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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세계 2

무서워하던 동물을 귀여워하게 되는 일이고 가지가 맛있단 걸 알게 되는 일

by 박바코

오늘도 우리는 귀여운 아기와 동물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
연애는 서로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의 취향에 잘 맞고 만족도가 높지만 비슷한 루트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과 함께 떠난다면, 절대 가볼 일이 없을 것 같던 곳을 여행하게 된다.
서로가 다녀온 여행지를 공유하기도 하고, 몰래 감추어왔던 비밀스러운 장소를 알려주기도 한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하면 기분이 들뜨다가도,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을 때는 괜스레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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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나는 ‘가지가 얼마나 맛있는데’ 세계와, ‘만화 20세기 소년’ 세계에 다녀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한참 여행 중이다. 애인이 안내한 그 여행지들은 내키지 않는 곳들이었다.
물컹거리고 침침한 색깔의 가지 반찬은 한국 대표 밥 경찰 아니던가.
급식에 나오면 손도 대지 않고 잔반통에 직행하던 가지는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운 맛이었다.
하루는 동네에 있던 중국집에 갔고 애인은 내게 가지 요리를 권했다.
하고많은 요리 중에 가지라니 탐탁지 않았지만, 다른 요리도 시켰으니 알겠다고 했다.
솔직히 맛이 없으면 애인 보고 다 먹으라 할 생각이었다.
요리가 나오고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소스를 묻힌 바삭한 가지 튀김을 살짝 깨물었다.
물컹거리던 식감은 촉촉하게 느껴졌고, 특징 없는 가지의 맛은 주변 재료와 쉽게 어우러지며 풍성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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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년이란 제목의 만화 역시 그랬다. 유명한 명작이지만 소년물에 관심이 없는 나한텐 그저 옛날 일본 만화였다.
애인과 같이 살기 시작하며 혼수로 각자 원하는 만화책 전권을 사기로 했고, 그렇게 우리 집에 들어온 만화였다.
남는 게 시간인 내 스케줄표에서조차 그 만화가 차지할 공간은 없었다.
그러다 무료함이 가득해 뭐라도 하고 싶은 어느 낮에 1권을 집어 들었다.
삼일 동안 전권을 다 읽어버린 나는, 유치하지만 낭만적인 세계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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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마음에 안 들어 혼자 다녀오라 말하는 여행도 있다.
물컹거리는 삶은 채소의 식감은 내게는 여전히 너무 어려운 세계다.
그래도 여행이 좋은 건,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고 다시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 행복해질 수 있어서다.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이 시간이 좋아서 우리는 계속 여행을 떠날 것이다.
때로는 함께 떠나고, 때로는 상대방이 여행을 즐기는 동안 기다려줄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면 무엇이 제일 좋았나 어떤 게 즐거웠나 재잘재잘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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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연애를 한다는 건
무서워하던 동물을 귀여워하게 되는 일이고
가지가 맛있단 걸 알게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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