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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고 아이인 우리

아마 돌아오는 주말의 너는 요리를 잘하는 어른 일 거야

by 박바코

애인과 햇수로 8년째 만나고 있는데,
주변에서 종종 한 사람이랑 오래 연애하는 게 어떤지 묻는다.
직접 그 단어를 얘기하진 않아도 지루하진 않은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
하긴 나도 그랬다. 학생 때 콘서트까지 가며 열광하던 아이돌은 이젠 뭘 하는지도 관심 없고,
몇 달을 틈만 나면 하던 게임도 어느 순간 관심이 팍 하고 식어버렸다.
좋아하는 음식은 매번 바뀌고,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주기적으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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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연애는 계속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시간이란 길을 함께 걸어왔다.
가까이 붙어 걷는 동안엔 드러내지 않아 몰랐던 모습을 발견했고,
거리를 두어 네가 걷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씩 자라고 변화해가는 게 보였다.
23살의 너는 어른 같지만 아이였다.
스무 살이었던 내겐 어른 같은 첫인상을 주었지만, 사실 같이 하는 모든 것들에 신이 난 아이였다.
나와 똑같이 처음인 게 너무 많아 사소한 것에 긴장했고 작은 마음에 설레했다.
30살의 너는 아이 같지만 어른이다.
여전히 네가 가진 순수한 모습들을 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보여주는 웃음을 알고,
편지 구석엔 꼭 장난스러운 그림체로 우리 모습을 그리는 걸 안다.
그러다가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들어주며
너와 내가 아닌 우리의 미래에 관해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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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애인의 직장 동료들과 저녁을 먹었다.
낯을 가리진 않지만 딱히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진 않아서 이틀을 고민한 자리였다.
편한 대로 하라는 너의 말에. ‘그냥 안 가는 게 좋겠어 ‘라고 아침에 말은 해뒀지만,
나라면 서운할 거 같아 괜히 신경이 쓰여 오후에 다시 메시지를 보냈었다.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서도 내가 소외되진 않는지 마음을 쓰고
일부러 칭찬을 더 많이 하는 너는 배려심 풍부한 어른이었다.
그 어른은 집에 오자마자 청소를 미루고 싶어 하고 게임을 같이 하자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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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의, 몇 년 후의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고 있을까 기대될 때가 있다.
아마 당장 돌아오는 주말의 너는 요리를 잘하는 어른 일 거다.
어쩌면 게임을 너무 많이 해 나를 삐지게 하는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떤 모습이라도 절대 지루하진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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