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2일 새벽 1시
브런치에서 몇 개월 간격으로 "작가님의 글을 볼 수 없어 아쉽다"는 글이 날라온다. 물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기 메일이겠지만.. 무언가 뜨끔하게 만드는 광고는 처음인 듯 하다. 취미로 일상을 남겨야지, 나의 직업에 대한 견해를 나름대로 남겨봐야지 했던 다짐들이 어느 순간 저 먼 역사로 느껴질 때면, 아이들에게 늘 이야기 하는 "지속하는 것이 시작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늘 떠올려야 한다"는 말에 부끄러워진다. 전략을 바꾸어야겠다. 시작은 했으니, 지속을 위한 방법을 떠올리자. 지속을 위해 거창하게, 예쁘게, 정련되게 쓰기보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습관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솔직하고, 담백하게, 꾸밈없이, 소탈하게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 소재도 간단하게 일기의 형식으로, 올해 있었던 이야기를 역순으로 써야겠다.
# 11월 21일 밤 11시
이틀 전 맹장 수술을 했다. 수능 감독을 보기 전날, 17일 밤부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여튼, 감독을 해야하기도 하고, 가벼운 통증이겠지 했는데 18일도 아프고 19일도 아파서 내과에 갔더니 큰병원에 가라고 해서 건대 병원으로 갔고, CT를 찍은 뒤 수술을 진행했다. 다행히 터진게 아니여서 당일 수술을 진행하고 하루 입원한 뒤 20일 8시즈음에 퇴원했다. 19, 20일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은 탓에 식욕이 미친듯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21일부터 음식을 먹으라고 했는데, 퇴원하자마자 죽을 두그릇 먹었다. 내 식욕 탓도 있지만, 엄마가 끓여놓은.. 탓도 있지 않을까. 근데 생각보다 속이 나쁘지 않에는았다. 그래서 21일 낮에 죽을 먹고 저녁에는 치킨을.. 먹었다. 밤 11시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역시 하지말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내가 특별해서 빨리 회복하는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2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다녀오고 있다. 죽을 것 같다. 22일부터는 다시 죽과 소화가 잘되는 음식 위주로 먹어야겠다. 상처부위가 심각하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으니 더 아프지는 않겠지.
# 11월 20일 오후 3시
이틀 째 굶는 건 처음이었다. 물도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 하는건, 게다가 하루만 입원하고 나가야지 생각하고 5인실 병동을 사용했는데, 시설이 최악이었다. 건조한데 가습기 하나 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다. 배고픈건 고사하고 목이 붓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간호사에게 가글이나 약이 없냐 물어봤더니 없다고 한다. 병원에 없는게 말이 되느냐 물어봤더니, 그냥 없다고 한다. 그 때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회진을 온다던 의사는 단 한번도 오지 않았고, 나는 내 수술이 어떻게 끝났고 이후에는 어떤 시기에 어떻게 조치되는지 알지 못했다. 병원 설명서에는 환자의 알권리가 존재한다고 거창하게 써놓고는.. 환자에 대한 대우와 역겨운 환경이 결합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당장 의사를 데려오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는 또 1시간 가량 흘렀다. 간호사가 무슨 죄겠거니 다시 의사를 데려오라고 요청했다. 요청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겠다고, 그리고 정확하게 언제 올건지도 말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도 30분 뒤에 찾아왔다. 나는 감정소모를 회피하는 편이어서 단도직입으로 퇴원가능한 상태면 가장 빠른 시간대에 퇴원조치를 시켜달라고 요청했다. 6시에 처음으로 물을 마셨고, 별 증상이 없어서 8시에 퇴원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무능할 수 있는지,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무책임할 수 있는지,
의료 체계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무의미할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달은 이틀이었다.
# 11월 20일 밤 8시
난 불효자인 듯 하다. 2014년 처음 은행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긴장이 풀려 편도가 심각하게 부었다. 그래서 엄마도 본인 때문에 가본적 없는 건대 응급실을 자식 때문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자식이 맹장 수술을 한다고 입원해본 적도 없는 건대 병원에 병문안을 두 차례나 왔으니, 나로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미안하면서도 다행이다. 아무튼, 짐을 싸고 밖으로 나오는데, 나는 거의 걸을 수 없는 수준으로.. 밍기적 밍기적, 엄마가 답답해할 정도로 기어가서 택시를 탔다. 집은 가까워서 5분이면 도착하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배는 고파오고, 옆에 엄마가 있는데 미안한 감정이 드는 이 순간. 시루떡이 생각났다.
혼자 메모장에 이렇게 끄적였다.
「지금 문득 생각나는 순간,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요. 시루떡. 우리 동네 자양 시장에서 파는, 어릴 때는 엄마랑 자주 가서 사먹던 시루떡이요. 겨울이 되면 그 떡집은 늘 뿌옇게 수증기가 올라와 있었어요. 한 겨울에 김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을 식지 않게 하려고 계산하자마자 엄마랑 집으로 냅다 뛰어오던게 생각이나요. 오는 길에 신호등 지나면 국민은행이 있는데, 그 옆 과일가게에서는 겨울이 되면 붕어빵을 같이 팔았어요. 그 길을 지나갈 때면 냄새를 못 이겨 “엄마 붕어빵 천원어치도 같이 사면 안돼?” 라고 물어보려고 엄마를 쳐다보면 엄마는 이미 계산중이었어요. 나는 우유를, 엄마는 맥심 커피를 마시며 겨울을 보내곤 했습니다.」
모두 아프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