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학기 기말고사 날, 대부분의 수업을 판서로만 교육받은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은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성적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찾아오는 여름 방학이 더 설레었고, 방학이 오면 잠시나마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여전히 매일같이 이뤄지는 그의 폭력도 참을만하다고 생각했다.
매미가 미친 듯이 울어대던 뜨거운 여름날,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기나긴 훈화 말씀도 가수들이 부르는 달콤한 노래처럼 느껴졌고, 양이 가득한 성적표를 손에 들고도, 마치 큰 상장이라도 받고 집에 돌아가는 듯 발걸음이 매우 가벼웠다.
더위가 한풀 꺾일 무렵 개학이 점점 다가왔다. 그가 방학 기간 내준 숙제들을 정리하고, 학교에 갈 준비물들을 챙기면서 학교에 갈 생각을 하니 자꾸 아랫배가 아팠다.
육상부 활동 때문에 친구들보다 2주 빨리 학교에 가서 체육실을 청소하고, 도구들을 정리하다가 빨간 유니폼을 발견했다. 빨간색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다고 수업시간에 했던 그의 말이 떠올라 아무도 찾지 못할 거 같은 캐비닛 틈 사이로 유니폼을 쑤셔 넣었다.
배가 자꾸 아팠다. 달릴 때는 괜찮다가, 멈추면 아프고, 그러다가 음식을 먹기만 해도 토하고 설사를 하고, 열이 38도 이상 펄펄 끓는 날이 지속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의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던 선생님은 목욕탕에서 만날 때마다 나의 달리기 시합 결과를 물어보셨고, 다시 태어나면 자기도 나처럼 빨리 달릴 수 있는 아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아 속이 와이래 됐능교?”
“속이 와예?”
“야 요새 뭐 힘든 일 하는 거 있어예?”
“아가 힘든 일 할게 뭐 있어예. 방학이라가 집에서 놀다가 개학할 때 다되니까 달리기 한다고 학교가가 뛰댕기는거밖에 없지. 달리기를 많이 해서 아픈기라예?”
“아니... 그건 아닌 거 같고, 아 장이 좀 안 좋은 거 같십니더. 내가 약을 지어줄 수는 있는데, 이 약 갖고는 안될 거 같고, 낸주 좀 큰 병원에 함 델고 갔다오이소. 일단 약은 지어줄께예.”
“많이 안 좋은기라예? 쌤 시원하이 말 좀 해주이소.”
“마이 안 좋고 그런 건 아인데, 아 한테는 잘 안 생기는 병이라예. 야 요새 똥도 잘 못 누고 밥도 잘 못물낀데, 이런기 길어지면 별로 안좋지예. 우리 나이쯤 돼가 스트레스받고 그럼 생기는 병이라예. 쪼매난기 스트레스받을기 뭐가 있다고. 마! 니 키 안 커가 달리기 1등 자리 뺏길까 봐 카나. 자슥이~ 밥도 마이 묵고 똥도 잘 싸야 키도 크고 더 빨라진다카이~ 쌤이 주는 약 꼬박 잘 챙기묵고 당분간 뛰댕기지 말고 집에서 가만히 좀 쉬그라.”
“쌤, 내일 개학인데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께 말했다.
“어무이요. 야 한 일주일간은 학교 보내지 말고 집에 냅두이소. 아 몸이 먼저지 개학해가 1주일 동안은 수업도 제대로 안 하니까 괜찮을깁니다. 어무이도 회사에 얘기해가 당분간 못 간다카고 옆에서 아 좀 챙기주고 그라이소.”
“예...”
“엄마 내 학교 가야 된다. 쌤! 저 학교 가야 되는데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지난번 시합에 나가 학교에 가지 못해 그에게 맞았던 기억이 나,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엄마랑 선생님을 번갈아보며 이야기했다.
“야가 와이라노! 쌤이 집에서 좀 쉬야 낫는다 안카나! 누가 보면 학교에서 윽수로 열심히 공부하는 안줄 알겠네! 맨날 학교가도 양이 수두룩 하두만 일주일 안 가도 똑같다마!”
“이 자슥~ 공부 좀 하는 줄 알았디 목장 주인이었나~ 마! 친구들이랑 노는 거는 좀 천천히 해도 되니까 일단 집에서 좀 누워 있그라. 푹 쉬야 또 신나게 놀 수 있다이. 지금 이래가 가면 니 놀지도 못하고 병도 안 낫고 어무이도 힘들고 니도 힘만 든다이. 쌤 말 듣고, 좀 쉬그라. 카고 맨날 달리기 한다고 찔락거리지 말고, 공부도 열심히 하그라이. 니 지금부터 양치기 맨치로 양만 수두룩한 성적 받아오면, 나중에 아무것도 묵고 살기 없다카이. 지금이야 니 여서 빨리 뛴다 카지만, 올림픽 나가가 벤존슨이나, 칼루이스같은 아들하고 뛰가 이길 수 있겠나. 달리기는 취미로만 하고 공부를 더 마이 해야된다이~!” 엄마의 이야기도, 선생님의 이야기도 가슴속에 와닿지 않았다. 둘은 4학년 2반을 모르니까... 눈물은 하염없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엄마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개학날이 되었고, 엄마는 나 대신 학교에 간다고 했다.
“엄마 어디 갈라고?”
“학교에 너거 쌤한테 니 아파가 학교 못 간다고 이야기해주야지.”
엄마가 그 악마를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가 왠지 엄마도 엎드리게 하고, 때리고 발로 밟을 거라는 생각에 엄마를 절대 학교에 못 가게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보고 입술에 화장을 하는 엄마의 루주를 빼앗고 등 뒤로 숨겼다.
“엄마 가면 안 된다!”
“야가 와이라노! 일로 도! 와 안 하던 짓을 하고 이카노 다 큰게!”
“엄마 가지 마라. 가면 안 된다!”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엄마가 혼내며 때리는 등짝도, 엄마의 고함소리도 무섭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엄마가 학교에 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나의 마음에도 결국 엄마는 학교에 다녀오셨고, 엄마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
“와?”
“우리 쌤 안 무섭드나?”
“쌤이 무섭긴 뭐가 무섭노, 그냥 인상 좋은 동네 아저씨 같드만. 옷도 깔끔하게 입고, 사근사근하이 니 아프다카니까 푹 쉬고, 다 나아가 학교 보내라 카드라.”
“진짜...?”
“야가 진짜 와이라노. 엄마 바쁘다이.” 엄마는 저녁에 먹을 시금치를 손질하며 나의 질문들에 건성건성 대답했고, 나는 엄마가 시금치를 많이 먹어, 뽀빠이처럼 힘이 쎈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밤 나는 만화에 나오는 뽀빠이처럼 알통 가득한 팔을 가져, 악당 같은 그에게 힘이 가득 실린 펀치를 먹여주는 꿈을 꿨다. 엄마가 세상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