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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Jul 26. 2024

빨갱이

1.

사박사박.

발아래 느껴지는 눈의 감촉이 좋다. 대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눈이라 그런지 길에 쌓인 눈이 싫지 않다. 

코 끝에 느껴지는 찬 바람을 뒤로하고 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고요한 바깥 풍경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오셨습니까?”

밤새 취객과 실랑이하느라 지친 이순경이 인사를 했다. 

“니가 고생이 많다. 어제도 똑같았나?”

“말도 마십시오. 어제는 진짜 와... 화장실 청소만 세 번 했습니다.”

“고생했네. 대충 정리하고 들어가라.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저 영감님 보호자 오는 거 보고 들어가겠습니다. 보호자 오면 제발 술 좀 못 잡수게 해달라고 부탁해야지. 무슨 여기가 단골 가게도 아니고 술만 자시면 오셔서 사람 못살게 구니까 진짜 미쳐버리겠네요.”

“그래그래 욕봤다. 일단 영감님 주무시니까 니도 앉아서 좀 쉬라.”

“넵!”


앉아서 업무를 보려고 하는데 순찰차가 들어오면서 지구대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내가 여기를 왜 가야되노! 잘못은 저새끼가 했는데 왜 내까지 여 델고오냔 말이다!”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가 지구대 문을 타고 들려왔다.

“아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입시다. 추운데 일단 들어가입시다.” 

“놔라 좀! 나는 안간다카이!”

영감과 김순경이 실랑이하는 동안 지구대 문이 열리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과 최경장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이래 시끄럽노.” 소장이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야가 저 할아버지 집 담벼락에서 담배 피다가 걸맀답니다.”

“근데 그게 왜?”

“할아버지가 야를 쥐어박았는데 야가 신고했습니다.”

“뭐라고? 마! 니는 니가 잘못해가 어른이 뭐라하면 죄송합니다하고 가면 되지! 어린노무시키가!”

“아저씨!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담배는 기호식품 아입니까! 내 좋다고 피는데 왜 때리는데요! 내가 누구한테 뭐 피해 줬습니까! 내가 왜 맞아야 되는데요!”

“허 참......”

소년의 당찬 대답에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소년의 말은 나름 정당했다. 미성년자이기에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담배를 구매했는지에 대한 위법요소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의지에 대해 강제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는 없다.


“그래 니 말이 맞다. 근데 벌써 담배 피다가 니 뼈 다 삭는다이. 어디 어떻게 맞았노 아저씨랑 이야기해보자.”

“내 뼈가 삭든말든 아저씨가 무슨 상관인데요. 좆같은 세상 오래 살고 싶은 마음도 없거든요!”

“하이고~ 일마야 얼마나 살았다고 세상이 좆같다카노. 좀 더 살아보고 얘기해라. 승질 그만내고 함보자. 어디 맞았노?” 

“다짜고짜 귀빵맹이를 쳐날리가 입술 안이랑 다 터짔거든요. 내 저 할배랑 절대 합의 안할낍니다. 저 할배 감옥에 처넣을낍니다.”

“야야 감옥은 우리가 보내는기 아이다. 검사도 있고, 판사도 있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어이 이순경아 구급함에 약 좀 가져와가 야 좀 발라줘라. 밖에 함 나갔다와야겠다. 저기는 아직도 안 들어오고 뭐하고 있노.”

“넵”

지구대 문을 열고 나가니 습기 어린 찬 바람이 코로 확 밀려 들어왔다.

“최경장 안 들어오고 뭐하노”

“김경사님 나오셨습니까. 아~~ 여 어르신이 안 들어간다고 계속 고집을 부리셔서......” 요지부동 뒷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이 보였다.

“어르신 추운데 거 계시지 말고 따뜻한 차 한 잔 하시면서 안에서 이야기하시지요. 아가 맞아서 좀 다쳤더라고요. 간단하게 몇 가지만 조사하고 보내드릴테니까 일단 들어가시지요.”

“내가 만다꼬 거기를 들어가노! 어이!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새끼가 내 집 담벼락에서 담배를 빡빡 피워대고 있는데 그걸 우째 가만히 지켜보고있노. 으이? 내 말이 맞나 안맞나! 어른이면 당연히 아를 뭐라캐야지. 아이고 잘 피우네카면서 지켜보고 있으란 말이가! 저 빨갱이같은 새끼가 뭐라는지 아나? 내보고 콩밥 먹을 준비하란다. 허참 세상꼬라지 하고는. 이게 진짜 말세다 말세. 세상이 우째될라고 저런 빨갱이 같은 새끼 편을 든단 말이고.”

노인의 목소리가 귀를 타고 들려오며 한참을 잊고 지내던 복통이 밀려왔다. 

“아......”

“김경사님 와 그라십니까? 괜찮습니까?”

“어 괜찮다. 속이 좀 안좋아가.”

“어제 한 잔 하셨습니까?”

최경장의 말을 뒤로하고 조심스레 발을 옮겨 뒷자리에 타고 있던 노인을 보았다. 노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뜨거운 사막 모래처럼 뺨을 때려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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