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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下의 게임

다음 퀘스트는 뭐죠

by 박바코

우리 둘을 다 아는 친한 동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예전엔 긴 시간 잘 만나는 너랑 오빠를 보면 운명 같은 건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둘은 누구를 만났어도 오래 만나지 않았을까 싶어. 원래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묘하게 찜찜했다. 우리 사랑이 특별하지 않을 리 없으니까.
열에 아홉은 깨진다는 과cc에서, 그 하나에 든 우리인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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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지금은 알 거 같다.
평범한 둘이 쉬운 게임을 같이 시작했다.
3일 차이인 생일은 하루를 정해 맛있는 걸 먹으며 보내고,
둘 다 물건 욕심이 별로 없어 특별한 날에는 선물보다는 편지를 써준다.
게으른 여행을 좋아해 조식을 먹고 낮잠을 잔 뒤 느지막이 길을 나서고,
같은 분야를 공부해 취향이 비슷한 덕에 동선을 짜는 데 어려울 게 없다.
심지어 이 이상한 게임은 하면 할수록 난이도가 더 낮아진다.
어릴 때 어떤 일이 있었고 대학 생활은 뭘 하며 보냈는지 훤히 알게 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 차곡차곡 리스트에 적어둘 수 있다.
물론 도중에 난감하고 어려운 퀘스트도 있다.
나도 못 가본 미지의 던전에 갇혀 슬퍼하는 상대를 구해 와야 할 수도 있다.
잘못 누른 버튼에 팀인 줄 알았던 우리가 서로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럴 땐 지난번 기록을 뒤져 방법을 찾아낸다. 꽁으로 그냥 먹은 레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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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애는 난이도가 낮은 게임이라서
눈길을 끄는 화려함도 없고 부러움을 잔뜩 받지도 않겠지만,
이 방식이 잘 맞는 둘에겐 꾸준히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될 거다.
지금은 ‘코로나 19를 헤치며 결혼하기 퀘스트’를 깨고 있는데
꽤 힘들긴 하지만 이 게임은 어려운 게임이 아닌 걸 아니까,
열심히 뭐라도 하면 잘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이 게임 덕후로서 앞으로도 소소하지만 행복한 콘텐츠가 잔뜩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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