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좋은 말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 자신을 물건에 비유한다면?’
자기소개서 질문 등 여러 매체에서 자주 보이던 질문이다.
회사용 자소서라면 그럴듯한 멋진 물건을 썼겠지만,
비공식적인 대답으로 나는 라텍스 장갑이다.
꽤 오랜 고민을 한끝에 나름 절묘하게 찾은 물건이다.
라텍스 장갑은 신축성이 좋다.
쭈우욱 하고 늘어났다가도, 손을 빼버리면 금방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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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쉽게 동요하는 사람이다. 상황에 잘 휘둘리고 감정의 폭도 크다.
가족과 애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신이 날 때는 애인과 막춤도 춘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이 자신감이 넘치다가도,
조금만 걱정이 되기 시작하면 100가지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금방 원상 복귀되는 라텍스처럼, 강렬하게 나를 훑고 지나간 감정들도 금방 사라져 버린다.
무서운 영화를 봐서 잠 못 이룰까 걱정을 한참 해봤자, 잠만 잘 자고 기억도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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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은 전혀 다르다.
부처님 같은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다.
어지간한 일에는 멘탈이 흔들리지 않고 화도 잘 내지 않는다.
유머감각이 좋고 잘 웃는 애인을 보며 처음엔 긍정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반대였다. 애인은 자기는 세상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고 했다.
나는 인생의 주인공이니 특별한 뭔가가 벌어질 거란 기대도,
(솔직히 난 아직 특별할 것만 같은 기대감이 조금은 있다.)
이 사람은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저만큼 해줄 거야.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대치가 없으니 결과치가 악해도 실망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부처님은 부처님인데, 시니컬한 부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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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라텍스 중생이 말하길
‘짠 음식을 평생 먹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전 날 뭘 먹었는지 입안에 짠 기가 가득합니다.’
그러자 부처님 왈, ‘오늘 저녁도 짜게 잘 드셨는데요.’
고민을 해결한 라텍스 중생은 아 내일 저녁은 부대찌개다. 생각을 하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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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텍스 장갑과 시니컬한 부처님은 오늘도 함께 살아간다.
나는 애인에게 예민하고 섬세하게 세상을 잘게 쪼개어 보여준다.
무던하게 넘어갈뻔한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애인은 나한테 가볍게 사는 것에 대해 말한다.
잔뜩 들고 온 고민거리를 살펴 불필요한 것들을 휴지통에 던져버린다.
덕분에 진지해져야 할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부처님 오늘도 좋은 말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