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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Jul 29. 2024

1990년

2.

1990년 여름은 무척 더웠다.

유일한 냉방기구였던 교실 천장 선풍기는 오히려 뜨거운 공기를 마구 뿜어대며, 숨이 턱 막히게 만들었다. 그 뜨거운 공기를 몰아내고자 책받침을 부채 삼아 나는 조그마한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며, 몸에 묻은 끈적한 땀보다 더 빽빽하게 칠판에 쓰여있는 판서들을 공책으로 옮겨 적고 있었다.


“책받침으로 부채질하는 새끼 나와.” 아이들은 일제히 손에 들고 있던 책받침을 책상 위로 내려놓고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책받침으로 부채질하는 새끼들 나오라고” 그는 책상 위에 꼬고 있던 다리를 땅으로 내리,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눈을 마주치면 들킬 것만 같아, 고개를 숙이고 숨죽이며 연필을 꽉 움켜잡고 공책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귀 옆으로 땀이 흘러 공책 위로 똑똑 떨어졌지만, 왼손으로는 떨리는 다리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연필을 잡고 있어야 했기에, 공책 위에 떨어져 연필로 쓴 글씨를 번지게 만드는 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다시 책상 위로 두 다리를 올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들키지 않고 잘 지나갔다는 생각에 칠판 쪽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 중저음의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1번부터 10번까지 나와”

열 명의 아이들은 쭈뼛쭈뼛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쪽으로 걸어 나갔다.

“일렬로 쭉 서” 아이들이 서로의 눈치만 보며 서 있자 그는 책상 위에 꼬고 있던 그의 다리로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의 배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한 명이 쓰러지자 아이들은 재빨리 서로의 어깨를 훔쳐보며 열을 맞춰냈다.

“엎드려서 칠판 위에 발 걸어. 쪼매난 것들이 벌써부터 거짓말이나 해쌌고, 선생님이 부채질하는 새끼들 나오라 했을 때, 나와야지. 이 쌍노무새끼들이 말이야. 니들이 빨갱이야? 왜 말로 하면 못 알아 쳐먹어서 사람 열받게 만드노, 날도 더븐데 이 개노무새끼들.”

자신의 허리춤이나 되는 높이 칠판의 홈에 발을 걸치고 주먹을 쥐고 엎드려 있는 아이들의 엉덩이를 지휘봉으로 세 차례씩 두들겨 팬 후 끝에 있는 아이를 발로 밀었다.


“11번부터 20번까지 나와.”

도미노처럼 아이들은 차례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일어서야 할지 다시 칠판 위로 다리를 걸고 엎드려야 할지 멈칫하던 아이들은 잘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열 명의 아이들이 열을 맞추고, 다리를 걸고, 맞고, 쓰러지고를 반복했다.

53번까지 그 짓을 하고 나니, 1교시 끝나는 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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