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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빨갱이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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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Aug 16. 2024

엄마

7.

일주일을 집에서 쉬고, 학교에 갔다. 거의 두 달 만에 만나는 친구들 생각에 설레임을 가득 안고 교실 문을 열었는데, 의자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표정에서부터 잊고 지낸 우리 반의 공기냄새가 떠올랐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그 누구도 떠들지 않고,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칠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1교시는 뭐고?”

“산수”

“아직 수업 시간 전인데 왜 이렇게 조용하노?”

“아! 좀 조용히 좀 해라!” 늘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던 내 짝꿍 현애가 짜증 섞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내한테 왜카는데? 오랜만에 봐가 반가워서 카는데 왜 보자마자 성질이고.”

“조용해라 온다! 온다!”

다급하게 말하는 현애의 목소리 뒤로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전체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십니까!”

반장의 구호에 맞춰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나는 바뀐 인사법에 깜짝 놀라 허둥거리며 친구들보다 반박자 늦게 고개를 숙였다. 

“아직까지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새끼가 있네.” 그의 중저음 목소리 끝이 날 향해 있는 거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책상 위에 숙제한 거 펴놔” 

친구들은 책상 위에 숙제가 적힌 공책들을 펼쳐 놓았고, 나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하얀 공책을 책상에 펼쳐놓았다.


그는 1분단부터 숙제 검사를 하며 교실을 돌았고, 내 앞에 멈춰 섰다. 

“니 뭐꼬? 이 빨갱이 새끼가 다들 숙제해오는데 와 니만 안해오노! 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고 있는 사이 그의 커다란 손이 내 귀를 움켜쥐고 깊이 박힌 가시라도 뽑아내는 마냥, 내 귀를 그의 얼굴 앞까지 쭈욱 끌어당겼다. 까치발을 들어 최대한 고통을 줄여보려 했지만, 그의 힘 앞에서 나의 작은 노력조차 무력화되었고, 의자에서 일어나자마자 잠시 잊고 있었던 그의 손바닥의 감촉을 온몸으로 다시 느껴야 했다. 얼굴을 맞았는데 배가 아팠다. 자꾸만 배가 아팠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와, 엄마를 보자마자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석아 니 얼굴이 와이렇노? 니 누구랑 싸웠나? 아! 좀! 똑바로 서봐라! 함 보자!”

엄마는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보며 물었고, 나는 처음으로 그에 대해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엄마는 시금치를 많이 먹어, 뽀빠이만큼 쎈 사람이니까. 


다음날 엄마는 나와 같이 학교에 등교를 했다. 나는 뽀빠이가 날 지켜준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학교로 갔고, 밝은 미소를 띠며 교실 문을 열었다. 여전히 우리 반 친구들은 무표정으로 칠판만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 어둡고 칙칙한 공기들 사이사이를 나 혼자 밝게 웃으며 자리에 앉아 내 짝꿍 현애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엄마 학교 왔데이”

“너거 엄마? 왜?”

“어제 집에 가니까, 엄마가 있어가 쌤한테 맞은 얘기 하니까, 울 엄마 윽수로 화나가 당장 학교로 뛰갈라카는거 내가 말맀다 아이가. 지금 교무실 가가 쌤한테 윽수로 뭐라칼걸!” 나는 신이 나서 마구 떠들었다. 무표정으로 칠판만 바라보던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쏠렸고, 나는 우리를 구원해 줄 구원자를 데리고 온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리며 친구들에게 조잘거렸다.


수업 종이 울리고 교실 문이 열렸다. 모두가 긴장하고 문쪽을 바라보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그가 아닌, 학교에 새로 오신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아이들 모두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밝은 표정과, 밝은 목소리로 선생님을 환영했다.

젊은 선생님은 칠판에 필요한 부분만 판서를 하고, 최대한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책의 내용들을 설명했다. 교실에 있었지만,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던 OHP필름 기계를 사용하여 사진 자료들을 보여주기도 했고, 오르간도 직접 연주하고, 그림도 직접 그려주는 등, 이런 학교 수업이라면 백 시간이고 만 시간이고 영원히 들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시간 중 나와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점심시간에도 왁자지껄 떠들며 언제 어둡고 칙칙한 공기가 가득했냐는 듯, 누구보다도 밝은 열한 살 교실의 공기를 만들어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가 시작되기 전 젊은 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우리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오늘 선생님이랑 재밌었니?”

“네!” 

“선생님도 오늘 너무 즐거웠어. 내년에 너희처럼 밝은 친구들이 선생님 반에 오면 좋겠다. 선생님은 오늘 오전까지만 너희랑 수업하고, 5교시부터는 김선생님께서 다시 오실 거야~ 복도에서 만나면 우리 반갑게 인사하자!”

달콤한 꿈은 언제나 빨리 깨진다.

5교시 수업 시작종에 맞춰 그가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김호석 튀어나와!”

뽀빠이가 날 구해줄 거라는 생각에 못 들은 척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의 뽀빠이가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다가 날 구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기대가 무참히 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 새끼가 쌤이 말하는데 들은 척도 안 하네.” 그의 커다란 손은 어김없이 내 양 뺨을 덮었고, 내 눈과 머리에서는 다시 펑펑 터지는 불꽃놀이처럼 수많은 폭죽들이 터져나갔다.

“이 빨갱이 같은 새끼가, 또 집에 가서 일러봐. 일러봐 새끼야!” 분노에 찬 그의 손과 발이 나의 온몸을 훑어지나 갔고, 나는 최대한 덜 아프기 위해 바닥에 옆으로 누워 몸을 웅크렸다. 배가 아팠다. 그의 손과 발이 내 배를 향해 움직이지 않는데도, 자꾸만 배가 아파왔다.

얼마간의 구타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교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고자질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고자질을 한 사람은 어떻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겠노라고 으르렁 거리며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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