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지 않은 그 길을 같이 걸어 나가자
우리는 산책을 좋아한다.
둘 다 학생이었을 때는 두 시간을 걸어 다니기도 했었다.
그때는 각자 형제자매와 함께 자취를 할 때라 갈 곳이 마땅히 없었던 탓도 있었고,
동네에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아 골목을 돌아다니기 좋은 덕도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길을 또 돌고, 온갖 것들에 대해 쫑알쫑알 이야기했다.
애인과 함께라면 취객들을 마주칠 수 있는 밤늦은 거리도,
띄엄띄엄 낮은 불의 가로등이 있는 주택가 골목도 무섭지 않았으니까.
나에게 그 길들은 애인이 있어야만 무섭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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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애인이 말한 적 있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밤에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것이 무서울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자기에겐 낮의 거리나 밤의 거리나 그저 같은 것일 뿐이었다고.
밤에는 언제나 빠른 걸음으로 휴대폰을 꼭 쥐고 걸어야 했던 나는,
그 말에 놀라면서 허탈했고 이내 화도 났다가 부러워졌다.
결혼 생각이 있으니 정규직 전환을 제외한 일, 남자가 아니란 이유 하나로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던 일,
무서운 기사를 공유해 주며 공중 화장실을 가거든 꼭 누군가와 함께 가라고 당부하는 엄마의 메시지를 받는 일.
이런 일들을 애인은 결코 겪지 않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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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에게 하고팠던 많은 말 대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나를 지켜준다는 그런 말보다는, 이런 세상이 있단 걸 알아주고 공감해 주길 바란다고.
나와 같은 상황의 누군가를 본다면 같은 곳에 서서 얘기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형제는 형뿐이고 남중과 남고를 나왔으며 189의 키를 가진 건장한 남성.
그 남성은 이제는 나와 속도를 맞춰 걸으며, 겪어본 적 없는 세상을 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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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너의 눈으로, 한 번은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놓치고 지나쳐버렸던 아픔을 주워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길가 어딘가 작게 피어있던 아름다움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밤에 여성분이 앞에 있으면 멀어질 때까지 천천히 걸어간다는 애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겪어보지 않은 세상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에 공감하는 그 마음이, 오늘도 함께 걷게 만든다.
두 가지 넓은 시선으로 같이 골목길을 걸어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