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Nov 09. 2020

11. 은하수들

서로의 은하수가 되어 주기로 했다.


‘지금 혼자 오클랜드에 있는데, 남자 친구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의지할 사람도 없어서 울면서 글 쓰고 있어요. 흑흑’     


뭐지 이 마음을 후벼 파는 글은. 읽다 보니 너무 마음이 쓰이는 거다. 또 내면에서 망할 오지랖이 툭 튀어 나와버렸다.     


 ‘괜찮으세요? 저도 오클랜드 사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하실래요?’     

누가 봐도 작업 거는 멘트 같지만 절대 수작 부리는 건 아니다. 

오해 마시길. 


‘혹시 오해할까봐 말씀드리는 데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열심히 불 난데 부채질 중이다. 

그렇게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간단한 인상착의만 듣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외국에 있으니 그 전에 없던 오지랖이 마음속 깊이에서 기어 나올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변덕스럽게도 다시 집에 가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건너편에서 누군가 이쪽을 향해 보고 손을 흔든다. 왠지 모를 촉에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 재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놀라셨죠? 원래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하하”     


구구절절, 안 해도 될 말을 쏟아부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처음 만났지만, 생각보다 이것저것 통하는 게 많았고, 금세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다행히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 만났던 몇 시간 동안, 대학, 연애, 뉴질랜드, 취업 등 모든 소재를 막론하고 거침없이 공감대를 형성해갔다. 눈치 없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귀소본능을 잠깐 숨겨본다.     


“아 언니, 디자이너라고 했죠. 저랑 같이 살고 있는 언니도 디자이넌데 하는데 소개 시켜 드릴까요?” 

“오 너무 좋지. 언제?” 

“지금이요 잠시만요 전화해볼게요”     


이것이 말로만 듣던 번개라는 것인가 그렇게 급 만남이 성사되고, 디자이너 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융화되었다. 같은 직종에서 일하다 보니 그녀와 나는 통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 자연스럽게 번호 교환도 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집순이인 나와 달리 전형적인 밖순이인 그녀는 항상 방구석에 수납되어있는 나를 밖으로 자주 꺼내 주곤 했다. 



 그녀와 첫 당일치기 여행은 남달랐다. 원래 언니를 처음 소개해줬던 동생과 다 같이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언니, 나, 나의 동거인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이거 완전 주선자가 슬쩍 빠져주는 소개팅 수법 아니던가. 우리의 목적지는 호비튼-와이토모 코스. 다들 <반지의 제왕>은 보셨을 거라 믿는다. 나는 사실 보지 못했다. 


뭐 어떠하랴 개인 사유지라, 아무나 무료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내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진도 맘껏 찍을 수 있고 파티장 같은 곳에서 식사도 제공해준다. 이거 완전 호화로운 여행의 끝이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오면 이제 와이토모에서 반딧불을 볼 시간이다. 버스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가이드가 동굴 속으로 안내를 하는데, 이곳에서 배를 타면서 반딧불을 볼 수 있다. 어찌나 밝게 빛을 내던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저것은 반딧불이 아니라 누군가 조명을 붙여 놓은 게 분명하다며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 이후 은하수 스냅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은하수 요놈이 또 귀한 놈이라 날씨, 시간이 모두 따라줘야 볼 수 있다. 그래서 작가님과 수많은 조율 끝에 드디어 날을 잡았다. 다소 늦은 밤 12시, 이 춥디추운 겨울날 다들 얇디얇은 원피스에 패딩을 걸치고 만나기로 했다. 이 순간만큼은 연예인 화보 촬영이 따로 없다. 인생샷 한 장을 위해 뭔들 못하랴. 우리가 갈 곳은 ‘무리와이 해변’, 이곳은 특히 은하수가 잘 보이기로 유명한데, 혹시 이 귀한 놈이 보고 싶으시다면 이곳을 꼭 추천한다.    

  

산짐승이 갑자기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으슥한 길로 들어섰다. 이대로 야생 곰이 나타나서 우리를 잡아먹진 않을까 하는 이상한 상상을 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느새 무서움은 자취를 감추고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진주 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내리자마자 우리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어둠이 자리한 이곳에는 오직 빛이 나는 유일한 존재 은하수만이 가득했다. 

사진 찍으러 왔다는 것도 까먹고, 한참을 바라봤던 것 같다. 저 빛들을 내 눈에 담기 위해 그렇게 보고 또 보았다. 


아 하나라도 놓치기 싫다. 하나하나가 내 속에서 온전히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기 위해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해변 한가운데서 작은 조명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으면 은하수와 피사체가 온전히 사진에 담긴다고 한다. 오늘이 바로 인생 사진 만드는 날인가 보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한동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기대감에 추위도 잠시 잊었다. 촬영이 끝나고도, 우리는 한참을 눈에 빛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나중에라도 이 빛들을 꺼내 볼 수 있도록.      



은하수는 시간이 지나 사라졌지만 절대 잊지 못할 이 순간을 함께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은하수들이 되어 주기로 했다. 

이전 10화 10. 여행을 떠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