이 새끼들이 곱게 말로 하면 알아듣지를 못하네. 선반 위에 가루 보이나 안 보이나.”

당번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보이는데요”라고 대답했다.

“걸레 빨아와가 선반 깨끗하게 닦고, 지우개 깨끗하게 털어와!”

“네...”

두 당번들이 나가고, 그는 교탁 위에 놓인 출석부를 펼쳤다.

“김호석”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려져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의 목소리가 내 귀를 스치고, 목이 잘린 사람 머리를 들고 웃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심장과 팔다리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네.”

“나와”


내 자리에서 교탁까지 가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시합에서 성적을 내지 못해서 혼이 나는건지. 나도 모르게 책받침으로 또 부채질을 한건지, 나도 모르게 우리 집에 누군가가 빨갱이 짓을 한 건 아닌지,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잘못을 한 게 있는지 순간의 시간 동안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그의 앞에 서서 그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 새끼가 벌써부터 학교를 빠지고, 오늘은 왜 나왔어! 이 새끼야!.”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내 얼굴 전체를 감싸왔다. 불에 댄 듯 화끈한 느낌이 한쪽 뺨을 감싸 고통도 느끼기 전에 반대쪽 얼굴에 불이 붙었다.

몇 번의 불꽃놀이가 끝나고, 그가 물었다.

“학교 왜 안 왔어!”

대답을 하고 싶은데, 양쪽 뺨이 너무 아프고,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앉아있는 오십 명 중, 누구도 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아이도 없었다. 그는 우리 교실의 왕이었으니까.

“이 새끼 눈깔 봐라. 니 오늘 잘 걸렸어. 책상 위에 다리 걸어.”

“쌤.. 저 육상..”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양쪽 뺨으로 손바닥이 날아오고, 시커먼 출석부가 나의 머리며 얼굴을 스쳐간 후,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칠판 선반에 걸려있던 지휘봉을 들고 왔다.

“쌤! 석이 육상시합 나갔다 왔는데요!”

4분단 중간에 앉아있던 성욱이가 자리에 일어나서 이야기했다. 자기가 맞은 것도 혼이 난 것도 아니었는데 성욱이는 울고 있었다.

“뭐라고?”

“석이 달리기 시합 댕겨 왔는데요”

“니 나와”

“네?”

“나오라고”

성욱이가 쭈뼛거리며 그의 앞으로 걸어 나오고 그는 사정없이 성욱이의 얼굴을 갈겼다.

“네에? 이 새끼가 건방지게, 누가 선생님이 물어보는데 그딴식으로 대답하라 했어! 내가 니한테 물어봤나? 어디 건방지게 나서고 지랄이야!” 그의 손이 성욱이의 얼굴과 몸으로 휙휙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고 어서 빨리 그의 손이 멈추기만을 마음속으로 바랬다. 

그의 손들이 다시 내게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고개를 숙인 채, 책상에 앉은 친구들 쪽을 바라보니 눈을 꼭 감고, 기도하듯 손을 모으는 아이들,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고 있는 아이들 등 모두가 이 상황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는 느낌이었다.


교실의 왕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교실의 청소상태, 위생검사라는 명목하에 아이들의 손톱 길이, 머리를 감았는지 안감았는지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하였고, 그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말이 교실의 법이었고, 그는 교실의 왕이자, 법의 집행자였다.

“김호석이 니 달리기 시합 나가가 몇 등 했어?”

“예...? 7.. 7등 했는데요.”

“칠판에 다리 걸고 주먹 쥐고 엎드리”

칠판에 다리를 걸고 엎드리자, 그의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학교도 빠지고 시합을 나갔으면 메달이라도 목에 걸어와야지, 이 새끼가 7등? 학교 얼굴에 똥칠하러 나갔나 새끼야. 니 달리면서 무슨 생각했어?!”

달릴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 오로지 결승선만 바라보며 달릴 뿐, 나는 내 몸을 지탱하던 주먹이 너무 아팠다.

“조금 전에 이야기해도 또 대답 안 하지. 아 이 빨갱이 같은 새끼 오늘 진짜 이것들 안 되겠네. 다음시간 체육시간이지. 있다가 다 운동장으로 튀어나와.”


한 여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긴 하늘색 트레이닝복을 목까지 잠그고, 하얀 모자를 썼다. 

“앞으로~ 나란히!” “좌우로~ 나란히!” 그의 구령에 맞춰 우리는 오와 열을 맞췄고, 그가 늘 우리에게 자주 쓰던 단어 개새끼처럼 그가 명령하는 대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녔다.

그는 우리의 주인이자 왕이고, 우리는 그의 개였다. 


“김호석이 앞으로 나와” 주인이 불렀고,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뛰어나갔다.

“니 백미다 최고 기록 몇 초야?”

“13초 4요...”

“자, 오늘 이 새끼가 13초 4깨면 공놀이하면서 체육시간 마칠끼고, 못 깨면 지금 받은 정신교육보다 더 힘든 교육을 받을끼다이~ 김호석이 백미다 출발선으로 튀어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말한 최고 기록은 스파이크를 신고, 이런 울퉁불퉁한 모래바닥이 아닌 고르게 쫙 뻗어있는 우레탄 트랙에서 최선을 다해야 나올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그래도 그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 출발선을 향해 뛰어갔다.

출발선에서 서자 어떤 시합장에서보다 긴장이 되었다. 발을 모래에 밀어보니 신발 밑창이 닳아 모래에 미끄러져 빨리 뛸 수 없을 거 같아 신발을 벗었다.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모래에 양말만 신은 맨발이 닿자 스파이크를 신고 사박사박 눈길을 걷던 느낌이 사라지고, 상상으로만 그려봤던 뜨거운 불지옥이 지금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 삐익!”

그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힘껏 뛰었다. 호흡을 하면 더 늦어질까 숨을 꾹 참고, 기억에도 없던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결승전을 향해 뛰었다. 친구들의 응원 때문이었을까, 나 때문에 모두가 고통받는 기분이 싫어서였을까 평소 연습하던 때보다 더 가볍고 빠르게 모래바닥 위를 달렸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이제껏 내가 뛰었던 어떤 순간보다 빨리 들어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우와~” 시계를 가진 아이를 중심으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나는 영웅이라도 된 마냥 아이들을 향해 씨익 미소를 흘러 보냈다.

“조용!!!” 그의 한마디에 운동장은 다시 고요해졌다.

“쌤이 초시계 시작 버튼을 안 눌렀다. 이번거는 무효니까 다시 출발선으로 튀어가.” 그의 말에 기쁨에 젖어 환호성을 외치던 아이들의 표정도, 나의 미소도 모두 공중으로 분해되어 버렸고, 뜨거운 모래 위를 달린 탓에, 신고 있던 양말이 찢어져, 그 안에서 퍼지던 발바닥의 통증도 그제서야 느껴졌다. 선뜻 출발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멍하게 서있자 그가 내게 다가왔다.

“쌤 말 안 들리나? 이 새끼 이거 오늘 하루종일 삐리하이 이딴게 무슨 학교 대표 선수라고. 빨리 튀어가 이 새끼야!” 그의 손바닥은 여지없이 까만 먹구름처럼 내 얼굴을 덮었고, 눈에서 번개가 치고 나서야 다시 출발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출발선에 앉았지만, 방금 달린 기록을 갱신할 수 없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았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출발을 했지만, 뜨거운 불위에 데지 않기 위해 슝슝 건너던 것처럼 빨리 달리던 전과 달리, 사막의 모래 속에 빠지듯 내 다리는 무겁게 힘을 잃었고,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온몸에 고스란히 받으며 결승점을 통과했다.

“14초 7! 다 엎드려!”

아이들 모두가 운동장에 엎드렸다.

“여자들은 주먹 쥐고 남자들은 귀를 잡는다. 실시!”

양쪽 귀를 잡고, 팔꿈치로 바닥을 지탱하니 모래에 섞인 뜨거운 자갈들이 팔꿈치를 눌러 고통을 줬고, 아무리 버티려 해도 열한 살의 나이로 그 자세를 오래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나둘 아이들이 옆으로 쓰러질 때마다 그는 쓰러지는 아이들을 발로 차고, 밟고... 그에게 우리는 그가 가르치는 사랑스러운 제자가 아니라, 그가 무찔러야 하는 하나의 빨갱이요 개새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운동장에 퍼지고, 옆에서 체육수업을 하고 있던 1학년의 어느반 선생님이 보다 못해 우리에게 다가왔다.

“쌤 이거 너무한 거 아입니까? 여가 무슨 삼청교육대도 아이고, 날도 더운데 아들을 이래 잡으면 우짭니까? 너거 다 일나라!” 만화에서나 나오던 악당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 그 순간만큼은 그 선생님은 우리에게 만화 주인공보다도 더 멋진 정의의 사도였다.

“어이 박쌤. 내 새끼들은 내가 알아서 한다. 니는 너거 새끼들이나 고마 챙기라. 교사밥 몇 년 처먹지도 않은 게 어디서 아는 척이고!”

“뭐라고예? 니? 지금 니라 캤습니까?”

“어디서 바락바락 대드노! 내가 니만한 새끼들 몇 명을 갈킸는지 아나!”

“하이고 지는 당신 같은 쌤한테는 배운 적이 없는데예. 깡패새끼도 아이고 학교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라예. 쌤도 집에 가면 얼라들 있을 거 아입니까? 가들한테도 이랍니까? 쌤 얼라라 생각하면 절대 이래 모합니데이.”

“니가 뭔데 내한테 이래라 저래라고! 니는 너거 반 아새끼들이나 잘 갈키라고!” 둘의 싸움에 우리는 절대적으로 한 사람을 응원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표정이라도 들킬까 죄인처럼 모두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았다.


복싱의 한 라운드가 끝나고 종이 울리듯, 수업종료 종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얼굴이 빨갛게 변한 1학년 담임 선생님은 동생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갔고, 우리는 수돗가로 갔다. 체육수업이 끝난 다른 학년 다른 반 아이들은 수돗가에서 물장난도 치고, 모두가 꺄르르 웃으며 신나하는데, 우리 4학년 2반 아이들만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의 국민들처럼 감정도 표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팔과 다리에 묻은 먼지와 모래를 미지근한 물로 씻어냈다. 방금 우리를 위해 싸워주던 그 선생님이 책에서 배우던 독립투사 같았고, 우리 담임을 맡고 있던 그는 사람들을 괴롭히던 악질 순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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