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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07. 2020

10. 여행을 떠나요

우리 모두 여행을 떠나요

1.타우랑가

언제였더라 혼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을 때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희미한 기억을 새롭게 채우기 위해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내가 사는 오클랜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타우랑가. 

차로 가면 3시간 버스로 가면 4시간, 나는 당연히 버스를 타야 한다. 슬프게도 선택권은 없다. 


죽어라 울어 대는 알람 소리에 급하게 눈을 떴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혼자 가면 의외로 챙길 것이 많다. 그 전날 짐을 싸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버스정류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서,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곧이어 버스가 출발하고, 하나둘씩 빈자리가 채워졌다.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괜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새로운 곳을 간다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원래부터 계획 짜기를 귀찮아하는 터라 즉흥 여행을 꽤나 즐기는 타입이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가는 일정이다.결국 또 무계획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까, 무사히 환승역인 ‘해밀턴’에 도착했다.


이 동네 생각보다 휑하다. 뉴질랜드가 인구가 부산 인구와 맞먹는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인적이 드문 길로 걷다 보면, 저 끝자락에 바다가 있을 거 같은 느낌이다. 벌써 파도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지도를 보니 20분은 더 걸어야 한단다. 역시나 환청이었다. 걸어서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건, 바쁜 일상 속 에서 꽤나 큰 위로가 된다. 이놈이 또 보고만 있어도 사람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재주가 있다.      


바다 내음을 맘껏 만끽하고 환승역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버스가 바뀌어 있다. 아아 잃어버린 버스 찾습니다. 엄마 잃어버린 아이처럼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 나를 연신 이상하게 보던 기사님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      

“왜 그래? (이상한 눈빛으로)”

“나 버스 타야 하는데 버스가 떠난 거 같아”

“바보야 이 버스야 얼른 타렴”     


실제로 바보라는 말은 안 했지만 분명히 버스기사님은 속으로 그렇게 말 한 것이 분명하다. 애써 내 눈을 피하는 기사님을 보니 더욱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버스를 올라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출발했다. 한 시간 정도 더 가면 목적지 도착이다. 그동안 체력을 비축해놔야겠다. 잔다는 말이다.     


입가의 투명한 액체를 훔치고 일어나보니 어느새 구글맵은 타우랑가를 가리키고 있다. 드디어 목적지 도착이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해서, 일단 밥부터 먹고 이동하기로 했다.     


먹고 싶은 건 많은데, 문제는 입이 하나다. 나의 식욕을 채워 줄 만한 식당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카페인 충전을 하기로 했다. 달달한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니, 이제서야 살 것 같다.     



사실 나는 등산을 지독히도 싫어한다. 망할 놈의 체력 때문에 정상에 채 오르기도 전에 지치는 일이 수두룩했기에 되도록 피하고 싶은 취미 중 하나였다. 혼자 여행을 오니 내면에서 이상한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까짓거 등산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이거 아주 큰 결심 한 거다. 저 멀리에 내가 가야 할 ‘마운트 망가누이’가 보인다. ‘곧 갈게’ 첫인사를 나누고 나니 생각보다 발걸음이 가볍다.


왕복 2시간을 목표로 혼자만의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기로 한다. 서서히 노을이 지면서, 바다와 맞닿는 하늘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신선이 따로 없다.

따라오는 구름을 벗 삼아 천천히 걸어본다. 아무런 시간의 제약도, 누군가의 방해도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정상에 와있다. 산정상에는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왔다.     


어둠 속에서 ‘망가누이’ 해변과 수많은 불빛 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내 마음을 황홀하게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곳에서 잠시나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를 부려보기로 한다. 칠흑 같은 하늘에는 달빛과 별빛으로 수놓은 하얀 진주들이 가득하다.


가만히 앉아서 별을 올려다보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왜 미처 몰랐을까. 한국에 있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밤하늘이 이곳에서는 무척이나 귀하게 느껴진다. 귀한 손님을 마음껏 맞이해야 할 시간이다. 여유롭게 별구경 중 어딘가 모르게 소란스럽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하산을 시작한다. 아차, 저녁도 먹어야 하는데 나도 얼른 내려가야겠다. 황홀한 밤하늘에 빠져 간과한 사실 하나. 이곳은 다섯 시만 넘으면 칠흑 같은 어둠이 발아래로 깊게 깔린다.     


‘현재 뉴스 속보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던 ‘김 모양’이 현재 실종됐다는 소식입니다.’     


아찔한 상상을 했다. ‘김 모양’은 조심히 하산해야겠다.      

내려가는 길은 어찌나 험난하던지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침내 땅에 발을 디딘 시간은 오후 8시.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잊고 있던 뱃속 고동이 울려대기 시작한다. 정말 칼 같은 놈이다. 저녁은 간단하게 햄버거가 적당하겠다. ‘Burgerfuel’이라는 곳인데 햄버거가 아주 기가 막힌 곳이다. 뉴질랜드 오시면 꼭 드셔 보시길 추천드린다. 간단히 버거 하나와 쿠마라(고구마와 비슷)튀김, 어니언링과 맥주 6캔 정도 구입했다. 혼자 먹는 양치고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화자는 밥 아니면 다 간식이라고 생각한다.     


타우랑가의 밤은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한 여행자의 기운이 득실댔고 나는 오직 햄버거를 먹겠다는 집념 하나로 그사이를 무심히 지나쳤다. 급하게 저녁거리를 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홈 리스(노숙자)를 마주쳤다. 내 전용 스킬 눈 깔기를 시전 했으나 전혀 통하지 않는다. 가까이 오지마 쒯. 어찌나 내 햄버거 봉투에 관심이 많은지, 봉투가 뚫어질 거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오 제발 나에게 신경을 꺼줘.      


“헤이, 웨어 아유 프롬”     


을 열댓 번이나 무시하고 나서야 겨우 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자리가 없는 관계로 구석에 자리한 테이블에서 주섬주섬 햄버거와 맥주를 꺼냈다.

고생 끝에 겨우 한입 베어 문 햄버거는 가히 천상의 맛이라 하겠다. 눈물 훔치며 먹었다 진심으로. 이건 눈물의 맛이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강제로 눈을 떴다. 체크아웃 시간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 남았지만, 서둘러 이동하기로 한다. 1시간 가까이 남은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목적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이쯤 되면 걷기 대회에 나가도 되겠다. 날씨까지 도와주니, 도통 안 걸을 수가 없다. 어제 처음 인사를 나누었던 타우랑가 시내를 가기로 했다. 하루 만에 돌아온 타우랑가는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뭐가 저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도 옆에서 일행인 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벌써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다행히 버스정류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저기, 혹시 오클랜드로 다시 돌아가니?”

“응, 아마 곧 버스가 올 거야”     


옆에 앉아 있던 파란 눈을 가진 남자가 목적지에 대해 물어본다. 그는 어제 타우랑가에 도착해서 오늘 다시 오클랜드로 출발한다고 했다. 버스 옆에 앉아서 얘기를 더 나눌까 살짝 고민했지만, 아니다 그냥 편하게 가자. 영어를 너무 오래 써서 피곤했는지, 바로 곯아떨어졌다. 한 시간 후, 해밀턴역에 도착했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지. 환승역 안으로 들어오니 내 옆으로 누군가가 자리를 잡는다. 아까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던 그다. 그의 이름은 Vic이라고 했다. 이름 한 번 희망차다. 서로의 이름을 나눈다는 건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남미 출신이며, 현재는 오클랜드 의회 건물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그의 인스타에는 세계 곳곳을 다닌 흔적들이 만연했다. 한국인 친구가 많아서, 한국어도 잘하고 한국 술 먹는 것도 좋아한다고 한다. 그가 보여준 사진에는 익숙한 초록 병들이 가득하다. 이 친구 나보다 더한 말 술이 분명하다.     


“우와 너 소주도 마실 줄 알아?” 

“오브코스, 아이 뤼얼리 라이크 소주.”      


세상에 보통내기가 아니다. 떡볶이, 김치도 좋아한단다. 한식이 이렇게 위대합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애국심으로 열심히 한국을 홍보했다. 1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오클랜드에서 초록병과 함께 할 다음을 기약했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새로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 

새로움을 얻었으니 이번 여행도 성공이다.     




2.위리토아

집순이도 가끔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집순이들의 여행지는 누구보다 남다르다. 우리에겐 무엇보다 숙소가 가장 1순위다. 에어비앤비에서 너무나 우리의 취향인 집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예약을 해버렸다.


 이 동화 같은 집의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는 것. 그 정도는 까짓거 우리의 넓은 이해심으로 이해해 주기로 했다. 하루 정도는 속세와 떨어져 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결국 4G로 속세와의 끈을 다시 부여잡았다) 숙소가 위치한 곳은 위리토아, 아마 십중팔구 이곳에 간다고 하면 잘 모르는 곳이라고 답 할거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지라 이 보다 더 완벽한 장소가 어디 있으랴. 

이 정도의 이유라면, 여행 갈 이유가 충분하다.      


여행 당일, 렌터카를 빌려서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여행의 꽃 고기가 단연 빠질 수 없다. 종류별 고기, 심심한 입을 채워 줄 주전부리, 후식은 과일, 기분 낼 와인 등 필요한 모든 걸 트렁크에 구겨 넣고 차에 올라탔다. 이 정도 양이면 피난민이라고 해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국경을 열어줄 정도다. 누구나 그렇듯 여행은 떠나기 전에 장을 볼 때가 제일 설렌다. 우리 역시 그랬다.     



조수석에 앉으면 은근히 할 일이 많다. 가장 중요한 노래 선곡도 해야 하고, 네비게이션도 잘 봐줘야 한다. 그리고 절대 하면 안 되는 한 가지가 있다. 입가에 투명한 액체를 맘껏 흘리며 맘 편히 잘 수 없다. 아마 아무 생각 없이 졸았다간 ‘어디 조수석에 앉았는데 졸고 있어?’라는 환청이 사방에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눈이 저절로 감기는 걸 어찌하랴 ‘학창시절 몰래 자기 스킬’을 오랫동안 연마한 본인은 마침내 안 들키고 졸기에 성공했다. 아직도 모두가 몰랐을 거라생각한다. 우리의 하루를 책임질 이곳의 첫인상이 화자는 유난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목재로 이루어진 내부와 어릴 적 꿈꿔오던 다락방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단 하나 날씨만 빼고. 유난히 여행 중 날씨 운이 안 따라주는 내가 이번에도 역시 크게 한몫했다. 덕분에 여행 내내 우중충한 하늘과 함께했다. 하지만 또 밤이 되면, 이것 또한 운치 있으리.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근처 바다를 가기로 했다. 바다는 생각보다 더 가까웠고 이곳에 사람이 살까 싶을 정도로 동네는 고요 그 자체다. 나는 사실 수영을 하나도 못 한다. 


어릴 적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트라우마로 물놀이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예사롭지 않은 풍경에 한 번 몸을 맡겨 보기로 했다. 이날 파도 이놈에게 따귀란 따귀는 다 맞고 덜덜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 춥고, 파도는 또 이렇게 쎈 데 왜 이렇게 재밌는지, 다들 핸드폰을 숙소에 놔두고 온 터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뛰어놀았다. 


가끔은 속세와 떨어져서 즐기는 여행이 나에게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 준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없는 동네라 해가 지기 전에 얼른 들어가기로 했다.      



한국에는 수영 후 먹는 컵라면이 그렇게 별미라고 한다. 그 별미를 즐기는 상상을 했지만, 모두가 컵라면을 깜박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밖은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오직 빗소리만이 넓은 하늘을 가득 채웠다.

어느덧 배꼽시계가 때를 맞춰 울리기 시작한다. 자 각자 위치로. 각 맞춰 고기 굽기, 비빔면 제조, 실시 시작이다.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아차 인덕션의 화력이 거의 꺼져가는 담뱃불 수준이다. 이건 뭐 스테이크가 아니라 소고기찜이 되시겠다.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메뉴 변경이다.

일단 기분 낼 겸 소고기부터 썰어준다. 응? 이건 고기가 아니야 고무야 고무 누가 오래 씹고 있나 대결 중이다. 장하다. 소고기 안심을 고무로 만드는 기적 같은 마법을 이루어 냈다.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니 자체 영화 상영 시간이 다가온다. 2층 다락방에서 곧 영화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아아 모두 핸드폰은 진동으로 바꿔 주시길 바랍니다. 역시 비도 오고 이 어두컴컴한 이런 날에서는 공포영화가 제격이다.     


크르렁, 크허헝. 이건 영화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내 옆에서 곤히 자는 두 명의 코골이 화음이다.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영화 효과음인 줄 알았다. 이제 모두가 잠에들 시간인가 보다. 



그날 밤 꿈도 안 꾸고 기절했다. 동화 속 오두막에 사는 꿈을 꾼 것 같다. 어제 봤던 바다도 굿모닝. 오늘도 파도 높이가 장난 아니다. 아쉽지만 아침 물놀이는 접어야겠다.


다 같이 어제 남은 재료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동화 속 마을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코로만델’. 혹시 다들 영화 <나니아 연대기>를 보셨는지. 이곳은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 나왔던 곳으로, 삼각형 모양의 동굴에서 실루엣 사진을 찍는 곳으로 유명하다.



말없이 걷고 또 걷다 보면 저 멀리 ‘처얼썩’ 귀를 간지럽히는 파열음이 들려온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그 양옆으로 우리가 찾던 동굴이 보인다. 너도 오랜 시간 잘 버텨 주었구나. 괜시리 대견한 마음이 든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이곳의 모든 것을 담기 위한 백여 번의 셔터음이 울리고 나서야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팀은 해산하셔도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항상 집에 도착하면 먼저 내뱉는 말이 있다. 



‘아, 집이 최고야’



집순이들 본성 어디 안간다. 자자 일상으로 돌아갑시다. 다들. 

가끔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은 일상에 활력을 주곤 한다. 일상에 환기가 필요한 집순이들에게 여행이란 것은 더욱 더 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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